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육상] 최고의 승부 펼친 여자 장대높이뛰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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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경기는 다시 하고 싶지 않아요"

`여자 부브카' 스테이시 드래길라(31.미국)는 7일(한국시간) 열린 세계선수권대회 여자 장대높이뛰기에서 금메달이 확정된 뒤 마지막까지 함께 명승부를 펼쳤던 스베틀라나 페오파노바(러시아)를 얼싸안으며 이렇게 말했다.

최근 몇 년간 이 종목에서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최강의 자리를 지켰던 드래길라가 이날 얼마나 속이 탔었는지를 느낄 수 있는 대목. 새로운 세계기록 작성에는 아쉽게 실패했지만 상위 입상자 7명중 5명이 자신의 기록을 갈아치우는 등 4시간에 걸쳐 펼쳐진 접전은 초반부터 평범하지 않았다.

이날 경기에서 99년 대회 동메달 기록이었던 4m45를 넘은 선수는 모두 8명. 이 중에는 이미 자신의 종전 아시아 기록(4m42)을 뛰어 넘은 가오 슈잉(중국)등 3명이나 자기 최고기록을 갈아 치우며 예상 밖의 선전을 펼치고 있었다.

하지만 4m50까지 아시아최고기록을 올려 놓은 가오가 4m55 문턱서 좌절하고지난 대회 3위 타티아나 그리고리에바(호주)도 자기 최고 기록만 5㎝ 높인 채 4m60을 넘지 못하자 여전히 장대를 쥐고 있는 선수는 드래길라와 페오파노바 뿐이었다.

드래길라가 4m65를 2차 시기에 뛰어 넘고 페오파노바가 같은 높이에서 3차 시기만을 남겨 놓았을 때 승부는 이미 결정난 것처럼 보였다.

가냘픈 몸매의 21세 소녀인 페오파노바의 체력이 눈에 띄게 떨어진듯 도약부터 힘이 없었기 때문. 하지만 페오파노바는 3차 시기를 극적으로 성공하면서 결코 손쉽게 물러서지 않았다.

둘 다 4m70을 1차 시기에 가볍게 통과한 뒤 드래길라가 4m75마저 첫 도전만에 넘어서자 드래길라의 우승은 기정사실인 것처럼 보였다.

`2인자' 페오파노바의 최고 기록이 4m70이었기 때문. 하지만 코먼웰스스타디움을 꽉 메운 관중들이 숨죽이고 주시하는 가운데 4m75의 바를 향해 달려가던 페오파노바가 단번에 성공하자 경기장은 흥분의 도가니로 변했다.

현지 시간으로 오후 2시30분에 시작한 경기는 두 선수가 4m82이라는 누구도 넘어서지 못한 높이의 바를 노려보고 있을 때 6시를 넘어섰고 라이트는 하나 둘씩 불을 밝히기 시작했다.

하지만 두 선수는 4만5천 관중들의 박수 소리에 맞춰 번갈아 가진 3번의 도전에서 모두 실패했고, 결국 4m65를 넘었을 때 한 시기가 앞섰던 드래길라가 감격적인우승을 차지했다.

그렇지만 드래길라는 "둘 모두 넘버 원"이라며 페오파노바와 함께 트랙을 돌았고 관중들은 스포츠의 진수를 맛보게 해준 이들에게 기립박수로 보답했다. (에드먼턴=연합뉴스) 이정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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