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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우덕의 중국경제 이야기] 반면교사 코닥필름, “반중 감정은 사치다!”

중앙일보

입력

한우덕 차이나랩 선임기자

한우덕 차이나랩 선임기자

반중(反中) 정서는 넓게 퍼지고, 깊게 스민다.

한때 서로 가겠다고 손들던 중국이다. 주재원도, 외교관도, 특파원도 베이징과 상하이를 선호했다. 경력에 도움이 되니 말이다. 지금은 중국이라면 말 그대로 ‘쌩깐다’. 대학에서도 중국 관련 학과는 폐과(閉果) 중이다.

이래도 되나?

관계가 악화할수록, 비즈니스가 더 안 될수록, 오히려 더 연구하고 공부해야 할 나라가 중국 아니든가. 중국이라는 존재는 우리의 생존과 연관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구단선

중국은 지금 남중국해를 내해(內海)화 하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인공섬을 만들고, 그 위에 비행장을 깐다. 속이 뻔히 드러난다. 주변국이 긴장할 수밖에 없다.

‘구단선’이라는 게 있다. 영어로는 ‘nine-dash-line’이다. 남중국해에서 중국이 주장하는 자기 영토다. 아래 사진에 구단선이 선명하다.

구단선. 사진 GIS 캡처

구단선. 사진 GIS 캡처

마치 황소 혀처럼 생겼다. 필자는 저걸 볼 때마다 ‘먹성 좋은 소가 여물을 먹어 치우려 혀를 날름 내민 형상’이라는 생각을 한다. 그 넓은 땅을 갖고 있음에도 중국은 엄청난 영토 먹성을 자랑하고 있다.

뚜렷한 근거는 없다. 중국은 ‘아주 옛날 한(漢)나라 때, 조정에서 그쪽에 사람을 파견했다는 기록이 있다’라는 식이다. 2000년쯤의 일, 명확하게 뭘 했는지도 모를 기록을 현재로 끌어와 ‘우리 땅’이라고 우기는 근거로 삼는다.

주변국이 가만히 있을 리 없다. 필리핀은 급기야 국제 분쟁 중재 기구인 상설중재재판소(PCA)에 제소했다. 결과는 중국 완패. PCA는 2016년 “중국의 남중국해 바다 영유권 주장은 아무런 근거가 없다”고 판결했다. 그래도 중국은 꿈쩍 않는다. 섬을 군 기지로 만들고, 미사일을 배치한다. 힘으로 밀어붙인다.

남의 동네 일이라고? 아니다. 바로 우리 일이 될 수 있다.

서해 불법 조업

전쟁을 방불케 한다. 서해 불법 어선 단속 현장이 그렇다. 한국 해경의 물대포에 중국 어민들은 쇠꼬챙이로 대든다. ‘저런 죽일 놈들. 남의 땅에 와서 뭐하는 짓이야~’ 사투에 우리 해양 경찰이 다친다. 거의 전쟁 수준이다. 그러고는 ‘한국 해경이 과잉 단속을 했다’며 적반하장이다. 분노는 끓어오른다.

탓할 일은 아니다. 분노할 대상에는 마땅히 분노하는 결기를 보여야 한다. 그러나 거기가 끝이어서는 안 된다. 분노로는 문제를 정확하게 읽을 수 없다. 오로지 냉정하게 중국을 관찰해야 한다. 그래야 분노는 가치를 갖는다.

해양 안보 전문가인 문근식 예비역 해군 대령(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 교수)은 ‘남중국해 다음은 서해’라고 말한다. 2022년 10월 13일 자 중앙일보에 실린 그의 시론이다.

“국방정보본부가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2021년) 한국 관할 해역에 들어온 중국 군함은 260여 척이고, 한국 방공식별구역(KADIZ) 침범 횟수도 매년 급증하고 있다. 남중국해 내해화가 완성되면 중국은 한국 서해와 이어도가 포함된 동중국해의 내해화에 박차를 가할 것으로 우려된다. 이미 일부 움직임이 진행되고 있다. 한국 서해 중간수역에 중국은 고정부표 9개를 설치했고, 항공모함 함대를 동원한 동경 124도 근해에서 시위 기동했다. 빈번하게 KADIZ를 침범하고, 이어도를 탐사해 중국 지도에 표기하고 이어도 해상·항공 순찰을 확대하고 있다.”

문 대령은 남중국해 ‘구단선’ 문제가 우리 서해로 확장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중국은 지금 꾸준히 떡밥을 까는 중이라는 게 그의 시각이다.

‘몰빵’투자

어디 바다뿐이겠는가. 경제, 비즈니스에서도 중국의 ‘먹성’은 외국 기업을 삼키고 있다. 자칫 한눈팔다가 기존 중국 투자 사업을 접어야 하거나, 그들의 사탕발림에 현혹돼 ‘몰빵’ 투자를 했다가 폭망하기에 십상이다.

코닥 필름. 사진 셔터스톡

코닥 필름. 사진 셔터스톡

코닥은 한때 필름업계 최고의 브랜드였다. 디지털카메라를 만든 것도 그다. 그러나 지금은 맥도 못 춘다. 중국 때문이다. 코닥은 1990년대 말 대규모 자금을 만들어 중국 시장에 투자했고, 거기에 돈이 묶여 디지털화 흐름을 타지 못했다. 영상 필름 업계를 주도했던 코닥은 지금 변두리 기업으로 쪼그라들었다.

한때 한국 제4위 조선업체였던 STX조선해양은 지금 이름도 없이 사라졌다. 역시 중국이 결정타였다. 다롄(大連)조선소 설립에 무려 3조 원을 투자했다가 자금에 쫓겨 그룹이 해체되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

당시 STX는 3차례 걸쳐 매각을 시도했다. 그때마다 중국인들에게 당했다. 그들은 들개처럼 달려들어 물어뜯었다. 결국 야드에 있던 설비를 하나하나 헐값에 넘겨야 했다. ‘그냥 던지고 나왔다’라는 표현이 어울린다.

중국의 성장은 그 자체가 한국의 산업을 추격하는 과정이었다. 백색가전, 화공, 조선, 자동차, 스마트폰에 이르기까지 중국은 한국 산업을 따돌렸거나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 내일은 또 어떤 산업이 중국에 먹힐지 모르는 상황이다. 중국은 심지어 우리의 ‘밥그릇’ 반도체 영역에도 도전하겠다고 나서는 상황이다.

중국은 그런 존재다. 기업에 부를 안겨주기도 하지만, 자칫 어긋나면 생존을 위협받기도 한다. 당장 돈 된다고 쏠리고, 싫다고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그런 대상이 아니라는 얘기다.

중국 욕하기는 쉽다. 그렇다고 돌부처 돌아앉듯 해서는 안 된다. 그럴수록 더 정면으로 바라보고, 눈 더 크게 뜨고 주시해야 한다. 우리가 ‘나쁜 놈들~’이라며 외면하고 있는 순간에도 중국의 힘을 키우고, ‘먹성’을 행사할 것이기 때문이다.

자칫 한눈팔다가는 기업도, 나라도 또 다른 ‘종속의 시대’에 직면할 수 있다. 그러기에 반중 감정은 사치다!

한우덕 차이나랩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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