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구매 담당자들 B2B에 '딴죽걸기'

중앙일보

입력

LG.데이콤.액센츄어 등 국내외 업체들이 지난해 9월 자본금 1백67억원으로 설립한 소모성 자재(볼펜.종이 등) 전문 e-마켓플레이스(전자장터) ''GT웹코리아'' . 이 회사의 지금까지 거래중개 실적은 7백50억원.

출범 당시 목표치의 10%에 불과하다. 그나마 거래수수료가 없어 이 정도가 됐다. 수수료 수입이 없다보니 실질 매출은 사실상 제로(0) 다. 그래서 회사는 40명이었던 직원을 최근 25명으로 줄였다.

한때 인터넷 비즈니스의 총아로 각광받으며 국내 대기업들이 너나없이 뛰어들던 e-마켓플레이스가 침체의 늪에 빠졌다.

e-마켓플레이스는 기업에서 필요한 자재와 물품 등을 온라인상에서 사고 파는 기업간(B2B) 전자장터.

거래의 투명성과 신속성을 보장할 수 있고, 비용까지 줄일 수 있다는 이유 때문에 지난 1~2년새 대기업들이 의욕적으로 대규모 투자를 해왔다.

하지만 서서히 기지개를 켜는 일반 소비자 상대의 B2C 시장과는 달리 결과는 참담하다. e비즈그룹의 조주익 수석컨설턴트는 "전자상거래가 예상만큼 비용과 시간을 절약하지 못하는 데다 거래의 투명성을 원치 않는 한국적 기업문화가 결합됐기 때문" 이라고 말했다.

◇ 거래 한산한 전자장터=포스코.한국통신 등이 공동으로 지난해 9월 설립한 엔투비의 거래실적은 현재 월 1백50억원대.

SK그룹에서 독립한 MRO코리아의 월 거래규모는 10억원 선이고, 코오롱 등 16개사가 주주로 참여한 코리아e플랫폼도 이 수준이다.

이 회사에 참여하는 주주사들의 연간 구매액이 회사별로 수천억원에서 몇조원에 이르는 것을 감안하면 온라인 분야의 실적은 극히 미미하다.

대한상공회의소가 국내 B2B업체 3백51곳을 조사한 결과 지난해 한 푼도 매출을 못올린 기업이 전체의 42.7%라는 사실은 국내 전자장터시장의 현주소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 이유는=가장 큰 이유는 기업 내부의 반발이다. 공급처와 유착돼 있던 구매담당자들이 자신들의 구매행위가 빠짐없이 공개되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이다.

또 기업 입장에서도 거래내역이 공개되는 것을 마치 회사의 영업비밀이 빠져나가는 것으로 간주해 전자거래를 원치 않는 곳이 많다.

예컨대 엔투비는 5개 주주사 중 유독 H사의 거래 실적이 저조하다. 이에 대해 엔투비 관계자는 "납품업체가 H사의 고위층이나 구매담당자와 가까워 기존의 오프라인식 구매관행에서 벗어나려하지 않기 때문" 이라고 말했다.

예상만큼 온라인거래가 오프라인 거래보다 경제적이지 않은 것도 요인이다. 한 대기업의 구매담당자는 "기존 거래처에 전화하면 제품을 싸게 구할 수 있는데 굳이 온라인을 이용할 필요를 못느낀다" 고 말했다.

◇ 활로는=e- 마켓플레이스가 차세대 기업거래 방식이 될 것이라는 데는 기업체들도 대부분 동의한다. 다만 펜티엄급 전자거래기술에 386급 낡은 기업문화가 서로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

이에 따라 최근 e-마켓플레이스 업체들은 전자상거래가 활성화할 때까지 일단 살아남기 위해 오프라인과의 접목을 시도하거나(버티칼코리아) , 컨설팅 등 신규사업에 뛰어드는 등(E2오픈코리아)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김종윤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