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영화 Buddy] 정우성과 김성수 감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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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반기 한국 영화의 최대 화제작으로 꼽히는 '무사' (9월 8일 개봉 예정) 의 김성수(40.사진 右) 감독과 주연 배우 정우성(28) 을 만났던 지난 11일 기다리고 기다렸던 단비가 시원하게 뿌렸다.

차창을 때리는 빗방울을 반가워하며 찾아간 서울 강남의 영화사 싸이더스의 사무실. 그들의 얼굴을 보자 마자 비와 관련된 에피소드는 없는지 물었다. 짐짓 시간을 끌던 정우성이 어렵게 답했다. "제 이름 가운데 자가 비 우(雨) 인데요. "

실없다. 스크린과 TV에서 보았던 영웅적 이미지는 간데 없고 피식 웃기만 한다. 김감독이 끼어든다. "비가 아니라 눈을 가장 걱정했어요. "

지난해 하반기 6개월을 바쳤던 '무사' 의 중국 촬영현장을 두고 하는 말이다. 장장 1만㎞의 대장정. 1년 내내 거의 비가 내리지 않는 중국 내륙의 사막.황무지.협곡 등에서 강행군을 펼쳤다.

"눈이 가장 두려웠어요. 눈이 올 땐 꼼짝 없이 촬영을 중단할 수밖에 없거든요. " 당시의 기억이 생생한지 김감독이 고개를 젓는다.

"그래도 행복한 경험이었잖아요" 라며 정우성이 말하자 김감독은 "그래, 영화에 관한 한 우리는 고난을 즐기는 성격이지" 라며 금새 표정이 밝아진다.

김감독과 정우성은 소띠 띠동갑. 나이는 김감독이 훨씬 위지만 말하는 모양은 정우성이 형 같다. 영상에서 비친 청춘스타 모습과 달리 나직한 어조에 무게를 싣는 정우성과 반대로 김감독은 재기 넘치는 젊은이처럼 말이 빠르다.

'무사' 는 그들이 세번째로 만난 작품. '비트' (1997년) 와 '태양은 없다' (99년) 에 이어 2년마다 작품을 함께 했다. 영화판에서 김성수 영화하면 배우 정우성이 등식으로 성립할 만큼 가까운 사이가 됐다.

반면 그들은 철저히 '직업적' 이다. 아직 미혼인 정우성에게 김감독과 연애 얘기도 하느냐고 묻자 '노' 라고 짧게 끊는다. 가끔 소주를 주고 받는 사이지만 만나면 오직 영화를 안주로 삼는다고 한다.

"데뷔작 '런 어웨이' (95년) 에서도 정우성에게 손짓을 보냈다. 보기 좋게 거절당했다. " (김성수)

"당시로선 건방지게 보일 수 있었지만 시나리오가 나와 어울리지 않았다. " (정우성)

" '비트' 에서 정우성을 캐스팅한 것도 영화사 대표 차승재씨의 작품이다. 그의 스타성을 활용하려는 기획적 발상이 앞섰다. " (김성수)

'런 어웨이' 의 참패로 힘든 시절을 보냈던 김감독이 재기하고, 또 얼굴 잘 생긴 탤런트로 이해됐던 정우성을 영화배우 정우성으로 업그레이드한 작품이 '비트' 였기에 그들의 인연은 각별할 수밖에 없다.

김감독은 정우성을 영화적 동료로 표현했다.

"배우는 자신의 캐릭터만을 소화하는 데 그치면 안된다. 영화 전체를 훑는 열정과 능력이 있어야 한다. 그런 면에서 정우성은 작품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얘기할 수 있는 배우다. "

정우성이 계면쩍어 한다.

"배우가 가진 잠재력을 끄집어내는 능력이 대단하다. 김감독과 작업하다 보면 배우가 아니라 스태프의 일원으로 참여하는 것 같다. 끊임없이 영화에 대한 생각을 질문한다. 내가 시나리오 작가, 혹은 감독에 도전할 수 있게 된 것도 김감독의 덕분이다. "

정우성은 그동안 시나리오 세 편을 써놓은 상태다. 초고를 김감독에게 보여주고 조언을 받았다고 한다. 일종의 사제지간 비슷한 모양새가 된 것. "감독과 배우는 냉정한 거래관계" 라며 칭찬을 아끼던 김감독이 의외로 흥분했다.

"1년 전 정우성이 연출한 god의 뮤직 비디오를 본 적이 있다. 얘기를 경쾌하게 끌어가고 편집도 훌륭했다. 아마도 수년 안에 정우성이란 감독이 탄생할 것으로 의심하지 않는다. "

사실 김감독이 '무사' 의 시나리오를 가장 먼저 보여준 배우도 정우성이다. '비트' 의 촬영 직후 구상을 들려줬고, 완성된 원고를 던지며 원하는 배역을 선택하라고까지 주문했다.

중국의 원(元) .명(明) 교체기에 명나라에 파견됐다가 첩자로 몰린 고려 무사 아홉명의 귀환길을 다룬 '무사' 에서 정우성의 배역은 창술(創術) 의 달인인 노비 출신의 여솔. 카리스마가 강한 인물을 연기했던 정우성의 이미지와 어울린다.

"권문세가의 자제로 어린 나이에 장군이 된 유약한 인물인 최정역을 맡고 싶었으나 용기가 없어 예전의 이미지가 남아 있는 여솔을 택했다. " (정우성)

"그래도 경험이 부족한 최정역의 주진모를 잘 지도해 선배 구실을 톡톡히 했다. 보다 평범한 인물쪽으로 연기 영역을 넓혀야 할 것이다. " (김성수)

교묘한 카메라 워크와 빛의 사용으로 스타일리스트란 별칭이 따라다니는 김감독은 "아직 배울 게 무진하다는 걸 깨달았다" 고 했고, 정우성은 "향후 자신의 연기를 돌려놓을 계기가 됐다" 고 했다. 그렇게 그들은 밀고 당기며 내일의 또 다른 자신을 기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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