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광원전 앞 2500명 시위 … 전남, 정부에 민관조사단 요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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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영광 지역 주민들이 15일 영광군 홍농읍 영광원전 앞에서 범국민 결의대회를 열었다. 전국의 환경·종교 단체 관계자 등 2500여 명은 이날 영광원전의 가동 중단과 안전성 확보 대책 등을 촉구했다. [연합뉴스]

“불안해서 못 살겠다. 영광원전 가동을 전면 중단하라.”

 15일 오전 11시 전남 영광군 홍농읍 영광원전 정문 앞. 영광 주민과 전국 환경·종교단체 관계자 등 2500여 명이 대규모 시위에 나섰다. 최근 잇따른 고장과 부품 납품비리로 몸살을 앓고 있는 영광원전의 안전성 확보 대책을 촉구하기 위해서였다.

 2005년 ‘원전 주변 지역 지원법’ 제정 때 이후 7년 만에 열린 이날 집회에는 전국에서 80여 개 단체가 참가해 한국수력원자력 측의 부실한 원전 운영을 성토했다. 전국에서 모여든 참가자들은 쌀쌀한 날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광장에 모여 앉아 연신 구호를 외쳤다. 인근 도로 곳곳에는 ‘부실덩어리 영광원전’ ‘생명을 위협하는 원전’ 등 수십 개의 현수막이 내걸려 주민들의 성난 민심을 나타냈다.

 공식 행사 후 ‘영광원전 범군민대책위원회’의 공동위원장 4명은 이날 채택한 결의문을 김대겸 영광원전 본부장에게 전달했다. 결의문에는 정부와 한수원의 사과, 영광원전 1~6호기 가동 전면 중단, 국제적 수준의 안전점검 등이 담겨 있다. 나승만 범군민대책위 공동위원장은 “영광원전 3호기는 2004년부터 균열 조짐을 보였지만 원전 측은 지금까지 숨겨왔다”며 “군민들의 뜻을 모은 결의문 내용을 한수원 측이 반드시 실천해야 한다”고 말했다.

 범국민대책위는 이날 ‘원자력 안전위원회 해체’라고 적힌 현수막을 허수아비에 달아 불태우는 화형식을 하고 본격적인 투쟁을 선언했다. 또 장기적으로 시위를 벌이기 위한 컨테이너 1동을 영광원전 정문 앞에 설치했다.

 전남도는 영광원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에 종합대책을 건의하기로 했다. 정부 건의안은 ▶원전사고 시 민관합동조사단 구성·운영 ▶비상도로 4차로 신설 ▶원전 주변 주민 이주 대책 ▶국가방사선안전과학원 설립 등 크게 네 가지다. 앞서 박준영 전남도지사는 지난 13일 국회 예결위원들을 찾아 영광원전 안전과 관련된 예산 지원을 요청했다.

 원전 사고에 대한 민관합동조사단 운영은 도민과 도민들이 추천한 전문가를 30% 이상 참여시키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조사 결과에 대한 투명성과 신뢰도를 높여 주민들의 불신감을 해소하기로 한 것이다.

 비상시에 주민들의 대피를 돕기 위해 영광 법성면~홍농읍 간 국지도 4차로 신설(사업비 650억원)도 요청하기로 했다. 전남도는 방사선 비상계획구역(8~10㎞) 내에 뚫리는 이 도로가 예비타당성 조사 등의 절차 없이 즉시 추진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동안 전남도는 현행 왕복 2차로인 법성면~홍농읍 구간을 4차로 도로로 건설해줄 것을 정부에 수차례 건의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주민 이주 대책도 적극 추진된다. 전남도는 전원마을 조성 등 장·단기적인 이주계획을 세우기 위해 TF팀을 꾸려 주민들과 함께 이주 방안을 협의하기로 했다. 현재 홍농읍에는 31개 마을에 7400여 명이 살고 있다.

 국가방사선안전과학원의 설립(사업비 5770억원) 여부도 주목된다. 국내 원전 발전량의 28.5%를 맡고 있는 영광원전의 안전사고에 대비하고 비상진료 등의 시스템을 갖추기 위해서다. 전남은 영광원전 6기 외에도 황해권에 있는 중국의 원자력발전소 16기와 공사가 진행 중인 7기 등이 있어 과학원 설립의 필요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최경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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