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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사가 숨쉬는 공간들 우리가 몰랐던 이야기들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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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5호 26면

저자: 김종록 출판사: 다산초당 가격: 2만4000원

언젠가부터 마케팅 기법으로 ‘스토리텔링’이라는 말이 종종 들려온다. 같은 사탕 하나를 팔아도 ‘이야기’가 숨어 있어야 더 잘 팔린다는 논리다. 스토리텔링을 경험한 손님들은 물건에 좀 더 흥미를 느끼고, 가치를 부여하고, 심지어 특별함을 느끼며 지갑을 열게 되기 때문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진부한 진리가 마케팅에도 통하는 것이다.

김종록의 『근대를 산책하다』

이 ‘스토리텔링’은 공간에 대해서도 고스란히 적용된다. 인문학자 김종록이 펴낸『근대를 산책하다』가 이를 입증한다. 저자는 교과서에 나오는, 그러나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역사적 장소 36곳을 골라 근대 역사의 흔적을 찾아 나섰다. 서울역, 신세계 백화점, 교보문고 등 우리가 일상에서 자주 들르고 지나치는 공간들을 차근차근 둘러보며 ‘이야기’를 들려준다. 역사적 사실들과 숨은 에피소드들을 읽다 보면 지금껏 무심코 지나쳤던 공간들이 흥미롭고, 새롭고, 특별하게 느껴진다. 책은 2010년부터 2년 가까이 중앙SUNDAY에 ‘사색이 머무르는 공간’이라는 제목으로 게재됐던 칼럼들에 살을 붙여 엮었다.

읽으면서 눈길을 끄는 몇 군데를 살펴보자. 책머리에 나오는 정동 배재학당은 1885년 선교사 아펜젤러(1858~1902)가 세운 최초의 근대식 학교다. 이승만 전 대통령, 한극학자 주시경, 시인 김소월 등 셀 수 없는 위인들을 배출했다. 이곳에서 학생들은 연필이라는 신문물을 처음 접했고, ‘협성회’라는 학생회를 통해 토론 중심의 민주 교육을 새롭게 경험했다. 모두 근대교육의 시초였다. 건물은 현재 학교가 이전한 뒤 역사박물관으로 변모했다. 내부 전시실에선 김소월의 시 ‘진달래꽃’의 초판본, 국내에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피아노를 볼 수 있다.

이처럼 공간을 소개하던 저자의 산책은 글 말미에 사유로 이어진다. “전인교육과 동아리 중심의 1인 1기를 내세웠던 배재학당의 교육철학에서 지금 교육문제의 해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라고.

교보문고도 그냥 대형 서점으로만 볼 순 없단다. 저자는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서점인 ‘회동서관’의 맥을 잇는다는 점에 의미를 뒀다. 1981년 교보생명 창업자 신용호 회장이 만든 이곳은 워낙 입지가 좋아 임차를 원하는 이가 많았지만 신 회장의 소신으로 서점이 세워졌다는 것. 도난과 훼손을 감수하면서도 책 살 돈이 없는 독자들을 배려해 개가식을 택했고, 초창기 687평 가운데 200평은 외국 서적으로 꾸며 국내 지식인들의 오아시스가 됐다. 낭독이 아닌 묵독으로 이뤄지는 이곳에서의 독서법이 ‘근대의 표식’임을 강조하기도 한다.

이 밖에도 우리나라 방송의 현대화 출발점인 ‘남산 서울애니메이션센터’, 82년 전에 지어져 근대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충정 아파트’ 등이 다채롭게 소개된다. 페이지마다 실려 있는 다양한 현장 사진들이 이 책을 읽는 재미를 더해준다.

이처럼 근대의 속살을 엿보고 나면 실제 현장으로 떠나고 싶은 마음이 동할지 모른다. 결국 물건을 사고 마는 고객처럼 말이다. 주저할 이유가 없다. 대부분 하루 반나절이면 충분히 도달하는 곳들이다. 그곳에서 아쉽고, 감격스럽고, 울분이 느껴지는 역사의 현장에서 150년 시간의 숨결을 느껴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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