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치료, 지혈에서 노화방지까지 … 나노 입자야, 고마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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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0면

고성능 현미경으로 본 각양각색의 나노입자들. 암 진단과 치료에 사용하는 의료용에서부터 산업용에 이르기까지 나노 입자의 활용 분야는 급속하게 확대되고 있다. [사진 천진우 교수]

연세대 화학과 천진우 교수는 최근 암을 잡는 나노입자를 개발했다. 눈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작은 직경 20나노미터(㎚·1나노는 10억 분의 1m)이며 자석의 성질을 띠지만 그 기능은 독특하다. 암세포만을 찾아가도록 ‘눈’을 붙여 놓은 데다 살상력까지 갖췄다. ‘눈’은 자석 입자에 암세포에서 주로 나타나는 단백질만을 찾아가는 물질을 붙여 만들었고, 암세포 살상력은 암세포가 자살신호를 스스로 만들도록 하여 해결했다.

 이 입자를 쥐에게 주입한 뒤 외부에서 암부위에 자석을 갖다 대자 그쪽으로 입자가 집중적으로 몰리고, 이어 암세포들은 스스로 자살하라는 신호를 세포에 전달했다. 그러면서 암세포들은 죽어 갔다. 이런 암 치료 효과는 쥐뿐 아니라 실험 동물 중의 하나인 제브러피시에게서도 잘 나타났다.

 나노입자가 의학용으로 본격 개발되면서 부리는 ‘마술’이다. 천 교수의 나노 자석입자뿐 아니라 각국에서 의료용으로 사용할 수 있는 다양한 나노입자들이 속속 개발되고 있다. 암을 비롯한 질병 진단에서부터 치료, 노화 방지 등에 활용할 수 있는 것들이다. 나노입자라고 해서 단순히 작게만 만드는 것이 아니다. 암을 찾아가거나 빛으로 작동하는 약물이 약효를 내도록 하는 등 다양한 지능형 기능이 첨가되고 있다. 이에 힘입어 나노입자들이 새로운 의학세계를 열어 가고 있다. 병소를 더 선명하게 보여 주는 MRI(자기공명영상촬영장치) 조영제도 나노입자의 일종이다.

 천 교수는 “요즘 개발되는 나노입자들을 임상에 적용하기 위해서는 안정성 시험 등 거쳐야 할 산이 많기는 하지만 미래에 나노입자들이 펼쳐갈 세계를 미리 살펴보기에는 부족함이 없다”고 말했다.

 스페인 발렌시아공대의 라만 마티네츠 마네츠 박사는 노화세포에서만 노화를 막을 수 있는 약물을 방출할 수 있는 나노입자를 올해 초 개발했다. 나노입자에는 수세미처럼 극미세구멍이 숭숭 뚫려 있고, 노화된 세포에서 나타나는 특이물질을 감지했을 때만 그 속의 약물이 나오도록 설계됐다. 피부 색소 침착이 일어나고, 빈혈과 혈소판 감소증을 보이는 환자의 노화 섬유세포에서 약물이 방출되도록 하는 데 성공했다.

 근적외선의 빛을 자외선이나 가시광선으로 변환할 수 있는 나노입자도 나왔다. 싱가포르 국립대 연구진은 빛을 받으면 약효를 내는 ‘광민감성 치료제’와 유전자 조절 등에 사용할 수 있는 나노입자를 개발했다. 사용방법은 이렇다. 먼저 나노입자를 환부 깊숙한 곳에 주입한다. 그 뒤 피부 속 깊은 곳까지 침투할 수 있는 근적외선을 피부 밖에서 쪼여 준다. 그러면 피부 속 나노입자가 그 빛을 받아 가시광선이나 적외선으로 변환한 뒤 약물에 쪼여 줘 약효가 나타나도록 한다. 곧바로 가시광선이나 자외선을 피부에서 쪼이지 않는 것은 근적외선에 비해 살 속 깊이 침투하는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암 등 다양한 질병 치료에 활용할 수 있다.

 미국 클리블랜드 케이스 웨스턴리버브대 에릭 라빅 박사팀은 교통사고 때 간 손상으로 인한 간 출혈 등 생체 내부 출혈을 30분 안에 멈추게 하는 락틱-클리코릭산으로 만든 폴리 나노입자도 올 4월 개발했다. 내부 장기에서 출혈이 생기면 빨리 봉합해 지혈을 해야 하지만 쉬운 일은 아니다. 출혈을 그대로 두면 사망으로 연결되는 경우가 많다. 폴리 나노입자를 주사하면 혈액 응고 과정을 촉진하는 역할을 하면서도 면역거부 반응이 없다. 혈액 응고에 관여하는 혈소판의 도우미인 셈이다. 쥐 실험 결과 이 입자를 주사하자 동맥 출혈이 30분 안에 멈췄다. 또 쥐 간을 손상시킨 뒤 폴리 입자로 치료를 한 쥐는 80%가 살아남은 반면 그렇지 않은 쥐는 한 시간 안에 절반이 죽었다. 연구팀은 자동차 피해자를 대상으로 실험을 준비하고 있다. 라빅 박사는 “이 입자가 출혈 환자가 많이 발생하는 전쟁터에서 부상 군인을 살리는 데도 기여할 것”으로 전망했다.

나노입자(artificial atom)=수 나노에서 수백 나노 크기의 인공 입자. 나노(nano)는 희랍어로 난쟁이라는 뜻이다. 노란색의 금이라도 나노입자가 되면 그 크기에 따라 붉은색에서 푸른색까지 다양한 색을 띤다. 나노입자는 배터리·의학·산업 등 다양한 분야에 활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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