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오면서 기부의 위력 절감 나 눔 전파해 양극화 풀고 싶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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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3호 06면

류시문(64·사진) 한맥도시개발 회장은 대화할 때 상대의 입 모양을 뚫어지게 쳐다보는 습관이 있다. 그는 어렸을 때 중이염을 심하게 앓아 청각장애가 있다. 지난해 수술을 받고 청력 일부를 회복했지만 몸에 밴 습관은 남았다. 그가 의지하는 지팡이는 또 다른 장애의 상처다. 7살 무렵 고향인 경북 예천의 마을 뒷산에서 놀다가 넘어져 왼쪽 다리를 다쳤고, 지체장애 판정을 받았다.

류시문 민주통합당 ‘나눔과섬김위원회’ 위원장

류 회장은 20대 초 무작정 상경했다. 마흔 넘어 토목 관련 안전점검 회사인 한맥도시개발을 차렸고, 연 매출 50억원의 사업체로 키워냈다. 그런 뒤 벌어들인 재산을 사회 곳곳에 기부했다. 2002년부터 조금씩 해온 기부 누적액이 30억원에 이른다. 고액 개인기부자 모임인 아너 소사이어티의 서울 1호, 전국 2호 회원이다. 2010년 12월부터 올해 1월까지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 초대 원장을 지냈다. ‘부자학’ 전도사로 통하는 한동철 서울여대(경영학) 교수는 “입고 다니던 옷이 너무 해져서 큰맘 먹고 구입한 양복이 27만원짜리였다고 하더라”며 “절약하고 기부하는 게 몸에 밴 분”이라고 표현했다.

민주통합당 문재인 대통령후보 캠프의 ‘나눔과 섬김 위원장’에 선임된 그를 19일 서울 영등포 민주당사에서 만났다.
 
-문 후보와는 어떤 인연이 있나.
“개인적 인연은 없지만 가치의 지향점이 같다. 문 후보는 청년 시절 인권변호사로 무료 변론을 많이 했다. 법률 서비스를 무료로 제공한 ‘재능 기부’를 한 셈이다. 문 후보와 나는 ‘나눔 DNA’에서 통한다고 생각한다. 이번 대선에선 특히 서민의 눈물을 닦아줄 수 있는 후보가 당선돼야 한다. 문 후보가 살아온 길을 보면 서민의 눈물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란 믿음이 든다. ‘사람이 먼저다’란 캠프의 모토에서 휴머니즘이 묻어나오지 않나. 지금 우리에겐 역사를 두려워하는 인물, 국민 속에서 오래 살아온 진정성 있는 리더가 필요하다.”

-위원장직을 맡은 배경은.
“기부가 주는 감동의 힘을 체험하면서 사적 영역뿐 아니라 공적 영역으로 파급 효과를 넓히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 원장으로 있을 때 정책과 제도의 뒷받침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실감했다. 문 후보 직할인 만큼 어깨가 무겁다. 서민이 중산층 사다리를 타고 오를 수 있도록 있는 힘껏 도울 생각이다.”

-정치 참여에 대한 주위의 반응은.
“다들 왜 그 진흙탕에 들어가느냐고 말렸다. 나도 밤잠을 못 이루며 고민했다. 하지만 시스템을 고치기 위해선 그 시스템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서민이 위로받는 정치를 하고 싶다.”

-‘나눔’은 문 후보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나눔’의 차별화 포인트는 무엇인가.
“어렸을 때 아버지는 내가 장애가 있으니 학교도 안 보내려 하셨다. 아버지를 설득하면서 결심했다. 남의 도움을 받고 사는 게 아니라 도움을 주며 살아가겠다고. 그리고 실제로 나누면서 살아보니 나눔은 힘이 세더라. 하나라도 더 가지려고 악다구니를 벌이는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내가 먼저 내려놓는다’는 건 다른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기 때문이다. 이런 ‘나눔의 힘’을 곳곳에 전파해 건강한 사회를 만들고 싶다. 민주당에만 ‘나눔과섬김 위원회’가 있는 게 차별화 포인트 아닌가.”

-구체적 방안은.
“다수의 소액기부를 지향하는 사회 분위기를 유도하려고 한다. 지금까지 기업이나 가진 자들은 면피를 위해, 혹은 대선 출마를 위해 기부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 이벤트성 기부 행사가 아니라 순수한 기부,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기부를 사회 구성원 모두가 할 수 있도록 여러 제도를 생각 중이다. 기업의 경우 일자리 창출 역시 나눔의 일환이다. 일자리 나눔은 내가 생각하는 나눔의 정점이다. 문 후보는 일자리혁명위원장까지 직접 맡을 정도로 일자리에 대한 의지가 확고하다.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사회적 기업을 활성화시키는 것도 목표다. 가진 자들이 나눔에 인색한 게 한국 사회의 병폐인 양극화의 주범이다. 이걸 바꾸고 싶다.”

-현 정부에서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장을 지내고 왜 야당에 합류했나.
“진흥원장을 지내면서 사회적 기업이 최우선이 아니라 윗사람에게 눈도장 찍고 예산을 따서 집행하는 것에만 혈안이 된 모습을 많이 봤다. 내게 간섭하거나 압력 줄 생각하지 말라고 했더니 반발이 심해 애를 많이 먹었다. 하지만 개인과 기업, 정부가 합심하면 사회적 기업 육성은 물론 취약계층 지원의 시너지 효과가 클 거란 점도 체험했다.”

-안철수 후보를 어떻게 보나.
“훌륭한 분이지만 경력을 자세히 보면 현 정부의 각종 위원회에 몸을 담은 것도 그렇고, 서민과 동떨어진 생활을 해온 측면이 있지 않나 싶다. 안 후보가 내세우는 ‘변화’의 바람은 큰 자산이지만 우리 사회에 너무 큰 모험을 요구하는 게 아닌가 싶다.”

-박근혜 후보와 새누리당에 대한 생각은.
“새누리당은 아무래도 부자를 위한 당 아닌가. 난 개천에서 붕어 잡고 미꾸라지 잡던 사람이라 부자당은 맞질 않는다. 경제민주화를 공약으로 내세우고 있긴 하지만 새누리당의 경제민주화는 경제활동의 주요 주체인 노동에 대해 두루뭉술하다. 노동자·서민에 대한 진지한 철학이 결여돼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또 박 대표가 서민의 눈물을 닦아주기 위해 어떤 일을 했는지, 어떤 희생을 했는지도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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