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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대가 과학이라면 우리 몸은 울트라 짱 최첨단 컴퓨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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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시골구석에서 살다 보니 복잡한 주말에 서울 가는 일이 그리 달갑지만은 않다. 지난 주말, 오랜만에 외출도 할 겸 보고 싶은 사람들도 만날 겸 가기로 결정한 어떤 결혼식 바로 전날. 옷장을 뒤졌다. 입을 옷이 없다. 패션의 마지막 자존심인 하이힐로 마무리나 하려고 구두에 침 뱉어가며 광을 낸 후 가지런히 현관 앞에 놓아두고 잠을 잔 다음 날 아침.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는데 허리가 요상하다. 디스크가 도진 모양이다. 그도 그럴 것이 주제넘은 노동 탓이다. 노동의 사연은 이랬다.

 지난 8월 9일자 분수대의 ‘드러머가 꿈’이란 내용의 글이 나간 후, 모 밴드 리더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같이 연주 한번 해보자고.

 정기적으로 공연도 하는 소문난 7인조 유명한 아마추어 밴드였다. 이게 웬 떡? 2007년에는 관중석에 앉아서 즐거워도 했고 부러워도 했던 터라 흔쾌히 만났다. 새로운 악보도 받고 신나게 기타랑 맞춰도 보고 집에서 연습도 하고. 4년 동안 뚜렷한 목표도 없이 대충 했던 나와 30년을 음악에 파묻혀 지낸 사람들. 감히 비교도 할 수 없는 실력이지만 까짓것 열심히만 연습하면 따라갈 줄 알았다. 결혼식 가기 전날. 6시간 내내 고무판을 두들겨대고 일어나는데 허리가 삐꺽. 욕심이 넘쳐 오기를 부린 탓이다. 결국 결혼식 날 하이힐은커녕 납작 쫄쫄이 신발에, 깎아내도 시원치 않을 허리에는 두꺼운 복대까지 차고 갔다. 이것이 굴욕 스타일?

 ‘침대가 과학’이라면 우리 몸은 ‘울트라 짱 최첨단 컴퓨터’다. 가기 싫고 하기 싫고 감당하기 힘든 일. 몸이 척척 알아서 거부한다. 마지못해 손님 초대해 놓고 목욕탕 청소하다 미끄러져서 응급실로 직행한 탓에 약속을 취소한 적도 있고. 가기 싫은 모임엔 나도 모르게 길을 잃어 끝날 즈음 도착하고. 이번 경우도 그들과 합주하는 것이 내겐 벅찬 일이었던지 호된 연습 끝에 병이 확 나버린 거다.

 우리 몸이 ‘울트라 짱’인 이유는 또 있다.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이란 책에 따르면, 현실에서 이룰 수 없는 소망들은 우리 몸이 꿈을 통해서 이루어 낸다는데. 그 원리로 무의식 속의 자기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고 정신분석 치료까지도 한다고 한다.

 잠을 자면서 소변이 보고 싶으면 어렵사리 찾아낸 화장실로 황급히 들어가는 꿈을 꾸고, 누군가를 그리워하다 잠이 들면 꿈에서 만나기도 하고.

 꿈을 신비한 예언의 영역이라 말하는 이도 있다. 하지만 프로이트 말대로 꿈은, 우리가 잠든 사이 ‘뇌가 만들어 낸 농간’이란 말이 맞을 것 같다.

 거물들과 합주하고 싶은 맘에 욕심 좀 과하게 부렸더니 내 몸이 거부를 했다. 하는 수 없다. 더 아프기 전에 몸이 해주는 말에 귀 기울여가며 착실하게 연습하고, 큰 무대에 서는 건 꿈이나 꾸어야겠다. 그러다 보면 나도 언젠가는-.

글=엄을순 객원칼럼니스트
사진=김회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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