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외자 밀물에 환율 '비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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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원화와 엔화가치 움직임은 일본 교과서 왜곡문제 등으로 얼어붙고 있는 한.일관계를 보여주는 것 같다는 게 외환딜러들의 말이다.

올 4월까지만 해도 같은 방향으로 움직였던 엔화와 원화환율이 지난달부터 확연히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다.

외환 전문가들은 이같은 양상이 하반기 들어 더욱 두드러질 것으로 내다본다. 원화의 경우 잇따른 외자유치로 달러 공급이 많아 가치가 높아질(환율이 낮아질) 가능성이 큰 반면 엔화는 장기 불황으로 추가 절하될 것이란 전망이다.

수출시장에서 주요 경쟁상대인 일본의 엔화 가치가 떨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원화가치가 계속 오르게 되면 수출경쟁력 약화를 불러올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대외 신인도 상승 등을 위해 필요한 외자유치가 원화 가치 상승으로 이어져 수출경쟁력 약화라는 부담을 안겨주고 있는 것이다.

◇ 원.엔 환율 10대 1 깨지나=엔화 가치는 올 초보다 9% 낮아진 반면 원화는 2.5% 절하에 그쳤다. 엔화에 대한 원화가치도 올초 1백엔당 1천1백원 수준에서 1천30원까지 오른 상태다.

문제는 이같은 양상이 계속될 것이란 점. 달러당 엔화환율은 하반기 평균 1백28엔, 최고 1백40엔까지 떨어질 것이라는 게 50개 국제금융기관을 대상으로 한 로이터 통신의 조사결과다.

반면 원화가치는 외자유치.경상수지 흑자 등의 달러 수급상황 때문에 계속 강세를 보일 것이란 게 대다수 전문가의 견해다.

하반기에 국내에 유입될 외자유치는 최대 80억달러에 이를 전망이다. 하이닉스 반도체(12억5천만달러).한국통신(22억5천만달러).LG전자(11억달러) 등이 이미 외자유치에 성공했고 두산의 OB맥주 지분 매각대금(4억5천만달러), 현대산업개발의 I타워 매각대금(5억달러)이 들어올 예정이다. 또 SK텔레콤의 외자유치(30억달러), 한통 지분 매각(6억달러), 현대투신증권 및 대우차 매각 등 대규모 달러 유입이 대기 중이다. 경상수지도 올해 1백30억달러 흑자가 예상되고 있다.

이 때문에 지금까지 수출경쟁력 확보를 위한 마지노선으로 여겨져 왔던 원화 대 엔화가치 '10 대1' 선이 깨질 것이란 우려가 작지 않다. 이 경우 일본과 직접 경쟁관계에 있는 조선.철강.전자업종의 수출에 타격이 우려되고 있다.

정문건 삼성경제연구소 전무는 "달러당 1천2백50원대까지는 수출기업이 버틸 수 있지만 더 이상 절상되면 경쟁하기 힘들 것" 이라며 환율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 위안화까지 움직일까=김병돈 조흥은행 과장은 "엔화가치가 1백30엔대까지 떨어지면 중국 위안화의 평가절하 가능성도 있다" 고 지적했다.

엔화에 이어 위안화까지 절하되면 수출품목 대부분의 경쟁력이 급격히 약해질 것으로 우려된다.

그나마 엔화 절하폭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는 전망이 많은 게 다행인 실정이다.

이에 대해 김상경 국제금융연수원장은 "중국의 경제성장률이 여전히 높기 때문에 엔화가 어느 정도 절하되더라도 위안화 절하로 이어질 확률은 낮다" 며 엔화가치가 달러당 1백40엔대까지 떨어지지 않는다면 견딜 만할 것이라고 말했다.

외환당국 관계자는 "외자유치가 원화환율에 미칠 영향을 줄이는 방안을 검토 중" 이라며 수급상황을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정철근 기자 jcom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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