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LB] 잡학사전 (37) - 공격툴(Tool), '홈스틸'(2)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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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의 생애를 통틀어 한개도 기록하기 어렵다는 홈스틸은 한 경기에서 2회를 기록한 선수들도 존재한다. 한 경기에서 2개의 홈스틸을 기록한 선수는 양대리그를 통틀어 11명이 존재한다.

아메리칸리그에는 조 잭슨(1912년, 클리블랜드 냅스), 에디 콜린스(1913년, 필라델피아 애슬레틱스), 빌 바렛(1924년, 시카고 화이트삭스)등 5명이 기록했으며 내셔널리그에서는 호너스 와그너(1901, 피츠버그 파이어리츠), 쉐리 매기(1912년, 필라델피아 필리스)등 6명이 기록했다.

한 경기 2회의 홈스틸을 기록한 마지막 선수는 1958년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의 빅 파워(1954-1965). 파워 이후로 한 경기 2회 홈스틸은 메이저리그 역사에서 자취를 감췄다.

1996년 콜로라도 로키스 소속이던 에릭 영(현재: 밀워키 브루어스)은 그 해 6월 30일, 족공으로 2루와 3루를 훔친 후, 홈스틸까지 성공시킨 기록을 가지고 있다.

이 진귀한 기록은 아메리칸리그에서는 타이 콥(디트로이트 타이거스)이 네 차례 성공시켜 메이저리그 최다 기록으로 남아있으며 내셔널리그의 최고 기록은 호너스 와그너(피츠버그 파이어리츠)가 세 차례 성공시킨 바 있다.

연대기로 볼 때, 베이스러닝의 '백미'인 홈스틸은 1900년대 초반기에는 각광받는 공격툴로 애용되었지만, 1950년대 이후 홈스틸의 빈도가 급감하고 있다.

그 이유는 1900년대 초기(1900-1920)에는 공의 반발력이 그리 크지 않아 '발공격(足功)'이 가장 주요한 득점루트였지만, 1950년대 이후 공의 반발력과 배트의 제조기술이 동시에 발전됨에 따라 홈런과 장타가 늘게되어 주요 득점루트의 다변화가 생긴 것으로 추측된다.

실패가능성 높은 홈스틸을 감행하지 않아도 타격만으로도 충분히 득점의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 홈스틸의 빈도가 급감한 주요 원인이다. 또한 직업선수들의 '몸사리기'도 허슬플레이의 일종인 홈스틸을 위축시키게 됐다.

이와 더불어 투구동작이 메이저리그 초기에 비해 간결해진 것도 홈스틸의 감소와 무관치 않으며, 팀의 주축인 왼손타자의 양산도 홈스틸 감행을 제지하는 주요 변수로서 작용해오고 있다.

호쾌한 타구음을 수반한 대형 홈런이 힘을 바탕으로한 '물리적 야구(Physical Baseball)'의 진수라면, 내야 그라운드에서 두뇌작용으로 펼쳐지는 신경전을 바탕으로 한 홈스틸은 '정신적 야구(Mental Baseball)'의 백미라고 할 수 있다.

또, 홈런이 외야 필드를 관통하는 것으로 상대를 제압하는 것이라면, 홈스틸은 내야 그라운드에서 상대방을 교묘하게 유린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공격툴로서는 상이한 특성을 지닌다.

20세기 말부터 메이저리그 공격 부문에서 나타는 현저한 특징은 파워를 바탕으로 한 홈런 페이스가 베이브 루스, 로저 매리스 그리고 행크 애런이 활약하던 시절 예상했던 수치 이상의 가파른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다는 점이다.

이와 반대로, 홈스틸처럼 아기자기한 공격툴은 그 입지가 점점 좁아지며 팬들로부터 소외되고 있다. 홈스틸처럼 멘탈 팩터가 가미된 고급야구를 즐기는 팬들은 소수의 전문적 매니아계층에 국한되고, 대중적 인기를 취합하지는 못하는 형편이다.

팬들이 야구장을 찾았을 때, 홈스틸을 현장에서 직접 만끽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옆 좌석의 가족, 동료들과 농담하는 짧은 순간에 벌어지는 일이기 때문에, 경기에 집중하지 않으면 일생동안 단 한 차례도 구경하기 힘든, 진귀한 장면을 놓쳐버리기 쉽다.

그라운드에서 홈스틸로 인해 발산되는 먼지를 구경할 수 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팬과 선수들에게는 누구나 누릴 수는 없는, 소중한 추억거리를 간직했다고 볼 수 있다.

'공인받은 절도행위'의 백미인 홈스틸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여전히 가장 매력적인 공격툴(Tool)의 하나로 인정받기에 손색이 없을 것이다.

이지우 명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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