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우리 10대 불량품들이 바꾼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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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류의 장편소설 《엑소더스》(양억관 옮김, 웅진닷컴)가 출간됐다. 학교로 대변되는 억압적인 사회구조에 반발하는 10대들의 이야기를 다뤘다는 점에서, 이 소설은 그의 초기작 《69》와 동일선상에 있다.《69》가 자유정신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며 억압에 저항하는 소년들을 다뤘다면, 30년 뒤의 세계를 그린 《엑소더스》는 정보사회를 기반으로 한 대안공동체를 주장하는 10대를 전면에 내세우는 점이 다르다.

페스티벌 속의 자유정신
최고 인기그룹이 된 비틀즈와 롤링스톤즈, '피스'를 외치는 히피들, 전쟁이 계속되는 베트남, 전공투의 시위로 입시를 중단한 도쿄대학교 등 사건이 줄을 잇던 1969년. 《69》는 이 시절 막 고등학교 3학년에 진급한 기지촌 소년들의 이야기를 그린 소설이다. 체제파와 반체제파로 나뉘는 두 부류의 10대가 등장한다. 체제파는 몰개성적인 인간을 양산하는 학교의 질서를 비판 없이 받아들인다. 무라카미 류는 이들에게 우려와 냉소가 섞인 시선을 던진다. 집단의 가치관을 맹목적으로 수용하는 이들이 성장하면 제2차 세계대전 때의 '가미가제' 특공대 같은 부류가 될 테니까.

반면 무라카미 류가 애정을 갖고 묘사하는 소년들은 반체제파로 분류된다. 거창하지는 않지만, 그들은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전체주의에 저항한다. 화자인 '겐'이 끊임없이 '남과 다르게' 보이려는 까닭이 단순히 치기 어린 자기현시욕구에서 비롯된 것만은 아니다. 이들이 의무적으로 참여해야했던 매스게임이 일본 사회의 획일적인 가치관을 대변하는 죽은 놀이라면, 겐과 친구들이 준비한 페스티벌은 개개인이 자발적으로 참여해야 완성되는 즐거운 체험이다. 록 음악, 자작 영화, 연극, 시, 해프닝 등이 다양한 문화가 어우러지는 가운데 모든 사람이 동등하게 참여하는 그들의 페스티벌은 자유정신의 또 다른 표현이다. 《69》에서 무라카미 류는, 겐 일행이 바리케이드 봉쇄를 실시할 때 내걸었던 플래카드처럼 '상상력이 권력을 지배하는' 세상을 꿈꾼다.

10대들이 만든 디지털 시대의 유토피아
《69》에 등장하는 고교생들이 페스티벌이라는 상징적인 방법으로 저항했다면, 2000년대 초반을 다룬 《엑소더스》의 10대들은 좀 더 현실적이다. 이들은 이지메가 기승을 부리는 학교에 대한 반감을 등교거부로 표현하지만, 곧 소모적인 등교거부 투쟁 대신 뜻이 통하는 중학생들끼리 인터넷 커뮤니티를 만들어 활동기반을 다져간다.《69》에 등장하는 겐의 가출이 유머러스한 일화에 그친다면, 《엑소더스》에서의 '퐁짱'과 친구들의 가출은 정신적·경제적 독립을 전제로 한다. 인터넷을 통해 정보를 자유자재로 지배하는 그들은 뉴스배급회사를 세워 막대한 경제력을 확보한 뒤, 그들만의 대안공동체 '노호로'를 건설한다. 이 정도 되면 정보사회의 속성을 이용한 '무혈혁명'이라 부를 만하다.

《엑소더스》에 묘사된 10대들의 대안공동체 '노호로'는 홋카이도에 있는 작은 도시지만, 그 성격은 거의 자치국가에 가깝다. 엔화가 아닌 독자적인 화폐단위 EX를 사용하고, 무공해 도시를 만들기 위해 풍력에너지와 전기 자동차를 이용한다. 광케이블로 연결된 주택, 바이오연구소, 입시 위주의 교육을 조장하는 대학이 아니라 노동의 가치를 장려하는 직업훈련센터 등, 기성세대를 대신할 희망적인 미래상이 10대들만의 힘으로 그려진다. 사건이 전개되는 과정에서 그들이 느낄 법한 고민이나 시행착오에 대한 묘사가 생략돼 생생함이 덜하지만, 이는 이상향에 대한 무라카미 류의 희망이 강하게 반영된 결과다.

《69》와 《엑소더스》에 등장하는 소년들은 일본 기성세대의 시각으로 볼 때 일종의 '불량품'으로 보일 것이다. 그러나 그 불량품들이 세상을 바꾼다. 삶을 축제로 바꿔 억압에 저항하는 10대의 모습을 그렸던 《69》의 무라카미 류가 이번 《엑소더스》에서는 등교를 거부하고 디지털 시대의 유토피아를 건설하려는 새로운 10대의 모습을 담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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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9

(기분 좋은 인터넷서점 리브로-고경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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