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닥 예비심사 통과한 코오롱정보통신 유명렬 대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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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일 찾은 서울 등촌동 코오롱정보통신 사무실 벽면에는 입구부터 온통 컴팩 광고가 붙어 있었다. 또 한쪽에는 팜社의 PDA 실물을 본 떠 만든 모빌이 메달려 흔들리고 있고…. 담당자 말로는 IBM, 휴렛패커드 등 정보기술(IT) 업계를 대표하는 세계 유명 업체들의 이미지 광고도 여기 저기 부착돼 있단다. 도무지 코오롱정보통신에 온 것인지, 컴팩 아니면 팜사에 온 것인지 혼동이 일 지경이었다.

코오롱정보통신 유명렬(55) 대표를 만나자 의문은 간단히 풀렸다.

“저희 회사의 가장 중요한 전략이죠. 우리 목소리를 죽이고 파트너사를 부각시키는 것. 외국 회사가 코오롱정보통신에서 자기 회사에 온 것처럼 일한다면 그것만큼 좋은 게 어디 있겠습니까. 같이 호흡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자는 것이죠. 삼성SDS나 LG-EDS 같은 대형 시스템통합(SI) 업체들과 차별화할 수 있는 방법은 파트너사들이 마음을 열고 모든 것을 털어놓을 수 있도록 나를 내세우지 않는 구조를 만들어 나가는 것입니다.”

유사장은 미국 CA(컴퓨터 어소시에이츠)社와의 긴밀한 협조관계를 예로 들었다.

“99년이었던가요. CA와 50대 50의 비율로 라이거시스템즈란 합작법인을 설립했습니다. 여기서 코오롱 그룹 전체의 시스템 관리(SM)를 맡고 있죠. 지금까지 아주 순조롭게 협력 관계를 유지해 오고 있습니다. 이런 것이 높이 평가됐는지 지난 3월에는 네트워크와 시스템을 원격으로 관리하는 MSP 전문 서비스 업체 ‘MSP 원’을 CA와 50대 50으로 설립했습니다. 나를 내세우지 않는 전략 덕분에 한번 맺은 관계가 또 다른 형태로 계속 유지되는 것이죠.”

사실 파트너 기업과의 유별난 협력 관계는 코오롱 그룹 전체의 기업문화다. 지난 54년 코오롱상사 설립시 맺은 미쓰이 등 일본 기업들과의 좋은 관계가 지금까지 근 50여년간 유지돼 오고 있는 것처럼.
코오롱정보통신은 얼마 전 코스닥 예비심사를 통과했다. 오는 9월부터 코스닥 시장에서 이 회사 주식이 본격 거래될 전망이다.

“지금까지는 고객사, 사원, 대주주들에게만 신경을 쓰면 됐지만 이제부터는 소액주주들을 만족시켜야 한다는 새로운 미션이 생겼습니다. 고민 많이 하죠. 그들을 만족시킨다는 것은 결국 우리 회사를 통해 주주들이 이익을 보도록 해야 하는 것이잖아요. 그러자면 먼저 사원부터 만족시켜야 한다고 봅니다.”

직원에게 성과급 2천% 주기도

유사장은 1등 사원이 1등 고객을 유치한다고 믿는다. 그 1등 고객을 통해 높은 부가가치가 창출되고 동시에 회사의 시장가치도 높아져 결국 주주들에게 이익이 돌아간다고 그는 본다. 직원들에게 성과에 대한 최대한의 보답을 하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사실 코오롱정보통신은 3년 전부터 사원과 회사가 수익을 나눠갖는 시스템을 도입, 적용해오고 있다. 성과에 따라 차등 지급하는 방식으로 수익이 분배된다. 지난해에는 2천%의 성과급을 받은 사원도 있을 정도다.

“사장보다 월급을 많이 받는다니까요.”

하지만 그는 기분이 좋은 모양이다. 덕분에 업계에서 코오롱정보통신의 1인당 생산성이 가장 높다. 지난해 이 회사 직원 한 사람이 8억5천만원의 매출을 올렸고 올해에는 10억원 이상 될 것으로 예상된다.
“총 인원 3백5명으로 올 상반기 동안 1천4백50억원의 매출을 올렸고 올 연말까지 3천2백억원의 매출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1인당 매출액 10억원은 가볍게 넘지 않겠습니까.”

유사장은 철저한 ‘아웃소싱’ 신봉자다. 97년 11월 코오롱정보통신 사장으로 부임하면서 아웃소싱에 강한 드라이브를 걸었다. 현재 재무, 관리, 컨설팅, 솔루션 개발 등 필수 분야를 제외한 70∼80%의 업무를 아웃소싱하고 있다. 협력사만해도 전국에 1천3백여개사에 달할 정도다. 특히 코오롱 그룹 전체 시스템 관리 업무를 라이거시스템즈에 넘겼다.

그룹 의존도, 70%에서 8%로 낮춰

“노른자위를 모두 라이거측에 넘겨 코오롱정보통신이 제대로 실적을 올릴 수 있을까 의구심을 가지는 사람들을 많이 봅니다. 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아요. 코오롱 그룹의 SM 사업을 라이거측에 넘길 당시 코오롱정보통신의 그룹 의존도는 15%에 불과했습니다. 현재는 그룹의 컨설팅과 지식관리 부문만 저희가 맡고 있어 8%로 낮아졌습니다. 나머지 92%는 그룹 계열사가 아닌 외부에서 수주한 것이죠. 극히 일부분만 라이거에게 이양한 것입니다.”

유사장이 코오롱정보통신 대표로 왔을 당시만 해도 그룹 의존도가 70%에 육박할 정도였다. 하지만 자립경영을 주창한 그답게 지속적인 아웃소싱으로 그 비율을 낮춰 나갔다. 그 결과 경기의 부침에 시의적절하게 대처할 수 있는 유연한 조직을 갖추게 됐다. 다른 SI 업체들이 경기 침체로 어려움을 겪으며 당초 매출 목표치를 하향 조정하고 있는 현 시점에서도 코오롱정보통신이 목표 달성에 자신감을 보이고 있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철저한 아웃소싱으로 생산성을 높이고 고정비 부담을 줄여 나간게 바로 경쟁력으로 이어진 것이다.

32년 동안 한 우물 판 ‘코오롱맨’

코오롱정보통신은 현재 코오롱 그룹 산하 12개의 계열사 가운데 매출액 기준 4위를 차지하고 있다. ㈜코오롱이 선두를 달리고 있고 바로 위 3위는 코오롱 건설이다. 3, 4위간 매출액 차이가 거의 5천억∼6천억원 가량 나고 있지만 3년 이내에 3위 자리를 차지한다는 게 유사장의 목표다. 코오롱 그룹 차원에서도 코오롱정보통신에 큰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고 유사장은 설명한다.

“코오롱이 IT, 특히 정보통신 분야에 대한 회한을 갖고 있잖아요. 신세계통신이 SK로 넘어가면서 결국 이 분야에서 손을 거둘 수밖에 없었으니까요. IT와 관련된 관심이 저희에게 쏠릴 수밖에 없게 됐습니다. 그룹 차원에 추진하는 e-비즈니스의 중심축은 코오롱정보통신이 담당하게 될 것입니다. 그룹 사장단 회의에 가면 질문의 절반 이상이 저희 회사쪽으로 쏟아집니다. 진땀이 나죠. 덕분에 더 발전적이고 생산적인 생각을 많이 합니다.”
유사장은 정통 ‘코오롱맨’이다. 32년간 코오롱에서 한 우물만 팠다.

“입사한 지 5년쯤 됐을 때입니다. 옮기고 싶은 생각이 들더군요. 지도교수를 찾아가 상의했습니다. 그때 교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시더군요. ‘자네 이력서를 한 줄로 만들어 보게.’ 그때는 그 말의 가치를 잘 몰랐습니다. 지금은 알 것 같아요. 교수님의 권유를 받아들인 덕분에 회사 내에서, 산업 내에서, 그리고 개인적으로도 신뢰를 얻고 있으니까요. 변덕 없이 성실하게 살아온 것을 인정받고 있다고나 할까요.”
하지만 유사장에게도 정말 잊을 수 없는 힘든 시절이 있었다.

“코오롱 그룹이 1천5백억원을 투자해 마그네틱 분야 신규사업을 시작했습니다. 모든 장비를 다 설치해 놓고 공장을 돌릴 때 쯤인 86년 제가 마케팅 사업본부장으로 갔어요. 야심차게 유럽에 진출했는데 89%의 엄청난 덤핑 판정을 받았습니다. 저희뿐 아니라 삼성, LG, SKC 등 경쟁업체들 모두가요. 그걸 다 물면 신사업의 미래가 아예 없어지는 거잖습니까. 목숨을 걸고 막아야죠. 브뤼셀에서 살다시피 했습니다. 일주일에 두 번이나 간 적도 있었으니까요. 정말 기도하는 심정으로 일에 임했습니다. 유럽연합측과 2년을 싸운 끝에 1.9%의 덤핑 관세를 무는 것으로 최종 판결을 받았습니다.”

유사장 방에는 그림이 석 점 걸려 있다. 이동찬 명예회장의 작품이 두 점이고 나머지 한 점은 동유럽 국가에서 사 온 것이다. 유사장의 방문은 항상 열려 있는 만큼 그가 그림 앞에서 생각에 잠겨 있는 모습을 직원들은 왔다 갔다 하며 종종 볼 수 있다. 그만큼 유사장은 그림을 좋아한다. 시간이 있을 때면 화랑에 들러 그림을 감상한다. 물론 음악도 그가 좋아하는 장르 중 하나다. 대학 때는 합창단에서 바리톤을 맡았다. 부인도 그때 합창단에서 만나 결혼했다.

“얼마 전 당시 합창단을 지휘했던 신부님의 83세 생신을 맞아 찾아뵀었습니다. 얼마나 정정하시던지…. 하루에 1시간 이상 테니스를 치신다니까요. 그리고 아직도 5시간을 꼬박 서서 지휘를 하신대요. 저도 직장생활을 할 동안만큼은 코오롱에 모든 힘을 쏟고 은퇴한 이후에는 노신부님처럼 남은 인생을 문화적인 일에 보내고 싶어요.”

유명렬 대표 약력

·1946년 12월 28일 충남 대전生
·1965년 대전고 졸
·1969년 서강대 경제학과 졸
·1969년 ㈜코오롱 입사
·1986년 ㈜코오롱 이사
·1990년 ㈜코오롱 상무이사
·1995년 코오롱상사 상무이사
·1996년 코오롱상사 전무이사
·1999년∼현재 코오롱정보통신 대표이사 사장

유명렬 대표를 이해하기 위한 몇 가지 Tip

●그는 애처가다?

-유대표 부인은 성악가이며 이화여대 음대 교수인 남덕우씨다. 그의 부인 사랑은 각별하다. 그들은 연애 당시 대학가에서 유명한 커플이었다. 결혼 즈음 그가 속해 있던 합창단 지휘 신부로부터 진지한 충고를 들었다. “남편으로서 부인의 탤런트(talent)를 꺾으면 절대 안된다. 지원을 해 줄 의무가 남편에게 있다.” 한치의 망설임 없이 그의 부인을 독일 뮌헨으로 유학 보냈다. 지금도 그의 부인에 대한 외조는 음악계에 널리 알려져 있다. 매년 2회씩 콘서트를 여는 그의 부인을 위해 아무런 불평 없이 매니저 역할을 자청하고 나선다.

●그는 모범생이다?

-그렇다. 그의 모습만 봐도 그가 원칙에 충실한 사람이란 것을 알 정도다. 바른생활을 해 왔을 것 같은 분위기가 몸 전체에서 풍긴다. 담배는 전혀 피지 않는다. 처음부터 입에 대지도 않았다. “얼마나 잘했는지 몰라요. 만일 피웠다면 발코니 같은데 쭈그리고 앉아 불쌍하게 피웠을 거 아니에요.” 성악하는 부인에게 담배연기는 치명적인 무기가 되기 때문. 하지만 가끔 술은 즐긴다. 특히 포도주에 대해서는 조예가 깊을 정도다. 그러나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그가 술을 마시는 경우는 없다.

이경수기자 korst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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