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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우덕의 중국경제 이야기] 중국 대체할 아시아 14개국 ‘알타시아’(Altasia)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한우덕 차이나랩 선임기자

한우덕 차이나랩 선임기자

중국을 탈출하라! 여럿 글로벌 기업에 떨어진 특명이다. 소니도 나가고, 삼성도 지속해서 사업을 줄여가고, 애플도 겉으로는 태연한 척하지만 속으로는 빠져나갈 궁리를 하고 있다.

거의 전쟁 수준이다. 세계 주요 기업들은 지금 'GVC(Global Value Chain) 전쟁'을 치르고 있다. 기존 공급망은 단절되거나, 아니면 왜곡되고 있다. 미국과 중국 사이의 패권 경쟁, 여기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겹치면서 더 꼬이고 있다. 전쟁에서 낙오되면 시장에서 쫓겨날 판이다. 기업들로선 생사를 건 싸움이다.

그러면 어디로 가야 할 것인가? 중국만 한 곳이 어디 또 있는가?

'Altasia'(알타시아).

영국의 경제전문지 이코노미스트가 만든 용어다. 대체라는 뜻의 'Alt'에 아시아의 'asia'를 합쳐 만들었다. '중국을 대체할 만한 아시아의 나라들'이라는 뜻이다.

'알타시아'는 탈(脫)중국 흐름을 어떻게 봐야 할지, 우리는 어찌 대응해야 할지 등에 대해 많은 것을 시사한다. 그 논리를 추적해보자.

탈(脫) 중국 흐름

중국은 세계 공장이다. 전 세계 수출의 약 15%를 차지한다. 전자 제품(부품 포함)의 경우 세계 수출(약 3조3000억 달러)의 약 3분의 1이 중국에서 나온다. 세계 PC의 90%는 중국에서 생산된다. 티셔츠에서 에어컨, 자동차에 이르기까지 중국은 무엇을 만들기에도 최적화된 곳이다.

이런 제조업 단지를 버린다는 건 쉽지 않다. 그런데도 나가려 한다. 미·중 무역 전쟁도 있지만, 가장 급한 건 사실 인건비다.

중국 인건비가 싸다는 건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얘기다. 아래 그래프를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지난 10여년 동안 평균 노동자 임금은 2배 올랐다. 시간당 8.27달러로 태국이나 인도, 베트남 등에 비해 2~3배 비싸다. 노동의존도가 높은 제품일수록 견딜 수 없는 구조다.

사진 더이코노미스트

사진 더이코노미스트

소니는 카메라 생산공장을 중국에서 태국으로 이전할 계획이다. 삼성의 중국 고용인력은 피크였던 2013년보다 3분2 이상 줄었다. 미국의 델컴퓨터는 2024년까지 중국에서 만들어진 반도체를 사용하지 않기로 했다.

이코노미스트는 탈중국 상황을 이렇게 전하고 있다.

문제는 어디로 가느냐다.

중국은 그동안 제조업 기술을 차분하게 쌓아왔다. 완제품뿐만 아니라 부품에서도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노트북PC의 경우 중국 내에서 모든 부품을 구할 수 있다. 게다가 인프라도 잘 깔려있다. 이젠 노동력 품질도 높다. 한 해 1000만 명 정도의 대졸 취업 예비생이 쏟아진다.
이런 조건을 제공할 나라를 찾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나온 게 바로 '알타시아(Altasia)'다.

14개의 아시아 국가들

특정 한 나라가 '세계공장' 중국을 대체할 수는 없다. 그러나 중국 주변의 아시아 다른 나라를 모두 합쳐 보면 얘기는 달라진다.

기술력이라면 일본, 한국, 대만 등이 있다. 물류 서비스 등의 측면에서는 싱가포르, 일본, 한국도 유리하다. 인도, 태국, 미얀마 등의 인건비는 중국의 3분의 1 수준이면 해결할 수 있다. 이코노미스트는 아시아에 포진하고 있는 이들 14개 나라를 묶어 '알타시아'라고 이름을 붙였다.

아래 그래픽은 이들 14개 나라와 중국을 비교해 보여주고 있다.

사진 더이코노미스트

사진 더이코노미스트

제조 총량으로도 중국에 뒤지지 않는다. 이들 14개 국가의 대 미국 수출액(2021.10~2022.9)은 6340억 달러로 중국의 6140억 달러를 능가하고 있다. 알타시아의 전체 노동인구는 14억 명으로 9억5000만 명인 중국을 추월한다. 대학(전문 기술 대학 포함)이상의 고급 노동자 숫자도 알타시아가 더 많다.

스펙트럼이 넓다. 임금 수준만 봐도 시간당 0.6달러만 줘도 되는 나가 있는가 하면 32달러를 줘도 사람을 구할 수 없는 곳도 있다. 그만큼 기술 수준도 다양하다. 일본, 한국, 대만 등 세계 반도체 시장을 주도하는 나라가 있는가 하면 방글라데시, 라오스, 미얀마 등은 전형적인 개발도상국 경제 체제를 갖는 나라도 있다.

이는 곧 선택지가 넓다는 걸 보여주고 있다. 알타시아 국가의 다양한 수준은 여러 단계의 제조업을 다 만족하게 할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한국의 위치는 어디?

용어가 생소할 뿐 '알타시아 트렌드'는 이미 깊숙하게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일본은 일찌감치 동남아시장에 진출해 사업 여건을 다져왔다. 한국 역시 신남방정책 등을 추진하면서 일본을 따르고 있다. 삼성이 베트남에서 스마트폰을 만들고, 현대가 인도네시아에 공장을 건설하는 건 이를 보여준다.

이코노미스트는 반도체 산업에서도 알타시아 움직임이 감지된다고 보도하고 있다. 대만 회사들이 움직인다. 폭스콘, 페가트론, 위스트론 등 대만의 반도체 업체들은 거점을 인도로 다각화하고 있다.

퀄컴은 베트남에서의 반도체 생산량(매출 기준)을 지난 3년 동안 3배 이상 늘렸다. 인텔은 호치민시에 33억 달러 신규 투자를 계획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말레이시아의 반도체 산업은 세계 칩 수출의 약 10%를 담당할 만큼 급성장하고 있다. 반도체가 먼저 가니 애플도 뒤따른다. 아이폰의 인도공장 생산 대수는 지금의 5% 수준에서 2025년 25% 정도로 높아질 것으로 예상한다.

하루아침에 이뤄질 일은 아니다. 중국은 여전히 부품 조달이라는 차원에서 최고의 효율성을 갖추고 있다. 동남아 지역으로 공장을 이전했어도 핵심 부품은 중국에서 가져와야 하는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 게다가 대부분의 동남아 알타시아 국가들은 인프라가 엉망이다.

그렇다고 GVC의 변화를 무시한 채 중국을 고집할 수 없다. 임금 비중이 높은 회사는 동남아 저개발 국가로 공장을 옮겨야 할 처지고, 첨단기술 회사는 미국의 제재로부터 안전한 곳을 찾아 움직여야 한다. 중국에서 나온 기업들은 기술 수준별로 가장 적합한 나라를 찾아 새 둥지를 튼다. 누군가는 그들을 받아줘야 한다. 알타시아는 그 대안이다.

14개 국가들 역시 '내가 중국의 대안'이라며 나서고 있다. 각국이 갖고 있는 특장점을 최대한 부각하며 투자 유치에 나선다. GVC의 위기를 기회로 만들기 위한 또 다른 싸움이다.

그렇다면 한국은?

우리나라 역시 중국에서 이탈한 투자를 받을 수 있는 14개 대안 중 하나다. 베트남으로 갈 공장이 있다면, 한국으로 올 기업도 있는 법이다.

우리는 알타시아 중에서도 반도체, 자동차, 조선, 화학 등 거의 전 산업에 걸쳐 경쟁력을 갖춘 나라다. 그에 걸맞은 기업을 끌어들일 수 있다. 중국으로 가는 서방 기업, 서방으로 가려는 중국 기업들의 가교 구실도 기대할 수 있다. GVC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 있다는 얘기다.
우리는 과연 그 흐름을 준비하고 있는가… 알타시아 흐름은 우리 경제에 새로운 도전이다.

한우덕 차이나랩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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