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학년 때부터 진로 찾고 논술·면접 실력 키우는 ‘대입 비법’ 수업 합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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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고는 2012학년도 입시에서 강남·서초·송파지역 일반고 중 SKY대 진학률 1위를 차지했다. 이들 대학 합격생 수는 모두 112명. 전체인원의 21.6%가 서울대·연세대·고려대에 진학한 것이다. 중동고만의 ‘특별한 수업’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진로탐색 프로그램 ‘Who am I?’와 ’논리학 수업‘이 그것. 처음 고등학교에 입학한 학생들은 ‘Who am I?’ 시간을 통해 스스로 가치관을 세우고 진로를 발견한다. 3학년이 되면 ‘논리학 수업’을 통해 수시 논술고사에 대비하고, 자기소개서에 담을 자신만의 무언가를 찾아낸다. 중동고 대학 진학률의 비밀병기인 셈이다.

글=전민희 기자
사진=장진영 기자

“저는 세계를 무대로 뛰는 스포츠 에이전트가 되겠습니다.” 김정훈(왼쪽 두번째)군이 자신의 장래희망에 대해 친구와 교사들에게 설명하고 있다.

21일 오후 1시 30분 중동고 도서관. 3학년을 대상으로 한 논리학 수업이 한창 진행 중이었다. 안광복 철학교사가 저널리즘을 주제로 ‘연출’과 ‘조작’의 차이점을 설명했다. “학생이 하지도 않은 ‘사랑의 집짓기’ 봉사활동을 했다고 하는 건 ‘조작’이지만, 자신의 삶과 연관지어 의미 있는 활동으로 만들어내는 건 ‘연출’이죠. 자기소개서를 작성하거나, 면접에 임할 때도 자신의 경험에 의미를 부여해 표현할 수 있는 ‘연출력’이 필요합니다.”

 이어진 학생들의 발표시간. ‘미래 비전’이 주제였다. “요즘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 등 세계무대에서 활약하는 국내 선수들이 많은데….” 김정훈군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안 교사가 “논리적 구조를 잡은 뒤 결론부터 말하라”고 지적했다. 김군이 뭔가 생각난 듯 고개를 끄덕인 뒤 다시 발표를 이어 나갔다. “제가 ‘스포츠 에이전트’가 되고 싶은 이유는 3가지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세계를 무대로 진출하는 국내 선수들의 증가와 저의 성장과정, 직업에 대한 가치관의 변화를 중심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김군의 발표가 끝난 뒤엔 같은 조 친구들이 “좀 더 짧은 문장으로 말해야 한다” “시선이 불안하다”는 등의 문제점을 꼬집었다.

친구 앞에서 ‘나의 삶’ 발표하는 논리학 수업

논리학 수업은 중동고 3학년생이라면 누구나 들어야 하는 정규과목이다. 수업은 주로 자신의 삶에 대해 발표하고 글 쓰고, 토론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1학기 때는 수시전형에 대비해 ‘자기소개서 작성’에 초점을 맞추고, 2학기가 되면 본격적으로 논술과 심층면접에 대비한다. 자기소개서 작성 수업은 자신의 성장과정과 장·단점, 살면서 어려웠던 점과 이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한 부분 등을 주제로 한 글을 쓴 뒤 그 내용을 친구·교사 앞에서 발표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이호민군은 평소 자기소개서 ‘고난과 역경 극복 부분’을 어떻게 써야할 지 고민이 많았다. 성장과정에서 큰 역경을 겪지 않았던 그에겐 부각시킬만한 매력적인 소재가 없었다. 하지만 1학기 초부터 자신에 대해 탐색하는 시간을 가지면서 그에게도 소재가 생겼다. “불우한 가정에서 자라면서 겪는 어려움만 역경이 아니란 걸 알게 됐어요. 미술을 배우면서 채색 분야가 약했던 제가 매일 4시간씩 훈련을 통해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른 일을 생각해냈죠.” 얼마 전 수시모집에서 서울대 디자인학과에 지원할 때도 자기소개서에 이런 내용을 포함시켰다.

 이 수업은 구술면접에 대비하는 기회도 된다. 김정훈군은 평소 수줍음이 많아 누군가를 앞에 두고 말하다 보면 외운 내용도 잊어버리고, 말을 더듬었다. 하지만 1학기 내내 자신이 쓴 글을 30여명의 반 친구들 앞에서 큰 소리로 발표하는 훈련을 통해 ‘말하기’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했다. 학생들과 시선을 마주치고, 말의 높낮이를 통해 강조하는 스킬까지 익혔다. “대학 입시에서 면접을 치를 때도 걱정 없습니다. 30명을 상대로 연습했으니, 면접관 3~4명 앞에서 얘기하는 건 더 쉬울 거라고 생각해요.”

 이런 훈련은 실제 대학 입시에서도 효과를 톡톡히 봤다. 서울대 자유전공학부 2학년인 최승혁(19)씨는 2년 전 구술면접을 치를 때 기억이 생생하다. 30분 동안 주어진 문제를 해결한 뒤 2명의 교수 앞에서 풀이과정에 대해 설명해야 했다. “평소 논리학 수업 시간에 자세가 구부정했어요. ‘자세를 바르게 하고 교수들과 눈을 마주친 뒤 자신감을 갖고 말하라’는 지적도 많이 받았죠. 면접이 진행되는 내내 그 얘기가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더라고요. 면접과정에서 말 한마디 한 마디에 힘을 줘 또박또박 대답할 수 있던 비결이었습니다.”

직접 만든 ‘Who am I?‘ 교재로 진로 탐색

논리력은 하루아침에 향상되는 건 아니다. 논리적으로 말하고 쓰려면 자기 자신에 대해 먼저 알아야 한다. 자신의 생각이 명확하지 않은 상태에서 이야기를 시작하면 주제가 모호해지고, 의도를 제대로 전달하기 어렵다. 중동고 학생들이 1년 동안의 논리학 수업으로 논리력을 키울 수 있는 건 1학년 때 진행되는 진로탐색 프로그램 ‘Who am I?’도 한 몫 한다.

 이 수업은 논리력을 기르는 기초가 될 뿐 아니라, 학생들이 공부하는 이유를 찾을 수 있게 돕는다. 이 교과목에는 ‘Who am I?-나는 내가 만든다’는 이름의 책이 교재로 사용된다. 2004년 당시 중동고 정창현 교장과 중동고 교사 4명이 의기투합해 만들었다. 8년이 지난 지금은 책 집필에 참여했던 교사들 대부분이 정년퇴직을 하거나 학교를 떠났다. 하지만 프로그램은 중동고 학생이라면 누구나 참여해야 하는 필수 교과목으로 자리 잡았다.

 수업은 크게 자기 정체성 확립, 비전 수립, 자기관리, 커뮤니케이션 향상 등 4가지 분야로 나뉜다. 학생들은 이 수업을 통해 자신의 장점을 찾고, 30년 후 자신의 모습을 그리며 비전을 발견해 나간다. 뿐만 아니라 스스로 습관을 기르는 방법과 대화의 기술도 터득하게 된다.

 프로그램이 진행되면서부터 자신의 꿈을 찾고 자기 존재에 대해 자신감을 갖는 학생들이 늘어났다. 오세목 교감은 “예전에는 ‘공부를 왜 하냐’고 물어보면 제대로 대답하는 학생들이 없었는데, 이제는 ‘국경없는 의사회의 의사가 돼 어려운 사람을 돕고 싶고, 이 때문에 의대에 가고 싶다’고 구체적으로 대답한다”며 “꿈이 확실하니까 학생들 스스로 노력하게 된다”고 강조했다.

 3학년 박재정군은 수업을 통해 자존감이 높아졌다. 그는 고등학생이 된 뒤 매일 불평과 불만이 가득했다. 성적이 올라도 스스로 만족할 수가 없었다. 그러던 중 진행된 비전수립 수업에서 그는 ‘자신에 대한 기대치가 높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자신의 삶에 대해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글을 쓰면서 스스로 만족하는 방법을 터득했다. 성적도 더 향상됐다. “예전에는 무리한 계획을 세워 못 지키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제는 현실적으로 계획을 수립하고 이뤄나가고 있습니다. 이 수업은 제 인생의 중요한 전환점이 돼줬습니다.”

중동고 특성화 프로그램

글로벌 리더십 영어몰입 수업. 경영학 관련 내용을 영어로 진행 / 중동 R.E.A.D 독서인증제도. 독서 전·중·후 과정 지표화 / 중동토요논술교실 논술 프로그램. 국어·철학·수학교사 3명이 팀을 이뤄 논술 지도 / SGLS 유럽 명문학교와 산업체 탐방 연수 프로그램 / SBFS 국내 산업체 탐방하는 경영 특성화 연수 프로그램 / STFS 국내 산업체 탐방하는 이공계 특성화 연수 프로그램 / 소논문 멘토링 1년~1년 반 학생 주도적으로 연구해 논문 작성 / 학부모 아카데미 진학·진로 정보, 자녀 교육법 등 전달하는 강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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