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널리스트들의 추천주만 피하면 성공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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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가폭락으로 손해본 뒤 소송을 제기해야겠다고 마음 먹은 투자자가 있다면 도대체 누구를 상대로 제소해야 하는 걸까.

한 소아과 전문의는 메릴 린치 (ML.com)를 제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메릴 린치의 애널리스트 헨리 블로짓이 추천한 인터넷 인프라 서비스 제공업체 인포스페이스 (InfoSpace.com) 주식을 매입했다 50만 달러나 날렸기 때문이다.

당시 메릴 린치는 인포스페이스와 거래가 있는 한 투자은행에 연결돼 있었다. 따라서 그 의사는 블로짓이 많은 투자자와 거래하지 않았나 하는 의구심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그 소아과 전문의가 보기에 블로짓은 매도인이자 매수인이었다. 인포스페이스 주가는 현재 97.2%나 하락한 상태다.

소아과 전문의는 블로짓이 독자적으로 움직이는 애널리스트라고 생각했다. 모르긴 몰라도 그 의사는 한때 산타클로스를 믿었을 것이다. 그러나 주가폭락으로 손해본 사람은 그 의사 뿐이 아니다.

월 스트리트 저널紙는 13일자에서 "애널리스트들은 각자 독자적 평가를 내리게 마련"이라고 보도했다. 애널리스트 문제에 대해 예의주시하고 있는 의회 의원들도 같은 생각이다.

리처드 베이커 하원의원(공화·루이지애나)은 14일 "이른바 '강력 매수추천'이란 말 그대로 '매수추천'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시장수익률 상회'를 뜻한다"며 "그렇다면 '시장수익률 상회'는 과연 무슨 뜻인지 의문이 아닐 수 없다"고 증언했다.

베이커는 美 하원 금융서비스 소위원회 위원장으로 지난 14일 애널리스트 문제와 관련, 청문회를 개최했다. 청문회에서 애널리스트들에 대한 비난은 매우 거셌다.

문제는 투자자들이 애널리스트의 추천에 대해 비난하고 있지만 월 스트리트는 조금도 개의치 않는다는 점이다. 신중한 금융 관계자들은 매수·매도·보유 추천을 실질적으로 무시해 왔다. 헤지펀드 서클 T 파트너스(Circle T Partners)의 무한책임 파트너 세스 토비어스는 "투자은행에서 내놓는 매수추천은 아무 의미도 없다"고 발언했다.

토비어스의 말을 다시 들어보자. "증권가에서는 골드만이나 모건의 추천에 대해 거의 신경쓰지 않는다. 그들 업체 자체가 투자은행이기 때문이다. 시스코 시스템스 주식을 추천한 애널리스트들이 있다. 그렇다면 시스코 주식이 과연 매수 추천주인가."

애널리스트들의 언어는 많은 오해를 불러일으키곤 한다. 그렇다고 월 스트리트에서 사기가 판치고 있다는 말은 아니다. 일반인과 다른 언어가 사용되고 있을 뿐이다. '매수'라는 단어는 그야말로 '매수'를 의미하는 게 아니다. '중립'은 아무 의미도 없는 말이다.

최근 들어 '보통사람들'도 주식투자에 나서면서 문화적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 20년 전만 해도 증시에 투자하는 미국인은 소수에 불과했다. 그러나 오늘날 미국인 가운데 48% 정도가 주식에 투자하고 있다.

주식에 투자하는 보통사람들이 월 스트리트의 언어를 알아듣는 것은 아니다. 일례로 애널리스트가 특정 주식에 대해 '매수추천'을 낼 수 있지만 말과 달리 정말 추천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보통사람들은 매수추천이라는 말을 곧이 곧대로 받아들이게 마련이다.

최근 美 증권업협회(SIA)가 캘리포니아주 소재 4개 대학에 의뢰한 연구조사 결과 지난해 애널리스트들의 추천주는 평균 48.7%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추천과 거리가 먼 주식들은 평균 31.2% 상승했다. 월 스트리트가 투자자들의 머리 꼭대기에 앉아 있다고나 할까.

캘리포니아大 버클리 캠퍼스 하스 경영대학원의 브레트 트루먼 교수는 "SIA가 이번 조사결과를 탐탁하게 여기리라고는 생각지 않는다"며 "지난해 투자은행과 애널리스트의 관계를 둘러싸고 우려가 급증한 반면 애널리스트들의 역량이 급감했다는 것은 흥미로운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월 스트리트로서는 결코 흥미진진한 일이 아닐 듯 싶다.

by Cory Johnson (번역 이진수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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