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 7등급 30대男, 카드발급 거절당한 사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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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역 근처에서 요리사로 일하는 반모(34)씨는 지난 한 달간 카드 발급을 세 차례나 거절당했다. ‘신용 7등급’이란 꼬리표가 번번이 발목을 잡았다. 카드사에서는 “최근 발급 기준이 강화돼 카드를 내줄 수 없다”고 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체크카드 실적이 좋으니 신용카드를 신청해 보라”던 곳이었다. 4년 전 500만원을 못 갚아 신용불량자가 됐던 반씨는 곧바로 빚을 갚은 뒤로는 현금과 체크카드만 써 왔다. 그는 “신용등급을 올리려면 카드 거래 실적을 쌓으라는데 카드를 받을 수 없다”며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에겐 기회가 주어져야 하는 것 아니냐”고 한숨을 내쉬었다.

 저신용자의 신용카드 이용이 급격히 위축되고 있다. 지난해 말 금융 당국의 “2012년 하반기부터 7등급 이하 저신용자에 대한 카드 발급을 원칙적으로 제한한다”고 발표한 뒤 부터다. 개인신용평가사인 코리아크레딧뷰로(KCB)에 따르면 올 상반기 7~10등급 저신용자에 대한 신용카드 발급은 28만5388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30%가량 줄었다. 반면 1~3등급의 우량 고객에 대한 카드 발급 수는 약 225만 건으로 20% 정도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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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카드사 관계자는 “각 회사가 올해 초부터 신용등급별 카드 발급 기준을 강화하거나 완화했다”며 “대부분 카드사의 발급 기준이 ‘신용등급 6등급 이내’로 변경된 상태”라고 말했다. 금융 당국 관계자는 “카드사가 저신용자에게 마구잡이로 카드를 발급해 주면 다중 채무자가 많아지고 연체율이 높아진다”며 “악성 가계부채가 늘어날 여지를 줄이기 위한 정책”이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일부 카드사의 경직된 태도다. 당국의 ‘원칙적’ 발급 제한을 ‘무조건’ 제한으로 해석해 저신용자에 대한 카드 발급을 아예 막고 있어서다. 한 카드사 임원은 “일률적인 카드 발급 기준이 제시된 이상 카드사가 자체적으로 판단해 저신용자에게 신용을 부과할 수 있는 여지는 많지 않다”고 말했다. 현재 신용카드를 갖고 있는 7등급 이하 저신용자는 290만 명 정도. 전체7등급 이하(680만 명)에서 400만 명가량은 신용카드가 없다.

 금융위 관계자는 "카드사의 자체 심사능력을 강화해 고객의 상환능력을 제대로 따지라는 요구”였다며 “7등급을 이유로 무조건 발급을 거절하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상환능력과 의지가 있는 저신용자까지 ‘거부’하면 카드사의 경영뿐만 아니라 전체 가계부채 문제가 더욱 악화될 것이기 때문이다.

 조남희 금융소비자원 대표는 “신용등급을 올려 정상적인 금융생활을 하려는 사람에겐 철저한 심사를 통해 최소한의 기회를 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고혁진 한국산업기술대 e-비즈니스학과 교수도 “저신용자에게 카드는 범퍼(완충장치) 역할을 하고 있다”며 “조금의 여지를 허용해도 살아남을 수 있는 사람들에게 일률적인 잣대로 기회를 박탈할 경우 저신용자를 더욱 궁지에 내몰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7등급 이하도 소득이나 재산 등을 감안해 결제능력을 인정받는다면 카드를 발급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혜미 기자

개인신용등급(CB등급) 개인신용평가사(Credit Bureau)에서 개인의 신용정보를 모아 평가해 매긴 등급이다. 국내에서는 코리아크레딧뷰로(KCB)와 나이스신용평가정보 두 곳이 이를 담당한다. 개인별로 1~1000점으로 매긴 점수를 토대로 신용등급을 1~10등급으로 나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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