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10대산업 키우자] 15. 디지털 가전 시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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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가전은 '21세기 산업' 이라는 정보기술(IT)을 담아낼 하드웨어다. 따라서 IT와 함께 고속성장.무한성장이 예상되는 산업이다.

특히 디지털 가전은 한국이나 선진국 모두 출발선에 같이 서있다는 점에서 새로운 주력산업으로 키우기에 한결 유리하다. 국내 디지털 가전산업의 현 위치와 과제를 진단한다.

'디지털의 부가가치는 2천5백배?'

한국의 대미(對美) 가전제품 수출 1호(1962년)인 라디오 가격(13달러)과 지난 4월 LG전자가 독일에 공급한 벽걸이(PDP)TV 가격(3만3천달러)을 단순비교한 수치다.

아날로그 라디오가 디지털 TV로 바뀌면서 가격이 2천5백배가 됐다는 것이다. 단순하지만 디지털 가전의 부가가치를 실감할 수 있는 비교다.

가전.컴퓨터.통신.방송 등의 기술을 합쳐 지능화.네트워크화한 신개념 전자제품 디지털 가전은 성장속도가 워낙 빨라 누구도 미래를 점치기 힘들 정도다.

한화증권 이성재 애널리스트는 "디지털 가전은 국내 업계의 저력이 만만찮아 반도체에 버금가는 효자산업이 될 수 있다" 고 전망했다.

특히 디지털 TV는 당장 전투를 치러야 할 품목이다. 산업연구원은 최근 "내년 월드컵은 전세계 축구팬이 디지털 고화질(HD)TV나 인터넷 3차원 동영상으로 경기를 보는 최초의 월드컵이어서 한국과 일본의 제품 수준이 그대로 드러날 것" 으로 전망했다.

◇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수요=디지털 TV와 비디오 다기능 디스크(DVD).MP3 플레이어.디지털 카메라 등은 기존 아날로그 제품을 대체하면서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주요 선진국들이 디지털 방송을 시작하면(한국은 9월 시험방송 개시) 디지털 TV 시장 규모는 해마다 두배 이상 커질 것으로 전문가들은 전망했다.

디지털 가전의 파급효과는 이같은 단품(單品)시장의 확대에 머물지 않는다.

오디오.비디오.게임.이동단말기 등 각종 전자제품의 기능이 한 곳으로 모이는 것은 물론이고 각종 기기들이 인터넷으로 연결돼 24시간 정보교류도 가능해지면서 인류의 생활 자체를 바꿀 것으로 보인다.

이데이 노부유키 소니 회장은 "5년 전 인터넷 혁명이 한정된 통신대역을 나눠 갖는 '내로 밴드' 시대를 열었다면, 앞으로 5년간은 고속.대용량 광섬유 등으로 통신회선이 확산하는 '브로드 밴드' 시대가 열릴 것" 이라고 강조했다.

TV.PC.전화는 물론 냉장고.에어컨이나 자동차 등 모든 생활용품이 IP 어드레스(전자 주소)와 유무선 고속 통신망을 갖는다는 얘기다.

관심은 안방을 사무실처럼 꾸미는 홈 네트워크 시장이다. 디지털 방송이 시작되면 디지털 TV는 PC의 기능을 겸하는 정보단말기로 탈바꿈하기 때문이다.

김학상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홈쇼핑.엔터테인먼트나 원격 교육.진료 등 디지털 가전의 경제적 파급효과는 예측하기 어렵다" 고 말했다.

◇ 일부 기술은 세계적 수준=이런 시장에서 한국은 어디까지 왔나.

LG전자 백우현 사장은 "디지털 TV의 경우 소프트웨어.신호처리기술.집적회로.디스플레이 등 핵심 기술을 두루 갖춰야 정상에 오를 수 있지만 일본에도 이런 업체는 흔치 않다" 며 "선진국과 우리는 같은 출발선에 있다" 고 말했다.

전자레인지.컬러TV.에어컨 등 상당수 백색가전과 CD롬 광저장 장치.셋톱박스 등 세계 1, 2위를 다투는 가전품목을 갖고 있는 한국은 디지털 가전 기술에서도 남들이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다. 삼성전자는 1998년 세계 처음 디지털 TV의 양산에 성공해 미국.영국 등에 수출했다.

LG전자는 유럽 규격을 최초로 상용화해 올들어 세계에서 가장 얇은(7.8㎝) 벽걸이 TV를 내놓았다.

기반부품의 수급도 유리하다. 특히 메모리 반도체와 초박막액정표시장치(TFT-LCD)는 국내업체들이 세계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정부는 이같은 한국 기업들의 실력을 감안, 디지털 가전을 2005년 세계 2위(16%) 수준으로 올려 반도체의 후계 수출산업(연간 2백억달러)으로 키운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 기초 기술은 아직 뒤져=핵심 부품이나 특허기술의 해외 의존도는 여전히 높다.

디지털 TV는 아직도 기술료로 소니.필립스 등에 주는 돈이 제품값의 11%에 달한다. 디지털 카메라.VCR의 부품 국산화율은 각각 50%, 60%에 지나지 않는다.

이를 개선할 연구개발(R&D)투자도 한참 멀었다. 삼성.LG.대우 가전 3사의 R&D 총액(2조1천억원)은 일본 소니 한 곳(4조2천여억원)의 절반에 불과하다. 산업연구원에 따르면 디지털 가전분야의 경쟁력은 일본이 우세를 보이는 가운데 미국.한국 등이 품목별로 경합을 벌이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디지털 캠코더와 방송장비.게임기는 일본의 독주체제가 확립됐고, 디지털 TV.백색가전.DVD는 한국.일본이 경합 중이며, 미국은 운영체제나 소프트웨어 등에 비교우위가 있다는 것이다.

홍승일 기자 hongsi@joongang.co.kr>
도움=김학상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 다음호에서는 10대 업종 가운데 여덟번째로 조선산업을 다룹니다. 국내 조선산업의 실태와 과제, 세계 최고의 고부가 조선업체인 이탈리아 핀칸티에리사 벤치마킹을 두차례로 나눠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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