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지식] 플라스틱의 치명적 매력, 편리하고도 두렵고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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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플라스틱 사회
수전 프라인켈 지음
김승진 옮김, 을유문화사
440쪽, 1만5000원

플라스틱 책상 위에 놓여진 플라스틱 PC. 그 앞에서 우리는 플라스틱 키보드를 두드리고, 플라스틱 스마트폰으로 전화를 하고, 플라스틱 병에 담긴 음료수를 마신다.

 일주일에 한 번 페트병과 플라스틱 포장재 등을 모아 재활용 쓰레기를 내놓으며 한 번 쯤은 이런 의문을 품었을 것이다. 이것들은 모두 어디로 갈까. 제대로 재활용됐을까. 이렇게 플라스틱을 써도 정말 괜찮은 걸까.

 약간의 걱정과 불편한 마음, 그리고 죄책감도 잠시일 뿐, 우리는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듯 다시 플라스틱 세상 안으로 안겨 들어간다. 이 책을 쓴 저자의 표현을 빌면, “플라스틱은 현대생활의 뼈, 조직, 피부”이며 “현대생활의 기적이자 위협”이다.

  이 책은 우리가 플라스틱과 맺어온 관계의 궤적을 추적했다. 언제부터 우리가 플라스틱이 펼쳐 보인 황홀경에 빠져 그것을 끌어안았으며, 또 어떻게 무관심과 혼란이 뒤섞인 오늘날에 이르렀는지를 살폈다. 플라스틱 이야기를 알기 쉽게 풀기 위해 그는 여덟 가지 물건을 골랐다. 머리빗과 프리스비 원반, 의자, 링거백과 라이터, 신용카드, 페트병, 비닐봉지 등이다.

 머리빗은 1870년대 최초의 인조 플라스틱인 셀룰로이드로 만들어진 것 중에서 가장 주요한 제품이다. 그 전에 빗은 주로 상아로 만들어져 부잣집들만 쓸 만큼 비쌌는데, 가격이 저렴한 상아 모조품 빗이 등장하면서 서민들도 예쁜 빗을 가질 수 있게 됐다. 소비의 민주주의가 시작된 것이다. 플라스틱은 또 다른 ‘착한’ 역할도 했다. 당시 당구공과 빗의 재료를 공급하던 천연자원, 즉 코끼리를 구원했다.

 디자이너들에게는 매력적인 소재, 꿈의 물질로 간주돼온 플라스틱은 현대 미학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가볍고 쉽게 변형되는 특성 덕분에 기존의 소재로 도전하지 못했던 디자인을 현실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대 디자이너 카림 라시드는 “아름답고 민주적인 디자인을 만드는 데는 플라스틱이 최고의 물질”이라고 했다. 플라스틱 가구 중 가장 성공적인 게 바로 가볍고, 녹슬지 않고, 겹겹이 쌓을 수 있는 흰색 플라스틱 의자다. 오늘날 지구상에는 이런 의자가 수 억 개쯤 있다.

 그러나 저자는 “지금까지도 플라스틱은 우리에게 야누스 같은 존재”라고 말한다. 눈부신 가능성의 세계인 동시에 (혐오스럽기도 한) 싼 효용성의 영역으로 여겨진다는 점에서다. 플라스틱으로 만든 링거백은 현대 의학의 기적을 가져왔지만, 내분비계 교란을 일으키는 주범이기도 하다.

 또 몇 번 쓰고 버리는 편리한 일회용 라이터는 하와이 미드웨이에 사는 새들의 뱃속에서 발견되기도 한다. 하와이 군도 한 섬의 알바트로스 서식지를 청소했을 때 이곳에서 일회용 라이터만 천 개 정도 나왔다고 한다. 저자는 또 하나의 플라스틱 일회용품 비닐 봉지를 둘러싼 정치적 논쟁, 페트병 재활용의 득과 실도 조목조목 따졌다.

 지금처럼 플라스틱 소비가 지속된다면 2050년이면 연간 세계 플라스틱 생산량이 거의 9000억㎏, 지금의 네 배가 될 것이란다. 저자는 “우리는 너무 멀리 와버렸다”고 잘라 말했다. 플라스틱은 부를 민주화하고, 예술에 영감을 주고, 세상을 원하는 대로 바꿀 수 있다고 약속했지만 정작 우리 ‘아이들의 아이들의 아이들의’ 안전까지 약속하지는 못한다는 의미다. 이쯤에서 플라스틱과의 ‘눈 먼 사랑’에서 빠져 나와 지속 가능한 관계를 재정립해야 한다는 제언이다.

 요즘 ‘발로 뛰며’ 썼다는 책들이 자주 나오고 있지만, 이 책이야말로 저자가 발로 뛴다는 게 정말 어떤 것인지를 웅변으로 보여준다. 밀도 높은 취재와 균형 잡힌 시각, 대중적인 글솜씨 등 3박자를 갖춘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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