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천도교·증산교·대종교 세계에 통할 보편성 갖추고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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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100여 년 전 한반도는 바람 앞의 등불 격이었다. 서구 열강은 조선의 숨통을 조여 왔고, 기존 통치이념인 성리학은 기능을 다하지 못했다. 민중의 정신적 혼란상이 극심할 때 민족종교로 불리는 신종교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천도교·증산교·대종교·원불교 등이다.

 탄생 후 한 세기가 지난 지금 신종교들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원광대 원불교학과 박광수(54·사진) 교수가 쓴 『한국 신종교의 사상과 종교문화』(집문당)는 이런 질문에 대한 대답이다. 600쪽이 넘는 두툼한 분량이다.

 -네 종교를 꿰는 공통점이 있나.

 “하나같이 개벽 사상을 내세운다. 불합리와 불평등의 ‘선천(先天) 시대’가 지나고 상생의 후천(後天) 개벽 시대로 우주적 시간이 변천한다는 철학이 바탕에 깔려 있다. 한데 후천 시대는 순탄하게 오지 않는다. 괴질·전쟁 등 혹독한 참극을 거쳐 온다. 바로 구한말의 모습이다. 타개책으로 신종교는 올바른 수행과 실천, 신앙생활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후천개벽이 한반도를 중심으로 이뤄진다고 본 것도 공통적이다. 한민족이 세계 변화의 중심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국수주의적 발상이 아닌가.

 “신종교들이 한결 같이 한민족 중심주의인 건 확실하다. 구한말 민족 정체성을 잃고 국가의 존망마저 위태로울 때 그런 위기를 넘기 위해서 민족적 자부심이나 주체적 힘을 되살릴 필요가 있지 않았겠나. 그렇다고 신종교가 한민족만을 고집한 것은 아니다. 세계에 내세울 만한 보편적인 사상을 갖고 있었다.”

 -구체적으로 어떤 건가.

 “강대국이 약소국을 침략하는 당시 현실과 달리 강자나 약자나 상호 의존적이고 생명적 관계로 맺어져야 한다고 봤다. 그런 연장선상에서 서로 돕고 협력해야 한다고 했다. 또 개벽의 주체를 당시 사회 지도층이 아닌 민중 전체로 확대했다. 지금으로 치면 보편적 인권을 내세운 것이다. 종교간에 자유롭게 넘나드는 회통적 다원주의를 내세운 점도 평가할 만하다. 이런 특성은 아직 해외에 제대로 소개되지 않고 있다. 체계적인 소개가 필요하다고 본다.”

 -신종교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어려서부터 집안 분위기가 타 종교에 열려 있었다. 원불교 창시자인 소태산(少太山) 박중빈(1891∼1943) 대종사도 이웃 종교를 알아야 원불교의 거대한 사상을 실천할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타 종교에 관심을 갖게 된 것 같다. 이번 책을 쓰는 데 3∼4년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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