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일기] '90일 출산휴가' 됐지만

중앙일보

입력

26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모성보호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지난해 12월 환경노동위 법안심사소위를 통과하고도 이 법안이 의결되는데 6개월이나 걸린 것이다. 국회 통과 소식이 알려지자 여성부와 한국여성단체연합(여연)의 소감은 놀라울 만큼 똑같았다.

"이제 드디어 모성보호 비용의 사회분담화가 전기를 맞은 겁니다" 라고.

'사회분담화' 라니, 누가 무엇을 왜 분담하는데□ 그동안 모성보호법안의 핵심을 '출산휴가 30일 연장' 으로만 여겨온 이들에게는 생소한 얘기가 아닐 수 없다. 이 얘기를 이렇게 바꿔보면 어떨까. '여자가 아기를 낳는데, 왜 기업이랑 국가가 부담하는데□' 라고.

무엇보다 여성의 임신.출산에 대한 '개념' 이 바뀌지 않으면 이런 분담은 불가능하다.

여연의 김선미 정책실장은 "이 분담화에는 여성의 임신과 출산이 단순히 '개인적인 일' 을 넘어 가정.사회.기업.국가에 인력을 제공한다는 사회적 기능을 인정한다는 뜻이 함축된 것" 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바로 모성을 보호하는데 드는 비용의 '경제적 분담' 이다. 그동안 근로기준법에 출산휴가.생리휴가 등의 유급 모성보호제도를 마련하면서 사실상 그 비용을 기업에 전가해왔다.

여성계는 이런 제도가 "기업이 여성 채용을 꺼려하고, 차별하는데 구실을 제공하고 있다" 고 줄곧 주장해왔다.

간단하게 말하면, 이번 법안에서 늘어난 출산휴가 30일에 대해선 사용주의 추가 부담이 없다.

늘어난 비용은 정부의 예산(일반회계)에서 절반을, 또 고용보험에서 절반을 부담한다. 일단 올해에는 일반회계에서 1백50억원, 고용보험에서 1백50억원을 각각 끌어오게 된다.

여성부 정책평가담당 이남훈 사무관은 "이번 사회분담화에는 수혜 당사자(사용자.근로자)뿐만 아니라 정부가 지원에 적극 참여한다는데 그 의미가 있다" 고 말했다.

모성보호 비용의 사회분담화는 '국가는 모성의 보호를 위해 노력하여야 한다' 는 헌법(제36조 2항)의 정신이 어떻게 현실에서 적용되는지를 이번에 확실하게 보여주게 됐다. 앞으로 남은 과제는 분명하다.

행정부처의 치밀한준비아래 차질없이 시행돼야 하는 것이다.

이은주 기자 ju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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