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 Report] 집 구하기 힘들어 생긴 풍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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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세종시에선 공무원들의 ‘집 구하기’ 행태도 다양하다. 전셋집을 못 구해 다급해진 이들의 작전 1순위는 ‘더부살이’. 국토해양부와 행복도시건설청의 국장 2명은 얼마 전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청사 가까운 한솔동의 ‘첫마을’에 집을 구하려 했으나 물량이 많지 않아 매번 실패했다. ‘007 첩보원’처럼 탐문을 거듭하던 이들은 결국 부처 내 동료 국장이 첫마을 아파트를 분양받은 걸 알고 이를 ‘공략’했다. 결국 약 60㎡(25평형)짜리 집의 방 3개를 나눠 쓰기로 합의했다. 국토부 국장은 “나이 들어 하숙생 같은 생활이 힘들겠지만 막판에라도 방을 구했으니 다행”이라고 말했다.

 이들처럼 ‘방 쪼개기’가 유행처럼 번지자 세종시는 아예 15일부터 ‘빈방 안내 운동’이란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아파트·원룸·일반주택에 남는 방을 공무원들에게 알선하는 것이다. 김택복 자치행정과 사무관은 “세종시 11개 읍·면·동에 남는 방이 2000여 개로 파악됐다”며 “이곳에 월세 등으로 입주를 희망하는 공무원을 주인과 연결해주고 있다”고 말했다.

 ‘초치기’도 다반사다. 경제 부처의 A사무관은 세종시 아파트를 분양받았다. 그러나 입주가 2014년 10월이었다. 별수 없이 2년간 전세를 얻기로 하고 한달 반 전 1억7000만원에(142㎡) 계약했다. 그는 “원래 마음에 드는 아파트를 1차로 찍어 놓고 다른 집을 보러 갔는데 ‘벌써 다른 이가 계약했다’고 중개업소에서 연락이 오더라”며 “이러단 집을 못 구하겠다 싶어 지금 집을 얼른 계약했다”고 혀를 내둘렀다. 분초를 다퉈 계약을 해야 할 만큼 경쟁이 치열하다는 얘기다.

 세종시 삼성부동산 관계자는 “전셋값이 뛰고 물건 구하기도 어려워지자 ‘눈치족·포기족’도 늘고 있다”고 귀띔했다. 당장 집 구하기를 포기하고 일단 서울서 출퇴근하다가 가격 동향과 추가 공급물량 등을 봐가며 나중에 집을 구하겠다는 이들이다. 신혼의 맞벌이 부부인 기획재정부 K 서기관이 그렇다. 홀로 내려가 살기로 결정한 그는 “집도 동났다는데 지금 구하러 다녀봤자 스트레스만 받는다”며 “닥치면 어떻게든 수가 생기지 않겠느냐”고 푸념했다. 연말까지 세종시로 옮기는 공무원(5400여 명) 중 서울·수도권에서 출퇴근을 각오한 인원은 1500명 안팎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왕복 4시간 이상의 ‘파김치 출퇴근’에 지칠 가능성이 크고, 이럴 경우 전셋집 마련에 나서는 공무원도 증가할 전망이다. 집 구하기가 그만큼 어려워진다는 얘기다.

 아파트를 찾지 못한 이들은 가재도구가 갖춰진 ‘풀옵션 원룸’으로 눈길을 돌린다. 방 하나에 화장실 딸린 26~30㎡짜리가 보증금 500만원에 월세 40만원이다. 그러나 이마저 찾기가 쉽지 않다. 자녀 교육 문제 등으로 가족을 남겨 두고 ‘나홀로’ 세종시행을 택하는 공무원들이 원룸을 많이 찾기 때문이다. 2014년까지 입주 공무원은 올해의 두 배가 넘는 1만2000여 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세종시 ‘집 전쟁’은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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