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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은 지식의 반상회장… 사람이 모이고, 문화를 나누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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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서울 중구 세종대로에 있는 옛 서울시청사가 지난달 26일 서울도서관으로 탈바꿈했다. 계단식 열람 공간과 어린이를 위한 재미있는 디자인의 의자가 눈에 띈다. 북카페, 장애인열람실, 서울기록문화관 등도 이용 가능하다. [김도훈 기자]

옛 서울시청사가 서울의 대표도서관으로 다시 태어났다. 지난달 26일 개관 이후 5일 만에 이용자가 7만 명을 넘어섰고, 5700여 권의 책이 대출됐다. 지식을 향유할 수 있는 문화적 공간이 그만큼 절실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상대적으로 장서(20만권)가 적은 점은 채워나갈 숙제이지만, 시민에게 역사적 공간을 되돌려줬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서울도서관은 지역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지난 2년 간 국내 주요 도서관 30여 곳을 직접 돌아보고 연구한 두 명의 젊은 건축가에게 물었다. 바로 강예린(38·사진 왼쪽)·이치훈(32)씨다. 이들은 최근 연구의 결과물을 10개의 테마로 묶어 『도서관 산책자』도 펴냈다.

 100년 된 부산광역시립시민도서관에서 한국 도서관의 역사를 더듬고, 경기도 부천시의 도서관 체계를 취재해 도서관 정책의 명암을 따졌다. 책이 없는 국립디지털도서관을 누비며 도서관의 미래를 상상했다. 소개를 넘어 한국 지식의 정리와 확산을 흥미롭게 풀어낸 미시사(史)인 셈이다.

 저술 당시 서울도서관은 건설 중이라 목차에서 빠졌다. 하지만 그들은 건축 과정을 처음부터 관심 있게 지켜봤다고 했다. 이탈리아 출장 중인 이들을 전화로 만났다.

 -도심 한 가운데 대형 도서관이 들어섰다.

 “광화문이 바로 옆에 있고, 지하철 2호선 시청 역에서도 연결되는 알짜배기 땅이다. 한국은 도시가 먼저 발달한 후에 도서관을 지었기 때문에 땅값이 비싼 중심부엔 도서관이 없다. 주로 숲 같은 녹지공간에 많아서, 대중교통이 불편하다. 서울에서 접근성이 가장 좋은 곳에 도서관이 생긴 것은 시민들에겐 반가운 소식이다.” (강예린)

 -국내 30여 곳의 도서관을 돌았다. 건축학적으로 어떻게 평가하나.

 “우리나라는 공공 건축의 프로세스가 잘 마련돼 있지 않다. 도서관도 마찬가지다. 어느 도서관을 가든 공간의 구성방식이 똑같은 이유다. 설계 과정에서 개별 도서관의 운영자와 이용자의 의견을 반영하지 않는다. 건축만 놓고 보면 비판할 점이 많지만, 구조적인 문제라 마냥 지적할 수는 없다.” (강)

 -도서관이 어떻게 다양할 수 있을지 상상이 안 된다.

 “서가와 열람 공간을 보다 창의적으로 구성할 수 있다. 서울도서관의 경우, 1층과 2층 사이 경사로에 넓은 계단을 만들어 자유롭게 앉아서 책을 읽을 수 있도록 했다. 벽면에 서가가 있어 책을 뽑으러 가는 길이 짧다. 일본에는 서가만 있는 도서관도 있다.” (강)

 “최근 핀란드 중앙도서관 설계 공모전의 응모 요강을 보면 도서관의 다양성을 느낄 수 있다. ‘도서관이 때로는 공원이나 공연장이 되었다가, 카페나 라운지가 되고, 출판사와 인쇄소가 되어야 한다. 막 반납된 인기 있는 책들은 서고로 돌아가기 전에 로비를 지나는 사람들이 보고 다시 대출할 수 있도록 북 바(book bar)에 전시된다. 책을 통해 배운 요리를 이웃과 함께 실습할 수 있도록 부엌이 있어야 한다’ 등이다.” (이치훈)

 이번 책에서 줄곧 저자들이 강조하는 것은 공간뿐만 아니라 콘텐트도 달라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대표도서관’은 그 지역의 역사와 지리, 문화 등을 망라해 관련 자료를 보관하는 ‘아카이브(archive)’가 돼야 한다.

 강예린씨는 설립 100년이 넘은 부산시민도서관을 예로 든다. 해방 전후 각종 고문서 및 부산 관련 자료들이 잘 보관돼 있다. 일본에서도 자료를 찾으러 올 정도다.

서울 서대문 독립공원에 있는 이진아기념도서관의 열람 공간. 건축가 한형우씨가 설계했고 이치훈씨가 스태프로 참여했다. 저자들이 도서관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됐다. [중앙포토]

 “서울도서관도 ‘서울을 연구하려면 이 곳에 가야 한다’는 상징성이 있어야 한다. 베스트셀러가 없더라도, 서울시 관련 자료는 모두 집적해야 할 의무가 있다. 또 서울 시내 도서관을 유기적으로 묶을 수 있도록 ‘네트워크의 핵’이 되어야 한다.” (강)

 -네트워크가 탄탄한 곳으로 경기 부천시의 예를 들었다.

 “부천은 대형도서관과 작은도서관이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 작은 도서관은 접근성이 좋지만 책이 적고, 대형도서관은 접근성이 나쁘지만 책이 많다. 그래서 작은도서관에서 책을 신청하면 대형도서관에서 배달해주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사실 도서관마다 운영주체가 달라서 이런 시스템을 만들기 쉽지 않다. 시 차원의 노력이 있었다.” (이)

 -서울도서관이 또 고민해야 할 과제는.

 “각종 행사와 집회의 장인 시청광장과 공생해야 한다. 예컨대 행사가 열리면 참가자들이 도서관 화장실 이용할 텐데 이런 충돌을 지혜롭게 풀어야 한다. 또 광장이 도서관의 일부가 될 수도 있다. 미국 뉴욕도서관 앞엔 브라이언 파크가 있는데 책을 공원에 들고 나가서 읽을 수 있다.” (강)

 지난 2년 간 도서관을 공부하면서 저자들도 많은 변화를 겪었다. 함께 건축사사무소를 운영 중인 이들은 도서관 후원 및 자원봉사 조직인 ‘도서관 친구들’의 회원이 됐다. 미얀마에 도서관 건립을 돕는 후원회도 참여한다. 각종 해외 도서관 공모전에 지원했고, 경남 창녕군 우포에 건립될 ‘우포자연도서관(가칭)’을 설계 중이다. 오래된 농가의 창고를 개조해 우포늪을 찾는 이에게 생태 교육의 장을 마련할 계획이다.

 -지금 시대가 원하는 도서관은 어떤 모습인가.

 “도서관은 더 이상 책을 보관하거나 읽기만 하는 장소가 아니다. 지역사회 네트워크가 가능한 마지막 공공 건축물이 될 것이다. 요즘 동네 반상회도 없어지는 추세인데 도서관이 그 역할을 해줄 수 있다. 서울 광진정보도서관의 경우, 책을 매개로 강연을 열고, 재능 기부를 하고, 독서 토론 및 독서 캠프를 하는 등 지역사회 ‘링크(연결)’가 되고 있다. 그러려면 노숙인이 와서 책을 읽을 수 있을 정도로 문턱이 낮고 개방적이어야 한다.”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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