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훈범의 세상탐사] 유권자가 더 현명해야 하는 이유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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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8호 31면

평균적인 인류의 삶은 예수 탄생 이후 1800년이 넘도록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극히 일부 계층에 편중된 부를 제외한다면 나머지 사람들의 삶은 ‘산다’라기보다 ‘연명한다’는 말이 더 잘 들어맞을 터다. 그러다 갑작스럽고 지속적인 성장이 이루어져 평균적 삶에까지 풍요의 온기가 전해진 건 넉넉잡아도 200년이 채 못 됐다.

그런데 풍요는 사람들에게 행복을 가져다 주지 않았다. 그것을 예리하게 간파한 사람이 카를 마르크스였다. 그는 이렇게 썼다. “집은 클 수도 작을 수도 있다. 주변의 집들이 똑같이 작다면 거주에 대한 모든 사회적 수요는 만족될 수 있다. 하지만 작은 집 옆에 궁전이 솟아오르면 그 작은 집은 오두막으로 위축되고 만다.” 절대적 부는 내 이웃에 대한 상대적 부보다 훨씬 덜 중요한 것이다.

유난히 지구촌 큰 선거가 많았던 올해처럼 이 명제가 진리로 다가온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한 미 대선의 경우가 특히 그렇다. 결과는 생각보다 싱거웠지만 과정은 땀 쥐고 피 말리는 순간의 연속이었다. 접전일수록 의외의 변수가 승부를 가름하는 법. 오바마 승리의 최대 공신은 엉뚱하게도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의 손자였다. 그는 오바마가 좋아서라기보다는, 할아버지를 욕하는 밋 롬니 공화당 후보가 미워서 롬니의 약점을 캤다. 그가 찾아낸 동영상은 롬니에게 회복 불가능한 펀치를 먹였다. “미국인의 47%는 세금도 내지 않고 국가에 의존해 사는 사람”이라는 롬니의 발언은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던 서민층, 특히 히스패닉계를 투표장으로 달려가게 만들었다. 롬니의 말이 아주 틀린 게 아님을 아는 오바마였지만 그는 “백악관 입주자는 일부가 아닌 모든 사람을 위해 일해야 한다”며 상대방 실수를 즐겼다.

그보다 앞서 치러진 프랑스 대선은 우리의 명제(상대적 부)를 코미디에 가깝게 그리고 있다.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은 전임자 정책에 사사건건 반기를 들어 17년 만의 사회당 출신 대통령이 됐다. 하지만 6개월이 지난 지금 그는 전임자의 길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법인세를 낮추고 대신 부가세를 올리겠다던 사르코지에게 기업의 부담을 노동자에게 전가한다고 비난하던 올랑드였다. 그런 올랑드가 프랑스 국내총생산(GDP)의 1%에 달하는 연간 200억 유로 안팎의 법인세를 인하하기로 했다. 치솟는 실업률과 떨어지는 신용등급, ‘시한폭탄’으로 불릴 만큼 악화된 경제 상황에 배겨낼 재간이 없었던 것이다. 프랑스 국민의 배신감이 큰 것은 자명한 일이다. 60%가 넘던 지지율이 36%로 떨어져 반쪽이 됐다.

공산당 일당체제 국가인 중국 역시 최고 지도부를 뽑는 당 대회에서 상대적 부의 명제를 피해가지 못했다. 후진타오에서 시진핑으로 권력이 이양된 제18차 당 대회를 관통한 국정이념은 ‘공평과 정의’였다. 최상위 집단과 최하위 집단의 소득격차가 10배 넘고, 계층 간 소득 불평등을 나타내는 지니계수가 폭동 수준을 넘어서는 0.5에 육박한 지가 이미 오래된 현실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까닭이다.

12·19 대선이 코앞으로 다가온 우리 또한 가장 큰 화두가 경제민주화 아닌가. 경제민주화를 외치지 않으면 대선 후보 대열에 끼지도 못할 정도다. 경제민주화가 무엇인지 합의가 없는 상황에서도 그 방법론은 놀라울 정도로 유사하다.

이렇게 지구촌 국가들의 가장 큰 선거 이슈가 상대적 부의 명제로 집약되는 것은 그만큼 지구촌 경제가 부의 편중과 빈부 양극화라는 난치병을 공통적으로 앓고 있다는 방증이다. 글로벌 경제 체제에서 경쟁력과 효율성이 강조되다 보니 양극화 증세가 더욱 악화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일정한 성장 단계 이후에는 형평에 중점을 두는 것이 잠재성장력을 높이는 요인이 될 수 있다는 게 많은 경제학자들의 생각이다. 상대적 부에 대한 분노와 증오가 초래하는 사회적 비용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하지만 중요한 건 이를 선거를 통해 이뤄내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뉴욕타임스의 명칼럼니스트 제임스 레스턴이 일찍이 간파했듯, “선거 때는 항상 나쁜 게 강조되고 과장되며, 이 과정에서 후보들은 설명해야 할 것을 도리어 왜곡하기 때문”이다.

대량해고 금지 공약으로 당선된 올랑드 대통령이 정책기조를 뒤집은 것처럼, 많은 후보가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성이 낮은 문제를 공언하면서 해결 방법을 왜곡함으로써 당선 가능성을 높인다는 것이다. 그런 후보 가려내기를 유권자들에게 기대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후보보다 유권자들이 더 현명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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