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화재 진압 중 순직 … 뒤늦게 알려진 선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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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인천시 인하대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故)김영수 소방경의 빈소를 찾은 조문객이 고인의 영정 앞에서 눈물짓고 있다. 김 소방경은 소방위에서 소방경으로 1계급 특진 추서됐다. [신인섭 기자]

화재 진화 작업 중 순직한 고 김영수(54) 소방경의 빈소가 마련된 인하대병원 장례식장에 4일 오후 목발과 지팡이를 짚은 장애인 3명이 찾아왔다.

 “여기가 김영수 소방관님 빈소가 맞나요? 그동안 우리 단체를 많이 도와주셨어요. 마지막 가시는 길에 감사 인사라도 하려고 이렇게 왔습니다.” 인천시 연수구 장애인단체 회원이라고 밝힌 이들은 조문하는 내내 눈물을 훔치며 고인을 애도했다.

 김 소방경의 빈소에는 순직 이틀째인 이날 오후까지 각계 추모객 1700여 명의 발길이 이어졌다. 주말 당직 근무로 순직 당일 조문하지 못했던 동료 소방관들의 발걸음이 계속됐다.

 고인은 25년간 화재 현장을 누벼온 베테랑 소방관이었다. 평소 “소방서가 내 집이고 동료들이 친구이자 가족”이라 말할 정도로 자신의 직무에 대한 사명감이 강했고 동료들에 대한 정이 깊었다고 한다. 함께 출동했던 김광균(41) 소방장은 “불이 나면 항상 제일 먼저 현장에 들어가고 가장 마지막에 나오는 솔선수범하는 소방관이었다”고 말했다. 김 소방장은 “이번 사고 당시에도 동료들을 내보내고 마지막까지 남았는데 유독가스와 연기가 짙어 출입구를 찾지 못해 변을 당한 것 같다”고 애통해했다.

 그는 동료·후배 소방관들 사이에 ‘천사’나 ‘순둥이’란 별명으로 불렸다. 한 소방관은 “승진 욕심도 없어 부하 직원들에게 닦달 한번 안 하신 분”이라고 말했다. 묵묵히 일만 하던 김 소방경은 지난해 뒤늦은 승진을 해 부평소방서의 갈산 119안전센터 부센터장으로 재직해왔다.

 특히 김 소방경이 박봉을 털어 기부하고 사회 봉사활동을 해 온 사실이 그의 사후 뒤늦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월급의 3분의 1을 뚝 떼 복지단체·장학단체 등에 기부하고 쉬는 날이면 어김없이 봉사활동을 해 왔다는 것이다. 하지만 주위에 소문을 내지 않고 묵묵하게 봉사활동을 해 왔기 때문에 그의 선행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김 소방경의 누나 김영선(65)씨는 “동생은 평소 옷 한 벌 해 입는 것도 아까워할 정도로 검소하지만 남을 도울 때는 아낌이 없었다”고 말했다.

그와 20년을 함께 근무한 한 동료(50)는 “젊은 시절부터 직원들 모르게 어려운 이웃들을 찾아 다니며 기부와 봉사활동을 계속 했다”고 말했다.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던 김 소방경은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난해 10월 초등학교 동문인 아내 염용희(56)씨를 만나 결혼했다. 뒤늦게 맞이한 아내 염씨는 봉사활동을 함께하는 반려자이기도 했다. 부부는 쉬는 날마다 장애인단체와 보육원 등으로 봉사활동을 다녔다. 김 소방경은 죽는 순간까지 아내의 사진이 담긴 지갑과 휴대전화를 손에 꼭 쥐고 있었다고 했다.

 김 소방경은 지난 2일 오후 7시16분쯤 인천시 부평구 청천동에 있는 한 물류창고의 지하2층 화재 현장에 투입됐다가 7시간 만에 숨진 채 발견됐다. 소방 당국은 정부가 수여한 옥조근정훈장을 4일 유족에게 대신 전했다. 또 김 소방경을 이날부터 소방위에서 소방경으로 1계급 특진 추서했다. 김 소방경의 영결식은 5일 오전 9시 부평소방서에서 소방서장으로 엄수된다.

 김 소방경을 비롯해 올해 숨진 소방관은 6명이며, 화재 진압과 구조활동 과정에서 다친 공무상 부상자는 174명이다.

인천=최모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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