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류재윤의 내 친구, 중국인] 중국에서의 위기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중앙일보

입력

사진 셔터스톡

사진 셔터스톡

위기공관(危機公關, public relations in crisis)

위기엔 ‘위험(危)’ 외에 만회할 ‘기회(機)’가 공존한다.

중국말로 公館(공관)은 공공관계, 즉 PR을 말한다. ‘위기 공관’은 위기가 가져올 손해와 위협을 피해가거나 경감시키는 활동이다. 이미 발생한 위기를 어떻게 상대하느냐가 중요하다. 위기는 늘 있다. 이미 발생한 위기의 위험성은 위기공관 능력에 달려 있다. 잘못된 대응은 불에 기름을 붓는(火上澆油)격이다.

휘주연(徽州宴), 나무로 이미 배를 만들었다. 만회가 안 된다(木已成舟).

위기공관은 중국회사에게도 어렵다. 잘못하면, 다음이 없다.

‘휘주연’은 ‘휘주지방 음식점’이다. 안후이성 방부(蚌埠)라는 도시에서 결혼식 등의 큰 행사를 할 때 가장 선호하는 곳이다. 이 음식점 주인의 부인이 목줄 없이 개를 산책시키다가 주민과 다툼이 생겼다. 견주가 사과했다면 그냥 끝날 수도 있는 작은 사건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견주는 적반하장으로 큰소리를 쳤다. “내가 휘주연을 몇 개나 갖고 있다”, “몇천만 위안(수십억원)을 물어줄 수도 있다. 내 개보다도 값나가는 건 없다”, 심지어 경찰이 왔는데도, “감히 내 개를 건드려? 감히 내 개를?” 하며 광분했다. 사람이 지나치면 반드시 화를 당한다(人狂必有禍). SNS에서 사진과 동영상이 퍼진다. 휘주연은 황급히 공식 발표를 한다. 사과를 표하면서 “그런 행위는 회사와는 무관한 개인 행위다…. 우리는 대주주가 누구누구 두 명이다. (그녀는 주인이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불에 기름을 부었다. 회사와 무관하다고 선을 긋는 회사 측의 발뺌은 PR 전문가들이 보기에는 노련한 것으로 보일지 몰라도 일반 대중들의 생각은 달랐다. 네티즌들은 “그럼 그 대주주 두 명 중, 누구의 부인이냐?”며 진정성 없는 사과에 더욱 분노했다. 시민들은 휘주연 식사 예약을 취소했고, 재료 공급상은 거래를 끊었다. 사건 전까지만 해도, 예약을 잡기가 어려웠던 휘주연은 이제 손님도 오지 않고, 음식 재료마저 구할 수 없게 되었다. 방부 시의 택시기사는 “요즘 모르는 이들이 우리 시에 와서 휘주연으로 가자고 한다”고 전했다. 시민은 물론이고, 전국의 네티즌들이 식사가 아닌 구경을 하러 오는 핫 플레이스가 되어 버렸다. 결국 방부 시에 있는 휘주연은 문을 닫았다.

심지어 ‘탕창(躺槍, 누워 있다가 총에 맞다. 의문의 1패를 당하다)’의 경우도 있다

위기 공관에서의 실패는 엉뚱한 곳에까지 피해를 준다. 방부로부터 차로 약 480㎞ 거리인 항저우(杭州)에 동명의 ‘휘주연’이라는 음식점이 있다. 하루 매출이 우리 돈으로 약 600만원 하던 곳인데, 이 사건이 벌어진 이후로 10만원도 안 된다고 한다. 방부의 휘주연과 전혀 상관이 없다고 아무리 말해도 소용이 없다. 항저우 휘주연의 사장은 아무것도 모르고 누워있다가 총에 맞았다. 의문의 1패를 당했다.

물이 불어나는데 배는 낮아진다(水漲船‘低’)?

원래는 물이 불으면 배가 올라간다(水漲船‘高’)다. 비튼 말이다.

“시장은 커지는데, 오히려 매출은 뚝 떨어졌다”는 말을 하고 싶은 거다.
“아! 중국에 질렸다… P사 점유율 0% 초유의 적자 사태 발생(22.12.22)”. 우리나라 모 경제지의 기사 제목이다. 기사 본문에는 “중국이 P사를 홀대, 이 정도일 줄은…. 한때 20%에 달했던 P사 스마트폰의 점유율은 0%대로 추락했다”라는 내용도 있다.

핸드폰 사업이 중국에 진출할 때, 중국 정부는 특혜에 가까운 지지를 해줬다. (내용은 공개하기 어렵다. P그룹에서도 아는 이가 거의 없다). 갑자기 홀대한다면, 그 이유가 있을 것이다. 흔히들 중국 제품이 좋아졌다고 한다. 그런데, 애플은 여전히 잘 나간다. 제품력을 키웠어야 한다. 중국인들의 자국 제품에 대한 애국심 때문이라고 한다. 그런데, 애플은 중국회사가 아니다.

필자는 한동안 선전의 중국회사에서 일한 적이 있었다. 매너 좋은 중국 직원이 있었는데, 둘이서 양고기를 자주 먹었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나며 친해지자 대화의 화젯거리가 많아졌다. “P사에 계셨지요? 저도 예전에 P사 폰만 썼는데, 그 사건 이후로는 안 씁니다. 미안합니다.” 한다. 그게 왜 미안하냐고 대답했는데, 가만 생각해보니 ‘그 사건’에 대한 언급을 벌써 여러 명한테 들었다는 게 떠올랐다.

중국 남자는 절대 무릎을 꿇지 않는다(男兒膝下有黃金). 

“우리를 무시하고, 차별 대우했다!”

예전에 좋은 분위기 속에서 “지난 일은 정말 죄송했다”며 큰절을 올렸다가 낭패한 일이 있었다. 절을 받는 국장이 웃으며 “아니 이렇게까지 할 것은 아니고…”하며 더 화기애애한 장면이 연출될 거라고 여겼는데, 협상은 그걸로 끝나버렸다. 국장이 화를 내며 나가버린 것이다. 현장에 있었던 필자는 그때 중국인에게는 무릎을 꿇는 게 금기(禁忌)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늘에 절하고 땅에 절하고 부모에게만 절한다(跪天跪地跪父母). 여간해서는 절대 큰절을 안 한다. 큰절을 받은 국장은 한국인 임원이 그에게 절을 하자, “내가 도대체 너한테 얼마나 심하게 대했다고 이러느냐! 주위에서 나를 어떻게 보겠느냐!”며 발끈한 것이다. 중국인이 평소에 절을 할 리도 없지만, 절을 받는 것조차도 이렇게 민감해할 수 있다는 것을 그때 알게 되었다.

선전의 중국인 동료가 언급한 ‘그 사건’은 다음과 같다. 2016년, 미국에서 P사 핸드폰 폭발 사고가 났다. 미국시장에서는 빠른 사과와 리콜을 진행했다. 한편, P사의 최대시장인 중국에 대해서는, 중국에서 판매되는 배터리는 다른 회사의 제품이라 문제가 없다고 발표했다. (배터리 제조사 직원들의 얘기를 들어 보면 또 다르다. 자기네 제품 잘못이 아니라는 것이다. 억울하다는 것이다. 얘기를 들어보면, P사에서 일하다가 계열사인 배터리 회사로 옮겨온 사장이 “(P사의 핸드폰이 문제가 아니라) 우리 회사의 배터리에 문제가 있다. 우리가 잘못했다”라고 자진해서 시인했다는 것이다. 뭐가 진실인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미국 폭발 사건 이후, P사의 중국법인은 대리상들과의 만찬에서 (그래도 회사를 믿고) 많은 주문을 해줘서 고맙다는 마음을 표했다. 그런데, 그 방법에서 사고가 났다. 마침 저녁 늦게 술자리를 하고 있는데, 중국인 친구들로부터 사진과 함께 전화가 왔다. “네가 다녔던 회사 사진이다. 어쩌냐?”. 사진을 확인하고 깜짝 놀랐다. 큰 식당(또는 호텔 연회장)에서 여러 사람이 연단에 올라와서 ‘무릎을 꿇고’ 큰절을 올리고 있는 장면이다. 한국인뿐 아니라, 중국 직원들도 있었다. 어떤 이가 두 명을 손으로 눌러서 무릎을 꿇게 하는 듯한 모습도 보였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문화를 몰라서 그런 거다. 다 알 수는 없지 않나? 우리나라는 고마움에 대한 최고의 예의 표현이 큰절이다. 오해 마라….”라며 설명을 했다. 하지만, 필자한테까지 이렇게 빠른 시간에 알려졌다면, 이미 사고는 생긴 거다. 위기공관을 정말로 잘했어야 했다.

웅덩이를 피하다가 우물에 빠지다(避坑落井).

위기공관에 실패하니 더 큰 위험이 와 버렸다.

P사는 바로 발표를 했다. 관습을 잘 몰라서 벌어진 해프닝이라며 정중한 사과를 했다. 여기까지는 괜찮았다. 그다음 문장이 사고를 제대로 증폭시켰다. “원래 한국 직원들만 절하려고 했는데, 그것을 보고 감동을 한 중국 직원들이 함께한 거다”라는 식으로 변명했다고 한다. 중국 친구들이 또 난리가 나서 전화를 해댄다. “머리는 없어도 되지만 무릎은 절대 굽히지 않는다(腦袋可以不要 膝蓋不能彎)는 말도 모르느냐! 정말 반성은 안 하고 변명만 한다. 중국사람이 감동하여서 자발적으로 무릎을 꿇었다고?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회사는 중국 직원들의 개인 행위로 간주하게끔 하려 했으나 먹혀들지 안았다. 되레 위기를 증폭시켰다. 이때가 수많은 충성도 높은 소비자들이 떠나는 시작이었다고 한다.

그로부터 수년이 지난 2021년 4월에 또 핸드폰 사고가 났다. “폭발사고 아니었으면, (P사를) 거의 잊을 뻔했다”는 비아냥이 SNS에 올라왔다. 중국 매체는 “P사는… 전 세계 시장점유율 23.1%를 기록하며 세계 최대 스마트폰 제조업체의 위상을 드러냈다. 하지만 중국 시장 점유율은 지속 하락, 1%대에 그쳤다”라며, “물은 불어나는데, (그러면 자연히 배도 뜨기 마련인데) 오히려 배가 가라앉았다”라고 비꼬았다.

강 건너 불 보듯 하다(隔岸觀火).

미국에서 사고 났을 때, 중국법인은 안일하게 아무런 고민을 안 했다?

2016년 배터리 폭발사고가 났을 때, P사는 리콜대상 국가에서 중국을 제외했다. 이를 두고 소비자들 사이에서 차별 오해가 번졌다. 이번 폭발사고로 그때 일을 다시 끄집어낸 중국 언론은 “당시 P사의 사과와 설명이 불충분했다”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국내 매체의 보도다.

배터리는 매우 민감한 제품이다. 사고라는 게 항상 뜻하지 않게 발생할 수 있다. A는 “미국에서 사고가 났을 때, P사는 (최고의 수익을 내는 시장인) 중국을 고려한 발언도 해야 한다”고 말했는데 듣는 이가 없었다고 한다. “예상되는 상황은 간단하다. 딱 두 가지 경우의 수다. 중국에서도 터지냐 안 터지냐이다. 터진다면, 어차피 미국과 동일하게 조치를 해야 한다. 차별 대우하면 중국 소비자들은 분명히 불매운동까지도 벌인다. 그리고 오래간다! 만약 안 터진다면, 돈 안 들이고 립 서비스를 하는 것이다. 중국 소비자들은 존중받았다고 여길 것이다. 제품에 대한 고객 충성도가 올라갈 것이다. 그런데 이런 생각을 한국에서는 못 할 수가 있다. 중국 본사가 나서서 출장을 가서라도 본사를 설득해서 발표하게 해야 한다….” 그러고 나서, “내가 아무리 말해 줘도 뭔 말인지 못 알아들을 거야!”라며 A는 말을 맺었다.

속으로는 분명히 알아도 겉으론 말하지 않는다(心照不宣).

P사의 중국인들도 ‘큰절에 대한 금기’를 몰랐을까? 당연히 안다. 그런데, 왜?

사고 이후, 두 번의 위기 대응 실패를 한다. 첫 번째는, 큰절한 것이다. 중국사람들이 금기로 여기는 큰절을 할 때, 당시의 중국 직원들은 왜 말리지 않았을까? 어쩌면 사전에 연출한 것일 수도 있는데, 왜?

두 번째는, 진정성 있는 반성이 없는 P사의 언론발표다. P사의 발표문은 한국 사람이 작성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중국 직원이 번역해서 보도했을 텐데, 누가 봐도 설상가상(雪上加霜)인데 왜 말리지 않았을까? P사에 해코지하기로 암묵적으로 모두 동의한 건가?

중국인들은 늘 머리 내민 새가 총 맞는다(槍打出頭鳥)고 말한다. ‘잘 안 나서’는 것이다. 속으로는 분명히 알아도 겉으론 말하지 않는다(心照不宣). 바른말을 하면 열사가 된다(明言則爲烈士). 말은 훌륭했지만, 말한 당사자는 죽는 것이다.

참사가 거듭 증폭된 배경은, 우선은 중국 문화에 대한 이해 부족이다. 큰절이라는 금기는 물론, ‘체면 문화’에 무지했기 때문이다. 중국인들은, 큰절하자는 제안(또는 행동)을 한 한국인의 체면을 고려해서 말을 안 했을 것이다. “개인들이 알아서 한 것이다”라는 식의 발표문을 써준 본사(혹은 중국법인)의 한국인 상사의 체면을 고려해서 말을 안 했을 것이다. 중국 문화 속에서는 자연스럽다. 당연히 악의는 없었다고 생각한다.

심각한 사고에 대해, 잘못을 한국인에게만 돌리려는 억지가 절대 아니다. 무릎에 관련된 금기는 몰랐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행동과 사과문 발표 전에, 아마도 중국인 직원은 ‘분명한 말’이 아닌, ‘간접적으로 또는 다른 방법’으로 표현했을 것이다. 이를 눈치채지 못한 것은, 관련된 한국인들의 중국 실력이 부족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중국 문화에 대한 무지가 빚어낸 참사다.

불공평한 처사에 대해 분노를 느끼다(憤懣不平).

사고는 ‘과거’지만, 기억은 아직도 ‘현재’다.

현장에 있는 중국인 대리상들이 찍었고 또 바로 SNS에 바로 올렸다. 중국인이라면 누구라도 ‘큰절을 하는 그 순간, 대형 사고가 났다’는 걸 바로 안다.

위기공관을 제대로 해내려면, 우리가 중국문화를 잘 이해해야 한다. 다 알 수는 없다. 단, 중국사람들이 알고도 말을 꺼내지 않는다는 사실 정도는 알아야 했다. 중국에서 0%대로 추락한 이유가 중국 경쟁사의 약진과 더불어 (외국제품을 배척하는) 중국인들의 애국심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잘 모르고 있었던 다른 이유도 있다. (미국과 비교되는) 차별과 (큰절에 대해서 잘못을 시인은 안 하고 중국인들의 개인적 행위로 몰아갔던) 변명으로 이어진, ‘위기공관’의 실패다.

(얼마 전 상하이 자동차 전시회에서는 BMW가 곤혹을 치렀다. 지면상 이유로 생략한다.)

북을 뒤집어쓰고 있다. 아무것도 모른다(矇在鼓裏).

만약, 회사 내에서 한국 사람들만 모르고 있다면?

회의를 통해서, 중국 직원들의 솔직한 의사를 듣기 어렵다. 만약 누군가 강하게 주장하며 상대방 중국인과 다툼을 하는 경우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그 당사자들끼리 (거의 개인적인) 이해관계가 상충하였을 경우가 많다.

한국인끼리만 어울려서는 절대로 조직 내의 실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알 수 없다. 한두 명의 중국 직원과만 대화해도 안 된다. 최대한 많은 중국 직원들과 많이 소통해야 한다. 독대(獨對)가 제일 좋다. 차 안이든, 우연히 복도에서 만났든, 최선의 방법은 독대다. (차선으로 통역을 쓰든, 중국어 공부를 더 하자). 의견 청취하겠다고 부서별로 번갈아 가며 단체로 식사하는 건, 그야말로 ‘보여주기’다.

P사는 아마도 ‘무릎을 꿇게’한 사건과 연이은 ‘잘못된 해명’이 그렇게 심각할 줄 몰랐을 수도 있다. 그런데…. 갑자기 소름 돋게 하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이런 일이 있었는지조차 한국 본사가 아직도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류재윤 협상∙비즈니스 문화 저술가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