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경제] 지난해말 법정관리 졸업한 쌍방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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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몇년 동안의 힘들고 어려웠던 부도의 수렁에서 완전히 벗어났으니 이제는 정상을 향해 뛰겠습니다."

지난 3일 전북 익산시 신흥동 국가산업단지 내에 있는 (주)쌍방울 방적공장. 시무식을 위해 방적사 생산라인 앞에 모인 3백여명의 직원들은 주먹을 불끈 쥐고 힘차게 "파이팅"을 외쳤다.

2003년은 쌍방울에는 '재도약 원년'이다. 쌍방울은 지난해 11월 5년 만에 법정관리를 졸업했다. 이 회사는 새해 '국내 내의업계 최고 명가'로서의 입지를 확실하게 다지면서 그동안 취약했던 란제리.패션의류 부분을 강화해 매출목표 3천억원을 돌파할 계획이다.

쌍방울은 1963년 직원 80여명의 쌍녕섬유로 출발, 30여년 동안 메리야스업계 정상을 지키며 전북의 대표적인 향토기업으로 지역민들의 사랑을 받아 왔다.

그러나 90년대 들어 인건비 상승에 따른 국내 섬유산업의 경쟁력 약화, 무리한 사업 확장, 외환위기(IMF) 등으로 극심한 자금난에 부닥치면서 97년 10월 최종 부도를 냈다. 한때 3천억원에 이르던 매출은 98년 1천7백여억원에 그치고 한해 당기손실은 1천여억원이나 될 정도로 사정이 어려워졌다.

그러나 이같은 위기는 오히려 직원들의 자발적인 애사심을 촉발시켰다. 익산 공장을 중심으로 현장 종업원들이 "우리 손으로 회사를 구하자"며 구사운동에 발벗고 나섰던 것이다.

1년에 고작 10여건에 불과하던 공정개선 아이디어.제안은 부도 이후 40~50여건씩 쏟아졌다. 이를 통해 연 10억원 이상의 비용이 절감됐다.

한번은 새로운 기계를 들여왔지만 공장 건물 높이가 낮아 '도저히 안된다'고 설비업체 직원들이 철수해 버렸는데도 회사 직원들이 "우리가 한번 해보자"며 기계 다리를 자르고 재조립하는 등 며칠 밤을 새는 노력 끝에 이를 성공적으로 가동시켜 설비업체를 놀라게 했다.

이런 노력으로 쌍방울은 부도의 와중에도 오히려 최고급 제품을 생산해 내는 저력을 보였다. 다른 업체서 코마 40수(실 1kg에서 6만7천m를 뽑아낼 수 있는 굵기) 내의를 만들 때 코마 60수, 1백20~1백40수 제품을 생산해 냈다.

특히 이들 제품은 기계가 20여년이나 돼 이미 폐기 처분하거나 중국 등 해외로 이전했어야 마땅했을 노후 시설을 다시 조립하고 짜맞춰 이뤄낸 결실이라 회사 경영진의 감동은 더 컸다.

또 60여명의 남자 직원들은 부도 전까지만 해도 기사.기능사 자격증 소지자가 절반 이하였지만 지난 2~3년 동안 그 비율이 90% 이상으로 뛰었다.

이런 가운데 일부 직원들은 인도.파키스탄 등 면방업체로부터 "임금을 3~5배로 올려줄테니 와서 내의생산 노하우를 가르쳐 달라"는 유혹을 받기도 했지만 대부분 거절하는 의리도 보였다.

김강훈 부장은 "위기가 오히려 직원들이 한마음으로 단합되고 고부가가치 상품에 눈을 돌리게 된 계기가 됐다"며 "덕분에 회사가 법정관리 상태인데도 익산 공장의 연평균 수익은 15억원에서 30억원대로 두배 이상 증가했다"고 말했다.

또 10여개에 달하던 계열사 가운데 모기업 쌍방울만 남기고 모두 정리했다. 이같은 노력을 통해 쌍방울은 지난해 매출 2천6백여억원에 1백98여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렸다. 내의류만 놓고 볼 때 시장점유율 25%를 차지하며 국내 정상에 복귀했다.

송영호(56)사장은 "새해는 투명한 회사운영과 노사 합심을 통해 재도약의 원년이 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익산=장대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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