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브랜단 앤 트루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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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틱 코미디 '브랜단 앤 트루디'의 매력은 톡쏘는 멜로와 예술적 수준의 패러디입니다. 먼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남녀가 펼치는 신선하고 아름다운 로맨스가 관객의 마음을 따뜻하고 유쾌하게 물들입니다.

오히려 원제에서 패러디한 할리우드 로맨틱 코미디 '해리가 셀리를 만났을 때'를 무색하게 만들 정도죠. 삶을 바라보는 진솔한 시각과 자유분방한 영화적 상상력의 결합은 할리우드 물에선 기대하기 힘든 싱그러운 감동을 선사합니다.

소심한 성격의 교사 브랜단. 학교에선 동료 교사와 학생들에게 집에선 가족에게 시달리며 무료한 삶을 사는 그에게도 기쁨은 있습니다. 바로 영화 감상과 성가대에서 성가 부르기 인데요.

매일 고전 비디오를 보고, 영화의 대사를 줄줄 외우는 것으로도 모자라서, 집 안과 교실 벽을 온통 좋아하는 영화 포스터로 도배한, 영화광이죠.

그런 브랜단이 선술집에서 트루디를 만나며 인생의 일대전기를 맞이합니다. 처음 몬테소리교사를 사칭한 그녀는 밤마다 남의 물건을 훔치러 다니는 도둑. 하지만 브랜단이 부르는 성가를 사랑하고 그의 감춰진 내면에서 반짝이는 진실을 읽어낼 줄 아는 순수한 감성의 소유자이기도 합니다.

둘은 서로의 매력에 빠져들고 기쁘거나, 슬프거나 혹은 황당한 사건들을 거듭하며 사랑을 발견합니다. 브랜단은 영화 속에서나 느끼던 감정들을 삶에서 경험하며 인생의 즐거움과 행복의 의미에 눈 뜨죠.

맑은 날이 있으면 흐린 날도 있는 법. 평범한 진리처럼 브랜단과 트루디에게도 시련은 찾아오지만 진실한 사랑으로 맺어진 그들에겐 아름다운 미래가 비칠 뿐이죠.

두 번째 미덕은 영화의 감동을 배가 시키는 고전 영화의 패러디입니다. 그렇다고 '총알 탄 사나이'류의 슬랩스틱을 상상하면 안됩니다.

빌리 와일더 감독의 대표작 '선셋대로(1950)'를 시작으로 프랑스 누벨바그의 대표작 '네 멋대로 해라(60)', 존 웨인 주연이 웨스턴 '수색자', '노틀담의 꼽추' 등 브랜단이 직접 보거나 인용하는 수 많은 고전들은 지독한 영화광인 그의 내면과 함께 극 전체의 희로애락을 고스란히 투영합니다.

사랑을 나눈 밤 브랜단은 트루디의 얼굴을 보며 이탈리아 영화 '도시의 눈'의 대사를 읇조리죠. 트루디에게 실연 당한 후엔 '노틀담의 꼽추'를 보며 주인공을 따라 자신의 신세를 한탄합니다.

직접적인 패러디 역시 보는 재미와 함께 작품의 깊이를 더하는데요. 한 남자가 빗 속 수채구멍에 머리를 박고 누워있는 비장한 첫 장면. 바로 선셋대로의 시작을 인용했죠. "6개월 전으로 돌아가자"는 나레이션도 마찬가지입니다.

중절모를 눌러쓴 브랜단과 '해럴드 트리뷴' 티를 입은 트루디가 불어로 대화를 나누며 재현한 '내 멋대로 해라', 브랜단이 존 웨인의 뒷모습을 흉내낸 마지막 장면 역시 인상적입니다.

두 연인의 아름다운 로만스 속에서도 아일랜드의 암울한 현실을 뚜렷이 직시하고 있는 로디 도일의 각본, 이 영화로 첫 장편 데뷔한 키에론 윌쉬의 빈틈 없는 연출력도 감탄을 자아냅니다.

'영화에 미친 주인공에 반해 배역을 맡았다'는 브랜단 역의 피터 맥도날드는 '펠리치아의 여행(1997) 등에 출연했던 배우. 맑은 눈빛으로 브랜단은 물론 객석까지 사로잡은 트루디 역의 건강 미인 폴로라 몽고메리는 연극 무대에서 연기력을 다졌습니다. 2000년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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