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도 버스처럼 지원” “외국서도 없는 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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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국내에서 택시는 정체성이 모호하다. 버스나 지하철보다 훨씬 편하고, 필요할 땐 언제든 이용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는 고급 교통수단이다. 하지만 요금으로만 보면 대중교통수단에 가깝다. 일본만 해도 택시 기본요금은 710엔(약 9560원)으로 버스 요금 200엔(약 2690원)의 3.6배다. 반면에 서울 택시는 기본요금이 2400원으로 버스요금(1050원)의 2배가 조금 넘는 수준이다. 게다가 물가에 영향을 준다는 이유로 정부나 지자체가 택시요금 인상을 통제하고 있다. 대신 유가보조금을 지급하고 일부 세제혜택을 준다. 택시의 정체성을 한마디로 규정하기 힘든 이유들이다.

 최근 국회 국토해양위에서 택시를 대중교통에 포함시키는 내용을 담은 ‘대중교통 육성 및 이용 촉진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통과시킨 배경에는 이런 모호한 상황들이 적지 않게 작용했다. 물론 대선을 앞두고 25만 대에 달하는, 기사수로 따지면 30만 명(법인택시 일부는 1일 2교대 기준)이 넘는 유권자를 의식한 측면이 가장 크다. 25만 대 중 16만 대는 개인택시다.

 개정안은 최봉홍 새누리당 의원, 박기춘 민주당 의원 등 5명이 대표발의했다. 종전과 달리 택시를 대중교통 수단에 포함시킬 뿐만 아니라 택시사업자가 구조조정을 할 때나 환경친화적 택시를 도입할 때 재정지원을 하도록 했다. 현재 버스에 대한 지원책과 유사한 수준이다. 새누리당과 민주당 모두 사실상 당론으로 찬성하고 있어 개정안은 21일 법사위와 23일 본회의를 통과할 전망이다. 박 의원은 “버스기사는 월급이 300만원인 데 비해 택시는 평균 120만원으로 처우가 열악해 지원이 필요하다”며 “택시 지원이 늘어나면 승차거부가 없어지는 등 서비스가 개선될 것”이라고 말했다.

 택시업계는 법이 통과되면 ▶대중교통 환승 시 할인제도 도입 ▶공영주차장 사용 허용 등을 주장할 방침이다. 구조조정 지원금 역시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와 버스업계의 반대가 만만치 않다. 버스운송사업조합연합회 김순경 부장은 “재정이 한정된 상황에서 택시가 정부 지원을 받게 되면 버스·지하철에 대한 지원이 줄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그러면 결국 요금인상으로 해결해야 해 시민 불편만 늘어난다”고 주장했다. 버스업계에서는 택시가 버스전용차로 통행까지 요구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버스업계 노사는 법사위에서 개정안이 통과되면 전면 운행중단에 나서겠다는 입장이다.

 국토부 김용석 대중교통과장은 “현재도 한 해 7600억원을 유가보조금 등으로 택시에 지원하고 있다”며 “법이 통과되면 얼마나 더 부담이 늘어날지 가늠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그는 또 “현재 택시는 공급 과잉이 가장 큰 문제”라며 “5만 대 정도를 감차하는 등 택시 자체에서 문제를 풀어야 하는데 정치권이 무리하게 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도 우려를 표하고 있다. 강상욱 한국교통연구원 박사는 “택시 감차를 유도해 사업여건을 개선해 주고 이를 통해 처우를 개선하는 게 우선”이라고 말했다. 김시곤 서울과학기술대 교수도 “외국에서도 택시를 대중교통 수단으로 분류한 전례가 없다”며 “너무 정치적 고려로 밀어붙이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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