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족 인디언 영웅의 후예, 역사 저편으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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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별세한 러셀 민즈. [AP=연합뉴스]

1973년 4월 미국 사회는 발칵 뒤집혔다. 300여 명의 원주민(아메리칸 인디언)들이 무장 봉기를 일으켜 사우스다코다주 운디드 니를 점거하는 사건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원주민들은 71일 동안 경찰과 대치하며 수차례 교전했다. 원주민 두 명이 숨졌다. 운디드 니는 1890년 미 기병대에 의해 수(Sioux)족 원주민 350명이 무참하게 학살당한 곳이다. 원주민의 봉기 현장이 미 전역에 생중계되면서 훤칠한 외모의 원주민 대변인이 일약 ‘스타’로 떠올랐다. 수족의 영웅 시팅불과 크레이지호스의 후예를 자처한 러셀 민즈였다. 92년 영화 ‘모히칸족의 최후’에서 인디언 추장으로 출연하기도 한 그가 22일(현지시간) 타계했다. 72세.

  수족 인디언 보호구역, 사우스다코다주 파인리지에서 태어난 그는 샌프란시스코에서 어두운 유년시절을 보냈다. 64년 ‘아메리카인디언운동(AIM)’이 주도한 알카트래즈섬 점거 농성에 참여하면서 인디언 인권운동가로 거듭났다. 70년 추수감사절엔 보스턴의 ‘메이플라워 Ⅱ’ 호를 기습 점거했다. 1620년 첫 유럽 이민자가 타고 온 메이플라워호를 복제한 배였다. 그해 민스는 미국 대통령 네 명의 얼굴을 조각한 러시모어산 꼭대기에 올라가 인디언 의식 퍼포먼스를 벌이기도 했다.

 거듭된 게릴라식 점거 농성으로 수차례 투옥됐고 반대파의 암살시도로 머리·배·가슴에 총도 맞았지만 굴복하지 않았다. 그의 방식은 과격했지만 60년대 미국을 휩쓴 흑인 인권운동과 맞물려 백인 지지자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인디언 사회에선 ‘기회주의자’로 비판받기도 했다. 디즈니의 만화영화 ‘포카혼타스’에 추장 목소리로 출연하는 등 30여 편의 영화, TV드라마에 얼굴을 내민 게 빌미가 됐다. 87년 대선때 자유당 후보 경선에, 2002년엔 뉴멕시코 주지사 선거에 나섰다. 그의 보수적 정치관은 진보성향의 인디언 지도자들과 부딪쳤다.

 지난해 후두암 판정을 받자 그는 백인들의 치료를 거부하고 고향으로 돌아가 인디언 민간요법에 의존해 암과 싸웠다. 『허리케인과 같이: 알카트래즈에서 운디드 니까지』의 저자 로버트 워리어는 “민즈는 100년 아메리카 인디언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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