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분수대

경쟁에 지친 이들이여 자연과 친구하자 시작은 주말농장부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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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일러스트=강일구]

올 단풍은 일교차가 커서 색이 곱다고 한다. 기온이 내려가고 햇빛이 약해져서 서서히 말라 죽어가는 현상이 단풍이라고 자연과목에서 배운 기억 때문일까. 아님 메마른 감정 탓인가. 떨어지는 잎이 나이 들어 사라지는 우리네 인생 같아 안쓰럽기까지 하다. 남들은 예쁘다는 울긋불긋 앞산 봉우리도 내 눈엔 시들어가는 브로콜리 같으니.

 더 추워지기 전에 산책이나 하려고 달달한 믹스커피를 들고 밖으로 나갔다. 제법 춥다. 아줌마들 서너 명이 단풍놀이에 열중이다. 보라색 조끼를 입은 아줌마가 낙엽을 하늘로 뿌리면서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하고 외치니 다들 자지러지게 웃는다.

 마을을 지나 논밭으로 내려갔다. 가을걷이로 다들 분주하다. 이곳은 유기농 쌀이 유명한 곳이다. 집집마다 시골초등학교 운동장만 한 논을 몇 개씩이나 가지고 농사를 짓는 탓에 다들 바쁘다. 연세가 일흔넷인 기와집 할아버지가 이 마을에선 막내라 하시니 평균 70후반은 되실 어르신들. 근처의 산 한두 개씩은 적어도 가지고 있다는 그들이, 커피 잔 들고 이리저리 촐랑대는 나보다는 훨씬 부자다. 논 팔고 산 팔아 은행에 넣으면 이자만도 얼마인데 저 고생을. ‘납득이 안 된다. 납득이.’

 “땅값이 올라서 다 팔면 이런 고생 안 하셔도 되잖아요.” 잠시 쉬고 계시는 기와집 할아버지께 철없이 물었다.

 “물려받은 땅이니 물려줘야지. 팔아먹든지 말든지 그건 지들 문제고. 그리고 참, 막내아들 중매 좀 서줘” 하신다. 직장이 없어 서울에서 놀고 있는 막둥이 아들이 서른아홉이 넘도록 총각이란다.

 산 하나 뚝 떼어내 결혼시킨 자식들은 명절 때만 보이던데. 직장 없어도 서울에서 노는 걸 보면 그 자식들이 농사지을 건 아닐 것 같고. 부모님 연세가 있으시니 길어야 농사일 10년? 그 후에 벼를 심었던 이 땅 위에는 과연 뭐가 얹혀 있을까. 펜션일까 아파트일까.

 엊그제 ‘도시농부 70만 시대’란 기사를 봤다. 광주광역시 아파트 주민 80여 가구가 논농사를 지어 수확한 쌀이 1200㎏이나 된다는데. 이들의 하루는 논에서 시작하여 밭에서 끝난단다. 출근 전 논에 들러 잡초를 솎아내고 퇴근 후엔 밭에 걸터앉아 석양을 바라보며. 다행이다. 농촌에는 농사지을 사람이 없어져서 쌀 생산이 점점 줄어들어 걱정인데 그나마 도시에서 벼농사 열풍이 불고 있다니.

 이런 도시농업 열풍은 세계 곳곳에서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고 한다. 독일엔 주말농장만도 100만 곳이 넘고, 일본에도 3000여 곳의 시민농원이, 뉴욕 한복판에는 600여 곳의 텃밭이, 미셸 오바마는 백악관에 부엌정원은 물론이고 꿀통까지 준비해 꿀도 생산해 먹는단다.

 이제 내 먹을 식량 내가 키워야 할까 보다.

글=엄을순 객원칼럼니스트
사진=강일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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