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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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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0면

이기섭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
(KEIT) 원장

“정부가 대기업에 지나치게 의존했다. 이런 실수는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 핀란드의 정책은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동등하게 성장하게 하는 것이다.”

 얼마 전 노키아의 추락으로 어려움을 겪은 후 핀란드 정부 경제수석고문이 한 말이다. 핀란드는 지나치게 노키아에만 의존했던 탓에 중견·중소기업이 성장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노키아가 위기를 겪자 나라 경제까지 휘청거리고 있다. 이처럼 핀란드의 대기업과 중소기업과의 동반성장 실패 사례는 대기업을 중심으로 성장해온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20년 장기불황을 견뎌내고 있는 일본이나 통독 이후 오랜 침체를 극복하고 유럽경제의 엔진으로 부상하고 있는 독일의 경우는 대기업과 함께 중견·중소기업이 서로 굳건하게 쌍끌이를 하는 등 경제가 안정돼 있다. 이러한 산업의 선순환 발전을 위해서는 중소기업군을 강화해 산업구조의 허리를 두텁게 만들어야 한다. 중소기업이 대기업에 기술을 의존하지 않고 동등한 입장에 설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기술력과 정보력이 취약한 중소기업이 자체 기술개발 능력을 가질 수 있도록 중소기업의 연구개발(R&D) 지원체제가 필요한 것도 이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국가연구개발사업 예산 규모가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 중소기업의 기술경쟁력 강화와 일자리 창출을 위해 성장 단계별 R&D 지원을 강화했으며, 글로벌 중견기업 육성을 위한 투자를 대폭 확대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가 다양하게 지원하더라도 정보력이 취약한 중소기업이 세계 시장흐름을 파악하지 못하면 ‘우물 안 개구리’식 기술개발을 할 수밖에 없다. 국가 간 또는 기업 간에 미래 산업을 주도하려는 기술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는 가운데 중소기업에 미래 산업에 대한 시장조사는 기술 개발의 필수조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중소기업이 스스로 최신의 글로벌 기술 시장 정보를 확보하는 데는 여전히 많은 어려움이 있다.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KEIT)은 이런 중소기업에 대기업이 직접 최신 시장정보와 R&D 방향을 제시하는 ‘R&D 상생협력 정보공유포럼’을 열고 있다. 특히 올해에는 로봇·그린카·섬유의류 등 20여 개 산업 분야로 확대하고 연중 지속적으로 포럼을 운영하고 있다.

 이의 일환으로 대기업의 기술개발 전략에 대한 로드맵을 상생협력 정보공유 포럼을 통해 중소기업에 공개하는 자리를 마련하고 있다. 포럼에서 얻은 유익한 정보는 미래 기술 개발을 위한 방향 설정과 투자 집행에 있어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도 많은 중소기업이 과감한 도전을 통해 미래의 신산업과 시장을 선점할 수 있도록 국내외 네트워크 인프라를 동원해 중소기업을 위한 정보공유포럼을 확대해 나가는 게 필요하다. 대기업은 R&D 방향을 제공하고 중소기업은 R&D 방향을 지원해 줌으로써 R&D를 통한 대·중소기업의 상생협력 동반성장이 더욱더 활성화되기를 기대해 본다.

이기섭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 (KEIT)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