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 무서운 골목길에 범죄 예방 디자인 입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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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의 ‘범죄 예방 디자인 프로젝트’ 시범지역인 마포구 염리동에 있는 노란 대문의 ‘소금지킴이집’. 위험한 상황이 발생했을 경우 누를 수 있는 ‘비상벨’과 사람이 지나가면 불이 켜지는 ‘사인조명’, 24시간 작동하는 IP카메라가 설치돼 있다. 비상벨을 누르면 집주인이 나와 도움을 준다. [연합뉴스]

서울 마포구 염리동에 사는 방봉진(80·여)씨는 저녁 이후엔 집 밖에 나가지 않는다. 오래된 다세대주택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좁은 골목길에 폐쇄회로TV(CCTV) 하나 없고 조명은 어두침침하기 때문이다. 또 재개발이 늦어져 주민들은 하나 둘씩 떠나가고 빈자리를 이주노동자들이 채우고 있다. 경찰도 이 지역을 서민보호치안강화구역으로 지정했다.

 서울시가 6월부터 염리동 달동네에 ‘범죄예방디자인(CPTED·셉테드)’을 적용해 동네를 새로 단장하고 있다. 치안방범활동만으로는 한계가 있어 디자인을 통해 범죄심리를 위축시켜 범죄를 예방하겠다는 취지다.

 17일 오전 염리동 한서초등학교 앞. 두 사람이 겨우 지나다닐 만한 좁은 골목길을 들어서자 바닥에 그어진 노란색 점선이 눈에 띄었다. 이른바 ‘소금길’이다. 과거 이 일대에 소금장수들이 많아 붙여진 ‘염리동(鹽里洞)’이란 이름에서 따왔다.

 소금길은 주민들이 불안감을 느끼는 지역을 연결한 1.7㎞ 구간으로 운동시설과 전봇대 69개가 설치돼 있다. 운동을 즐기려는 주민들이 자연스럽게 모이기 때문에 범죄 예방 효과가 있다. 전봇대에는 1~69번까지 번호를 매기고 방범용 발광다이오드(LED) 번호, 안전벨 등을 설치했다. 위급상황 시 경찰에 이 번호를 알려주면 곧바로 정확한 위치가 파악된다. 방씨는 “요즘엔 조명이 많아지고 주민들도 자주 다녀 밤늦게 다녀도 무섭지 않다”고 말했다. 점선을 따라 골목길을 내려가자 노란색 대문의 집이 눈에 띄었다. ‘소금지킴이집’이다. 집 앞에 비상벨이 설치돼 있어 위험에 처했을 때 누르면 집주인이 나와 도움을 준다. 당사자 대신 경찰에 신고도 해준다. 집 앞에는 밤중에 사람이 지나가면 저절로 불이 켜지는 ‘사인조명’과 ‘IP카메라’를 설치해 항상 녹화가 되도록 했다.

 디자인 개선에 마을 주민들도 호응했다. 30가구가 자발적으로 외진 골목의 회색빛 집 담벼락을 밝은 색으로 도색했다. 소금지킴이집도 주민들이 신청한 가구 중 6곳을 선정했다. 동네교회는 카페, 마을문고, 택배수령서비스 등을 운영할 커뮤니티 공간인 ‘소금나루’ 부지를 무상으로 제공했다. 홍성택 염리동 주민자치위원장은 “내년 1월 완공될 ‘소금나루’는 24시간 운영되면서 마을지킴이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서울시는 내년에 지역 1곳, 공원 3곳, 학교 1곳을 CPTED 적용 지역으로 추가 선정할 계획이다.

최종혁 기자

◆셉테드(CPTED)=범죄예방디자인(Crime Prevention Through Environmental Design). 지역이나 아파트·학교·공원 등 공간을 설계할 때 디자인을 통해 범죄 심리를 위축시켜 범죄 발생을 차단하고 예방하는 기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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