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빠른 남대문·동대문 시장 덕에 미국서 성공”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6면

미국 텍사스주에서 쇼핑센터 8개와 패션매장을 운영하는 문대동 삼문그룹 회장. [사진 재외동포재단]

한국 가발 회사의 세일즈맨으로 미국 땅을 밟았다. 1971년 31세 때였다. 40년이 지난 지금, 미국에서 대형 쇼핑센터와 패션매장·골프장을 운영하는 유통·부동산 그룹의 최고경영자(CEO)가 됐다. 텍사스주에 기반을 둔 삼문그룹 문대동(72) 회장 이야기다.

 삼문그룹의 주력사업은 핸드백·구두·액세서리·스카프 같은 여성 패션상품을 수입·판매하는 것. 한국에서 수입하는 물량이 연간 3000만~4000만 달러어치다. 16~18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제11차 세계한상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방한한 문 회장은 “감각 있고 발 빠른 남대문·동대문 시장 덕분에 미국에서 사업을 키울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삼문의 성공비결을 “최신 유행 스타일이 반영된 다양한 제품을 빨리 내놓는 것”이라고 소개했다.

 “제품 가격을 낮추려면 공급처로부터 한꺼번에 사들여 오는 양을 늘려야 하는데, 이를 소화하기 위해서는 고객을 매장으로 많이, 자주 끌어들여야 한다. 그러려면 다양한 제품을 빨리빨리 교체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문 회장은 “최신 유행 제품을 빠르게, 싼 가격에 공급하는 전략에서 내가 패스트패션의 원조”라며 웃었다.

 문 회장이 원하는 속도를 맞춰줄 수 있는 곳이 바로 한국의 남대문·동대문 시장이었다. 삼문 소속 디자이너들이 최신 유행하는 문양·색깔·스타일을 반영한 상품을 디자인해 남대문시장에 주문하면 불과 며칠 만에 샘플이 오고, 2주면 수백 또는 수천 개 상품이 미국으로 들어왔다. 남대문·동대문 시장에 있는 진주·실버·가죽 등 소재별, 핸드백·스카프 등 품목별 최고 업체들과 긴밀한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다. 가격 때문에 중국산 수입 물량도 늘었지만, 유행이 늦고 내구성이 약해 고급 제품은 지금도 한국산을 고집한다. 문 회장은 한인 직원을 많이 채용했다. 그룹 직원 450명 가운데 200명가량이 한인이다. 그는 직원들에게 “회사는 종착점이 아니라 정거장”이라고 늘 강조한다. 회사에서 배운 것을 디딤돌 삼아 독립하라는 독려다.

 “사람은 꿈, 살아가는 목표가 있어야 합니다. 꿈이 없는 삶, 꿈이 없는 기업은 죽은 것입니다. 회사 다니면서 삼문이 어떻게 성장했는지를 잘 배워 나가서 자기 꿈을 펼치라고 얘기해요.”

 성실한 직원이 그만두고 창업한다고 하면 말리는 게 아니라 도와준다. 은행에서 대출을 받을 수 있도록 보증을 서주고, 비즈니스에 필요한 인물도 소개해준다.

 문 회장은 59년 한국외대 서반아과에 입학했으나 졸업을 1학기 남기고 중퇴했다. 학비를 댈 수 없어서였다. 가발 사업을 하던 친구 회사에 들어가 미국을 오가며 가발을 팔았다. 한국산 가발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 때였다. 스스로 이곳에서 사업을 해보기로 하고 가발가게와 패션매장을 몇 개 운영하면서 미국 땅을 밟은 지 10년이 채 안 돼 100만 달러 자산가가 됐다. 빌딩에 투자했는데 현지법에 어두워 재산을 몽땅 날리기도 했다. 남은 돈 10만 달러를 들고 1984년 다시 시작한 게 삼문그룹이다.

삼문그룹 문대동 회장과 두 아들, 이렇게 문씨 3명이 만들었다는 뜻에서 ‘삼문’이라 이름 지었다. 여성패션 도소매 업체 ‘삼문 트레이딩’이 주력회사다. 또 텍사스주 댈러스에 4개, 휴스턴에 2개, 샌안토니오와 오스틴에 한 개씩 8개의 대형 쇼핑센터와 골프장 2개를 운영한다. 지난해 그룹 매출은 1억5000만 달러(약 1660억원)였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