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이들의 해방구 서울 대학로. 연극.뮤지컬의 메카인 이곳 여름은 시절과 반대로 '한랭전선' 이 우세하다.
관객들의 오금을 저리게 할 극단적 공포체험의 무대가 대기 중이기 때문이다.
이유야 뻔하긴 하다. 이 맘 때의 단골 어휘인 '납량(納凉.여름에 더위를 피해 서늘한 바람을 쐼) 효과' 를 겨냥한 노림수다. 지난해 사회.문화계를 강타한 '엽기 신드롬' 이 이곳에서는 아직도 진행 중이다.
작품 목록을 보자. 우선 서구 컬트문화( 'cult' 는 종교적인 예배.숭배의 의미로 소수의 애호가들로부터 선택돼 열광적으로 떠받들어 지는 문화) 의 원조인 공포 뮤지컬 '록키 호러 쇼' 가 있다.
진우예술기획(02-516-1501) 이 만들어 26~8월 26일까지 폴리미디오 씨어터에서 공연 할 이 작품은 한마디로 '삼류 잡탕 쇼' 다. 그래도 벌써 고전의 반열에 오른지 오래다.
1973년 6월 영국 런던의 60석짜리 허름한 극장에서 초연돼 단번에 경배(敬拜) 의 대상이 된 호러 뮤지컬의 전설이다.
3년 전 이맘 때 국내에서 맛보기가 있었다. 그 때는 뮤지컬에서 세포분열한 영화였다. 짐 셔먼 감독의 '록키 호러 픽쳐 쇼' 는 대학로 동숭씨네마텍에서 심야프로로 상연됐다.
셔먼은 이 뮤지컬의 작가.연출자이며 록 가수이기도 한 리처드 오브라이언과 함께 초연 동업자였다. 아무튼 이 뮤지컬은 그해 영국 드라마 비평가상 최고 뮤지컬로 선정돼 '반(反) 문화의 고전' 으로 지금껏 군림하고 있다. 현재 미국 브로드웨이에서도 공연하고 있다.
무엇이 이 작품을 컬트로 이끌었나. 이번 무대의 연출자로 영국에서 공부한 이지나씨의 말이다. "사회의 모럴(도덕) 에서 벗어나고픈 젊은이들의 해방 욕구를 반영한 때문이다. '진지함' 운운하면 닭살이 돋는 그들에게 1시간 30분 동안의 분출구 제공, 그게 이 작품의 매력이다. "
초연과 근 30년의 시차를 두고 한국에서 부활한 이 작품은 프랑켄슈타인 이야기를 닮았다. 그래서 주인공도 '닥터 프랑큰퍼트' 다.
스승을 찾아 여행을 떠난 연인 커플이 폭우를 만나 거대한 성(城) 으로 피신했다가 해골같은 성지기, 외계인 등 낯선 인물을 만나 괴상한 의식의 파티를 벌이는 내용이다.
폐쇄적인 공간 속에서 빚어지는 돌발적 폭력과 양성애, 마약, 기이하게 분장한 배우들, 70년대 브리티시록을 끌어들인 굉음의 음악 등 엽기적 상상력이 넘친다. 그 너머에 있는, 기성세대의 위선을 조롱하는 폭소의 단서를 찾을 수 있다면 관극(觀劇) 은 성공한 셈이다. 과연 이 묘미를 찾아 낼 수 있을 것인가는 제작진도 고민하는 부분이다.
'록키 호러 쇼' 보다는 규모가 작은 공포 연극 두 편은 이미 공연 중이다.
기적인 부모 살해 사건을 악몽처럼 그려낸 극단 비파의 '저녁' (22일까지 동숭홀 대극장, 02-3142-8887) 과 인간 단죄의 문제를 환상적으로 우려낸 극단 인혁의 '세기초기괴기전기' (8월 19일까지 아룽구지 소극장, 02-766-1482) 이다.
배우들의 알몸연기로 관객을 유인하는 '저녁' 은 서로 소통 못하는 가족의 비극을 고도의 긴장과 잔혹 상황으로 풀어가는 실험성 짙은 작품이다. 두 미소년이 폭력을 권위의 상징으로 아는 아버지와 자식에게 무조건적으로 집착하는 엄마를 살해한 뒤 알몸이 돼 춤을 추다가 하나로 되면서 청년으로 태어나는 이야기다. 짧으며 상징적인 대사, 압축된 동작, 아비규환의 비명 등이 관객을 짓누른다. 윤형섭 작.성준현 연출.
'괴기전' 은 삼류 소설에만 있는 게 아니다. '세기초기괴기전기' 는 한물간 동양화풍의 공포물이다. '흉가에 볕들어라' 등 꾸준히 공포 연극 장르를 개척하고 있는 이해제(희곡) 와 이기도(연출) 콤비의 신작이다.
어느 여름 낮 놀이공원 괴기전(怪奇殿.귀신이 사는 집) 행사장에 들어간 구두 미화원 소년 등 인간군상들이 길을 잃고 헤매다 불교의 '지옥도' 같은 공간에서 죄의 대가를 심판 받는다는 이야기다. 이곳에서 염라대왕을 비롯한 10여 명의 대왕은 지옥에 떨어진 이들을 차례로 벌한다. 피 흘리는 인형 등 특수효과가 공포감을 더한다.
무서워하면서도 이런 공포를 즐기려 드는 것은 사람들의 '이상심리' 인가. 아니다. 우발적이지 않은, 가공된 공포에서 느끼는 묘한 카타르시스. 그게 공포체험에 열을 내는 이유일 것이다. 그래 Just feel i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