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매맞을 각오로 쓴 대구人의 '자아비판'

중앙일보

입력

'TK정서’라는 저널리즘의 표현처럼 대구는 한국 현대사에서 독특한 위상을 차지한다.주로 지역 정치인들의 성향에서 비롯된 이 ‘정서’란 말은 기실 ‘지역감정’의 순화된 표현이다.

“대구가 보수적이고 배타적이며 심지어 수구적인 모습으로까지 비쳐지는”부정적 이미지의 원인이 비판의 도마에 올랐다.

더욱이 그 비판의 칼춤을 추는 사람들이 대구지역 대학에서 한국사를 강의하는 대구 토박이 젊은 연구자들이란 점이 눈길을 끈다.

이 책은 대구라는 한 지역의 역사를 다룬 향토사(鄕土史) 다. 대구에 처음 사람이 살았다고 추정되는 신석기시대(빗살무늬토기 발견) 부터 최근세사에 이르기까지 시대별로 주요한 역사적 사실을 20개의 항목에 나누어 담았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듯 이 책은 지역의 자랑거리를 늘어놓기에 급급하지 않다. 오히려 20세기 식민지시대와 1960년대 이후 근대화과정에 대한 서술은 '몰매 맞을 각오로 쓴 대구 비판' 이라 부를 만하다.

"1956년 제3대 대통령 선거에서 진보당의 조봉암 후보에게 72.3%라는 압도적 지지를 보낸 사람들 역시 대구시민이었다. 이승만 후보에겐 27.7%의 표를 던졌다. " 당시 전국 득표율이 이승만 70%, 조봉암 30%였던 점을 감안하면 대구시민들의 투표성향이 대단히 진보적이었음을 보여준다.

그런데 이런 대구가 마치 '보수의 온상' 처럼 인식되는 이유는 우선 "5.16 군사쿠데타 이후 30년 넘게 이 지역 출신 정치군인들이 권력을 독점했기 때문" 이다.

그런데 더욱 큰 문제는 "군사정권이 종식된 후에도 과거에 함몰되어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고 있는 일부 지역 출신 정치인들, 그리고 그들과 결탁해 혜택을 누려온 일부 인사들이 자신의 입지를 유지하기 위해 여전히 집단 이기주의를 조장하고 있다는 사실" 이다.

결국 대구의 훼손된 이미지는 "현실정치에 의해 만들어진 허상" 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책은 "방관적 자세를 취해온 대구사람 대부분도 그 책임의 일단을 면하긴 어렵다" 고 지적한다.

기실 새로울 것도 없는 분석이고 관점에 따라 다르게 보일 수도 있는 부분이다.

1963년 제5대 대통령 선거에서부터 지역감정이 선거의 주요 득표수단으로 활용되었다는 지적도 마찬가지다. 따지고 보면 젊은 학자들의 "내탓이오" 가 새로울 뿐인데도, 그 진부함이 새롭게 느껴지는 현실은 참으로 안타깝다.

이외에 이 책엔 근대 이전의 대구에 대한 관심을 유발할 주제들이 많다.

이를테면 삼국통일 후 통일신라는 대구로 천도를 추진했음이 『삼국사기』의 기록으로 남아있고, 후삼국시대 왕건과 견훤이 대구 팔공산 부근에서 벌인 운명을 건 전투에선 견훤이 이겼지만 대구사람들의 민심을 얻은 왕건이 최종 승자가 된 점 등이다.

그리고 교통의 요지였던 대구가 조선시대 퇴계 이황과 남명 조식으로 대표되는 영남 사림의 집결지였으며,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성벽으로 둘러싸였던 도시가 일본에 의해 성벽이 모두 파괴돼 흔적도 찾아볼 수 없게되었다는 점도 흥미롭다.

어쨌든 역사적 대구의 밝고 어두운 면을 골고루 조명한다는 점에서 지방자치제 실시 후 많이 선보인 단순 지역 홍보물과는 격이 다른 역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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