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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덕노의 식탁 위 중국] 탕수육, 아편전쟁 굴욕의 요리?

중앙일보

입력

국제적으로 사랑받는 탕수육, 언제 어떻게 생겨났을까? 사진 셔터스톡

국제적으로 사랑받는 탕수육, 언제 어떻게 생겨났을까? 사진 셔터스톡

탕수육은 여러 나라에 퍼진 중국 음식이다. 국경을 초월해 그만큼 다양한 입맛에 맞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에서는 부먹이냐 찍먹이냐 논쟁을 벌일 만큼 인기이고 일본도 중국음식점 메뉴에서 빠지지 않는다. 다만 탕수육 대신 새콤 돼지(酢豚)라는 뜻의 스부타(すぶた)라고 부른다. 미국인한테도 익숙하다. 탕수육을 그대로 영어로 옮긴 달콤새콤 돼지고기(Sweet and Sour Pork)라고 하는데 레스토랑은 물론 중국식 패스트푸드 전문점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요즘은 탕수육과 비슷한 꿔바로우도 유행하고 있으니 인기에 힘입어 탕수육도 끊임없이 진화하는 듯싶다.

이렇듯 국제적으로 사랑받는 탕수육, 언제 어떻게 생겨났을까? 

탕수육은 흔히 아편전쟁 때 만들어졌다고 한다. 청나라가 영국에 패배한 후 홍콩과 광저우 등지에 진출한 영국인 입맛에 맞도록 개발, 내지 변형된 요리라는 것이다.

같은 탕수육이지만 기존 탕수육과는 살짝 다른 파인애플 탕수육도 유래설이 따로 있다. 영국이 홍콩을 통치하던 시절, 영국 상류층 인사를 위해 탕수육에 파인애플을 추가했다는 것이다. 혹은 중국이 열강에 시달릴 때 상하이의 영국, 프랑스 조계지에서 서양인 구미에 맞도록 파인애플을 넣었다고도 있다. 뜬금없이 왜 파인애플이었을까 싶지만 19세기 말까지 유럽에서 파인애플은 일반인은 먹을 엄두도 못 내던 최고급 과일이었다.

꿔바로우 유래설도 닮은 꼴이다. 꿔바로우는 솥(鍋)에서 폭파(爆) 시키듯 튀겨낸 고기(肉)라는 뜻이다. 여기에 탕추(糖醋)소스를 부어 먹으니 본질적으로 탕수육과 다를 바 없다.

원래 흑룡강성 요리라고 하는데 20세기 초, 만주군벌 장학량의 요리사가 개발했다는 설 등 다양한 이야기가 있지만 요지는 하얼빈 일대의 러시아 외교관 내지 러시아 기술자 입맛에 맞춰 만든 요리라는 것이다.

꿔바로우 이름도 원래는 폭(爆)자를 썼지만 러시아인이 제대로 발음 못해 감쌀 포(包)로 바뀌었다는데 중국어로는 두 글자 모두 바오(bao)로 발음이 같다.

탕수육 내지 파인애플 탕수육, 꿔바로우 유래설의 특징은 모두 침탈을 목적으로 중국에 진출한 서양인에 맞춰 만들어진 요리라는 것이다. 사실이라면 중국 입장에서는 굴욕적이다. 왜 이런 유래설이 퍼졌을까?

다양한 추측이 있으니 일단 우리가 아는 탕수육은 오리지날 중국 요리가 아니라는 것이다. 홍콩이 됐건 또 다른 나라가 됐건 원래 중국 음식을 변형한 외국식 중국요리일 수 있다. 예컨대 짜장면, 짬뽕 비슷하다. 중국을 조롱하는 듯한 유래설도 이런 과정에서 생겼을 것으로 본다. 이를테면 파인애플 탕수육은 도쿄의 남국주가(南國酒家)라는 중국음식점에서 처음 만들었다고 한다. 미군 고객에 맞춰 만든 음식인데 패전 후 상처난 일본의 자존심에 중국에 대한 조롱이 교묘하게 덧씌워졌다는 것이다.

파인애플 탕수육은 도쿄의 남국주가(南國酒家)라는 중국음식점에서 처음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사진 남국주가 공식홈페이지

파인애플 탕수육은 도쿄의 남국주가(南國酒家)라는 중국음식점에서 처음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사진 남국주가 공식홈페이지

그러고 보면 실제 중국에서 탕수육은 찾아보기 어렵다. 일단 탕수육, 중국어로 탕추러우(糖醋肉)라는 이름의 요리가 드물다. 게다가 우리가 익숙한 돼지고기에 튀김 옷을 입혀 튀긴 그런 탕수육은 먹기 쉽지 않다. 아마 이런 튀김법은 포르투갈에 뿌리를 둔 유럽, 혹은 일본식 튀김이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영국이나 포르투갈의 영향을 받은 홍콩, 마카오의 요리법일 수도 있다.

그러면 설마 중국에는 혹시 탕수육이 없다는 소리이냐고 오해할 수 있겠지만 절대 아니다. 탕추요리가 널려 있다. 대표적으로 탕추리지(糖醋里脊)가 있다. 리지는 등심이라는 뜻이다. 탕추파이구(糖醋排骨)도 있다. 돼지갈비에 달콤새콤한 탕추소스를 부은 요리다. 특정 돼지고기 부위로 조리한 탕추 요리가 너무 많아 두리뭉실한 의미의 탕수육이라는 명칭을 쓰지 않았을 뿐이다. 생선요리도 많다. 탕추리위(糖醋鯉魚)는 잉어, 탕추귀위(糖醋鳜魚)는 쏘가리, 탕추황위(糖醋黃魚)는 조기에 탕추 소스를 뿌린 탕추생선 요리들이다.

돼지고기건 생선이건 이들 탕추 요리 역시 튀김 옷을 두껍게 입히지 않고 녹말을 살짝 뿌리거나 아니면 녹말 없이 튀기는 것이 차이라면 차이다.

그러면 설탕과 식초로 만든 탕추 소스로 조리한 음식은 언제 처음 만들어졌을까?

19세기 중반의 아편전쟁 이후 생겨났다는 것은 천만의 말씀이고 요리법이 처음 문헌에 보이는 것은 원나라 때 문헌 『거가필용』이다. 하지만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당나라 의학서인 『비급천금요방』에도 한입 가득 탕추 소스를 머금었다는 내용이 있다. 미루어 짐작컨대 당나라 때 제당기술이 발달했으니 설탕을 활용하는 탕추소스 역시 이 무렵 생긴 것이 아닐까 싶다.

근대 이전까지만 해도 설탕은 값비싼 감미료였으니 탕추 요리 역시 상류층의 고급음식이었을 것이다. 그 때문인지 청말의 서태후가 탕추요리를 그렇게 좋아해 의화단의 난으로 8국 연합군에 쫓겨 피난갔을 때 그 난리통에도 탕추생선(糖醋熘魚)을 맛보고는 만족해 요리사에게 큰 상을 내렸다고 한다.

세계로 퍼질 만큼 맛있기 때문일까, 탕수육의 역사도 영광과 굴욕으로 얼룩진 중국사만큼 파란만장했다.

글 윤덕노 음식문화 저술가

더차이나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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