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단일화 안개 빨리 걷어내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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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투표일이 51일밖에 남지 않았는데도 대선이 ‘단일화 안개’에 갇혀 있다. 문재인 민주당 후보와 안철수 무소속 후보 중에 누가 언제 어떤 방식으로 최종 후보가 될지 알 수 없는 것이다. 이는 선진국에선 찾아볼 수 없는 한국만의 후진적 현상이다. 1997년엔 투표 40여 일 전 DJP 단일화, 2002년엔 20여 일 전 노무현-정몽준 단일화가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이번에는 후보 등록(11월 25~26일) 이후가 될 수도 있다는 얘기까지 있다.

 ‘단일화 안개’는 여러 부작용을 초래한다. 가장 우려되는 건 유권자의 혼란이다. 문-안 단일화가 되면 두 후보의 현재 정책은 많이 달라질 수 있다. 지금도 두 후보는 정치쇄신을 놓고 대립하고 있다. 대통령 인사권, 의원 수, 국고보조금, 중앙당을 대폭 축소하겠다는 안 후보의 안을 문 후보가 반대한다. 더군다나 두 후보는 단일화에서 서로에게 명분을 주기 위해 과감한 ‘제3의 공약’을 채택할 가능성이 있다. 97년 DJP 연합은 내각제 개헌이라는 ‘깜짝 공약’을 내놓았다. 이런 일이 벌어지면 유권자는 충분한 준비 없이 ‘공약 벼락’을 맞는다.

 단일화가 늦어지면서 정책 선거는 뒤로 밀리고 있다. 미국 대선에서는 최대 이슈가 일자리·성장·복지다. 반면에 한국에선 이런 공약은 퇴색되고 오직 단일화가 핵심 쟁점이다. 최종 후보가 없으니 TV토론이나 관훈토론처럼 유권자가 후보를 파악할 무대도 없다. 안 후보는 심지어 언론매체 인터뷰도 거절하고 있다. 방송사가 3자 토론을 하려 해도 ‘야권은 아직 결승을 치르지 않았다’며 박근혜 후보 측이 반대하고 있다. 만약 단일화가 투표일에 임박해 이뤄진다면 TV토론은 횟수가 크게 줄어들 것이다. 투표일 며칠 전이라면 아예 TV토론이 없는 기이한 현상까지 벌어질 가능성이 있다.

 원칙적으로 후보 단일화는 민주화가 완성된 선진 정치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편법이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15년과 10년 전 대선, 그리고 지난 수년 동안 있었다. 그러니 현실적으로 벌어지는 거라면 하루라도 빨리 이뤄지는 게 낫다. 하지 않을 거면 그 결정도 조속히 내려져야 한다. 현재 안 후보 측은 11월 10일께 종합 정책을 내놓는다는 구상이어서 그 전에는 단일화 얘기가 아예 없을 거란 전망이 많다.

 하지만 단일화가 불가피하다면 정책 대결보다 단일화가 선결돼야 한다. 나중에 바뀔 공약을 준비하기보다는 먼저 합친 후에 단일 공약을 협의하는 게 혼란을 줄이는 일이다. 두 후보 측은 조속히 ‘단일화 결론’을 내려야 한다. 하게 되면 단일화 방식도 오차범위 내에 승부가 결정될 수 있는 여론조사 같은 방법은 피해야 한다. 몇 %의 오차범위로 제1 야당의 운명이, 나아가서는 대선의 운명이 결정되는 게 있을 수 있는 일인가. 그러기에는 대선에 걸린 게 너무 크고 대한민국의 위상이 너무 높다. 두 후보는 빨리 단일화 안개를 걷어내고 유권자 앞에 ‘선명한 선택’을 내놓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