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예의 전당] (26) - 레지 잭슨 (2)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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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널드 마르티네스 잭슨은 1946년 펜실베이니아 주에서, 과거 니그로리그 선수였던 마르티네스 클래런스 잭슨의 여섯번째 아이로 태어났다. 그의 어린 시절 가정 환경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그의 부모는 그가 6세일 때 서로 갈라섰으며, 그의 아버지는 한때 주류 밀매죄로 철창 신세를 지기도 했다.

그러나 잭슨은 어린 시절부터 야구에 재능을 드러냈다. 그는 11세 때에 이미 뉴욕 자이언츠 스카우트의 주목을 끌었으며, 고등학교 시절에는 4가지 스포츠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특히 투수·1루수로 뛰어난 활약을 보였으며, 3회의 노히트 게임을 기록하였다. 또한 미식축구의 러닝백으로서도 발군의 실력을 과시하였다.

그는 고교 졸업을 앞두고 수많은 대학에서 입학 제의를 받았으며, 결국 미식축구 장학생으로 애리조나주립대에 입학하였다. 그러나 미식축구 팀의 코치가 잭슨에게 본래 포지션이 아닌 디펜시브백 자리를 맡기려 하자, 잭슨은 야구로 방향을 돌렸다. 이후 잭슨은 팀 내에서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으며, 스포팅뉴스에서 선정하는 '올해의 대학 선수'에 뽑히기도 했다.

그는 1966년 드래프트에서, 전체 2순위로 캔자스시티 애슬레틱스에 지명되었다. 당시 1순위 지명권을 가지고 있었던 뉴욕 메츠는 잭슨 대신 포수 스티브 칠캇을 선택했으나, 이는 후에 뼈아픈 실수로 판명되었다. 칠캇은 아예 빅 리그에 입성하지도 못했던 것이다. 칠캇은 1991년 양키스에 지명되었던 투수 브라이언 테일러와 함께, 드래프트 전체 1순위 지명의 실패 사례로 자주 거론되고 있다.

잭슨은 8만 5천 달러의 보너스를 받는 조건으로 계약을 맺은 후, 애슬레틱스 산하의 팜 팀들인 루이스턴과 모디스토, 버밍엄 등을 거쳐 1967년 6월 9일 빅 리그에 입성하였다. 그러나 그는 1967 시즌 내내 그다지 만족스러운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

애슬레틱스는 1967 시즌을 마친 뒤 연고지를 오클랜드로 옮겼다. 처음으로 캘리포니아 팬들 앞에 서게 된 잭슨은, 1968년에 29홈런을 날려 이 부문 리그 4위에 오르며 가능성을 드러냈다. 동시에 그는 171번이나 삼진을 당하여, 1963년 데이브 니컬슨이 세운 당시의 이 부문 한 시즌 최고 기록(175회)을 갈아치우기 직전까지 갔다. 또한 에러 부문에서도 12개로 리그 외야수 중 수위에 올랐다.

애슬레틱스의 구단주 찰리 핀리는 잭슨의 허술한 수비와 잦은 삼진을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그는 고육지책으로, 현역 시절 완벽에 가까운 수비력을 자랑하였고 슬러거이면서도 삼진을 잘 당하지 않았던 조 디마지오를 타격 인스트럭터로 영입하여 잭슨을 지도하게 했다.

1969년, 잭슨의 장타력은 드디어 본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7월 말까지 40홈런을 날려, 1927년 베이브 루스와 1961년 로저 매리스가 각각 자기 시대의 역대 최고 기록을 세웠을 때보다 훨씬 빠른 페이스를 보였다. 결국 그는 9월에 극심한 부진을 보이며 매리스의 61홈런 기록을 경신하는 데에 실패하였고 홈런왕 자리도 하먼 킬러브루에 양보하였으나, 47홈런과 118타점을 기록하여 당대 최고 슬러거 반열에 올랐다. 또한 장타율과 득점 부문에서는 리그 수위에 올랐다.

스타덤에 오른 잭슨은, 1970년에는 다소 부진을 보였다. 그리고 이 해에 그와 핀리의 대립은 본격화되었다. 그는 어느 날 홈런을 날린 뒤, 홈인하면서 핀리를 향해 모욕적인 제스처를 취했고 이로 인해 큰 분노를 샀다. 결국 잭슨은 핀리에게 사과해야 했다.

사실 핀리는 그 전부터, 삼진과 실책이 너무 잦다는 이유로 잭슨에게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시즌 전에 잭슨과 연봉 문제로 마찰을 빚었으며, 시즌 중에는 한때 잭슨을 마이너 리그로 돌려보낸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커미셔너 보위 쿤이 '선수의 기량이 아니라 개인적인 감정 때문에 내린 결정'이라는 이유로 이를 가로막았으나, 핀리와 잭슨 간의 불화가 계속 이어지는 것까지 커미셔너가 막을 수는 없었다.

1961년에 애슬레틱스를 손에 넣은 뒤 1980년까지 이 팀에서 '제왕'으로 군림했던 핀리는, 잭슨과 마찬가지로 자기 주위에 끊임없이 적이 생기게 하는 인물이었다. 후에 잭슨은 자신의 애슬레틱스 시절을 회상하며 이렇게 말했다. "애슬레틱스 선수들은 한 가지 공통점을 갖고 있었다. 그것은 핀리를 싫어한다는 점이었다."

(3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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