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 닿을 수 없는 독도…울릉도에서 너를 꿈꾼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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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지를 구분하는 데는 ‘때문에(Because of) 여행지’와 ‘그럼에도 불구하고(In spite of) 여행지’로 나누는 방법이 있다. 앞에 것이 날씨 좋고 볼거리가 많기 ‘때문에’ 유명해진 전통의 명소를 말한다면 뒤에 것은 종교단체의 성지순례지처럼 특별한 의미가 깃든 여행지다. 교통 불편하고 관광 인프라 허약하고 날씨가 안 좋아도, 그러니까 이 모든 단점에도 ‘불구하고’ 기필코 찾아가야 하는 숙명의 그곳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행지’다.

우리나라에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행지’가 있다. 대표적인 곳이라면 독도를 들겠다. 독도가 관광지냐고 따지신다면 모르시는 말씀이다. 독도관리사무소에 따르면 2005년 독도 관광이 시작된 이래 지난해까지 관광객 숫자는 74만6747명이었다. 올해는 지난 21일 연 관광객 20만 명을 처음으로 돌파했다. 2005년 4만1134명이었던 독도 관광객이 8년 만에 5배 가까이 성장한 것이다. 독도 관광객 100만 명 돌파 뉴스가 조만간 나올 참이다.

독도 가는 길은 참으로 험하다. 아니 고약하다. 서울에서 여정을 짜 보자. 독도를 가고 싶으면 먼저 울릉도를 가야 한다. 울릉도 여객선은 강릉·묵호·포항 세 곳에서 출발한다. 예를 들어 강원도 동해시 묵호항에서 울릉도에 들어간다고 치자. 이동시간만 서울~묵호항 4시간, 묵호항~울릉도 도동항 3시간이다. 여기에 울릉도~독도 2시간이 더해진다. 10시간은 잡아야 독도 앞바다에 도착하는 것이다. 10시간이면 인천공항에서 미국이나 유럽에 가는 시간과 맞먹는다.

독도 관광객 모두가 독도에 상륙하는 것도 아니다. 독도 입도율은 63%다. 날씨가 좋아서 독도 유람선이 출발해도 독도에 정박하는 경우는 세 번에 두 번 꼴이다. 파도가 조금이라도 일면 배를 댈 수가 없다. 독도 주변에 암초도 많고 선착장도 작아서다.

울릉도는 섬이기 전에 산이다. 거대한 봉우리가 망망대해 위에 불쑥 솟아 있는 게 울릉도다. 그래서 울릉도의 생명은 가파른 산에 기대어 산다. 해국도 절벽에 박혀서 피고, 사람 다니는 길도 벼랑에 매달려 이어진다. 도동 좌안도로에서.

독도에 내려도 진짜 독도 땅은 밟지 못한다. 시멘트 콘크리트로 다진 700평(2390㎡) 남짓한 동도 선착장에서 한 발짝도 벗어날 수 없다. 섬 전체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있어 문화재청의 허가 없이는 출입이 통제된다. 독도에서 머무는 시간은 기껏해야 20분이다. 그 20분을 위해 이 기나긴 여행을 나서는 것이다. 세상에 이런 불합리한 여행도 없다.

그래도 독도 관광에 나서는 사람은 줄을 선다. 울릉도 이상용 부군수는 “울릉도 관광객의 80%가 독도 관광을 희망하며 울릉도 관광객의 60%가 독도 관광을 체험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다른 이유는 없다. 독도여서다. 온갖 수고 감내하며 찾아가는 그 여행의 끝에 독도가 있기 때문이다.

문화체육관광부가 ‘국토 끝 섬 관광자원화 사업’을 재개했다. 독도·백령도·가거도·마라도 등 국토 맨 끝에 있는 섬 4개를 관광자원으로 개발하는 사업으로, 2009년 계획을 발표했다가 중단했고 지난달 다시 시작했다. 이 사업의 일환으로 지난 19~20일 자문교수단이 독도에 들어간다는 소식을 듣고 week&이 따라나섰다. 바다 날씨를 기다려 일정을 조정하고 울릉도 협조를 받아 행정선을 얻어 타며 요란을 떨었지만 독도 상륙은 끝내 실패했다. 파도가 조금만 일어도 독도는 문을 열어 주지 않았다. 독도를 800m 앞에 둔 바다 위에서 야속한 눈길만 보내고 돌아왔다.

허탈한 마음 숨길 순 없었지만, 그래도 소득은 있었다. 자문단으로 참가한 건국대 지리학과 박종관 교수의 말처럼 “이게 바로 독도 관광의 현실”이기 때문이었다. 뜻밖의 소득도 건졌다. 울릉도에는 마침 가을이 내려와 있었다. 울릉도는 가을도 좋았다.

글=손민호 기자
사진=신동연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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