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규·장이머우 한중 교류 합의

중앙일보

입력

한국과 중국을 각각 대표하는 감독 가운데 한명인 강제규(39.사진위) 감독과 장이머우(張藝謀.51) 감독이 손을 잡았다.

한국에선 장이머우 영화제를, 중국에선 강제규 영화제를 열기로 잠정 합의했다. 국가.기관 차원의 협력에 앞서 제작 현장에서 직접 뛰고 있는 양국 영화인의 공조로 아시아 영화의 가능성을 확대하자는 데 뜻을 모았다.

두 감독은 지난 12일 베이징(北京) 의 켐핀스키호텔에서 만났다. 9~13일 열린 상하이(上海) 영화제에 '쉬리' '단적비연수' 를 출품한 강감독이 사업상 베이징에 들렀다가 장감독이 급하게 연락을 해와 만남이 이뤄졌다.

평소 '쉬리' 를 보고 좋은 인상을 받았던 장감독이 양국의 영화 협력에 관한 구체적인 방안을 논의하자고 제안했던 것.

두 감독은 일단 할리우드 영화에 대한 아시아 영화의 대응책 마련에 공감했다. 전세계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할리우드에 맞서는 양국의 지혜를 모색했다.

장이머우는 '붉은 수수밭' '국두' '홍등' '귀주 이야기' 등을 통해 중국의 전통적 정서를 현대적 영상으로 옮긴 감독.

그는 " '쉬리' 에 할리우드적 요소가 있어 중국 젊은이들이 좋아한다" 며 "한.중.일이 장기적으로 상호 협력하는 방안을 찾자" 고 제의했다.

강감독 또한 수년 전부터 아시아 영화권의 협력을 강조해 왔다.

그는 "과거 5년 전만 해도 한국은 중국의 파트너로서 그 역할이나 환경이 부족했지만 이젠 서로 도움을 주면서 공존할 수 있게 됐다" 며 "연기자.스태프.자본 등 영화 요소를 잘 교류하면 아시아 영화의 새로운 모델을 만들 수 있을 것" 이라고 대답했다.

이들의 모임이 중요한 것은 최근 활발하게 추진되고 있는 아시아 영화권의 교류 분위기에 하나의 이정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양국의 대표적 감독이 만나 실질적 협력방안을 깊이 있게 논의한 것은 처음이다.

강감독은 "아시아엔 훌륭한 감독이 있으나 상호간에 아무런 관계가 없다. 서로 뭔가를 하려면 작은 것부터 출발해야 한다. 유럽도 미국과 결합하고 있다. 비슷한 것을 장감독과 내가 먼저 시작하자" 고 했고, 이에 장감독은 "각국에서 영화를 프로모션하는 데 우선적으로 협력안을 만들자" 고 공감했다.

이런 차원에서 강감독은 오는 10월께 그가 운영하는 강남의 주공공이 극장에서 장감독의 작품 세계를 일람하는 영화제를 열 계획이다.

장감독도 답례 형식으로 엇비슷한 시기에 강감독이 연출.제작하고 시나리오를 쓴 작품들을 중국에서 상영하는 자리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한국 영화가 중국에서 정식 개봉한 선례는 아직 없다. 1년에 외국 영화는 열두편만을 상영하는 중국 당국의 규정 때문에 중국 시장을 뚫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강감독은 "이번 합의는 아시아 영화의 단결을 확인한 것 외에도 우리 영화가 중국에 진출하는 작은 디딤돌이 될 것" 이라고 말했다. 향후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등으로 넓어질 중국의 영화시장을 우리가 방관할 수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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