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김진의 시시각각

문재인, 어두운 역사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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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김진
논설위원·정치전문기자

야권 대선후보는 사회발전을 위해 정권의 실정(失政)을 비판할 수 있다. 하지만 비판과 매도(罵倒)는 다르다. 단순한 비판을 넘어 공동체 역사를 부정하고 문제의 뿌리를 왜곡한다면 이는 매도다. 매도는 공동체를 분열의 골짜기로 몰아넣는다. 많은 국민은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의 시각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역사를 잘 모르는 젊은 세대는 특히 그러하다. 그래서 후보가 올바른 시각을 갖는 게 중요한 것이다.

 문재인 민주당 후보는 많은 강점을 가지고 있다. 60여 년 전통 제1 야당의 정통 후보이며, 경선 13연승을 기록했다. 노무현 5년 동안 비서실장·수석비서관으로 많은 국정을 경험했다. 드러난 부패 스캔들이 없고, 겸손하고 성실하며, 소탈한 이미지를 지녔다. 그러나 문재인은 국가를 바라보는 시각에서 중요한 의문점을 드러내고 있다.

 후보 수락 연설에서 그는 ‘힐링(healing) 대통령’이 되겠다고 했다. “국민의 고통과 아픔을 치유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선언과 달리 그는 분열과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 대한민국 역사를 부정(否定)하고, 공동체의 문제를 왜곡하고 있다. 이런 파괴적인 시각은 적잖은 국민에게 새로운 고통을 주고 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이명박 정부에서 김대중·노무현 두 분 대통령을 잃었다. 두 분의 서거는 이명박 정부 국정 파탄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일이다.” 노 대통령은 근본적으로 부인의 뇌물 때문에 자살했다. 뇌물도 충격인데 검찰이 ‘당신도 알았지 않은가’라고 추궁하자 분노와 모멸감까지 겹쳐 뛰어내린 것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근본적으로 노환(老患)으로 사망했다. 이것이 무슨 국정 파탄인가. 국정(國政)이 전직 대통령의 심기(心氣)와 질병까지 책임져야 하는가. 그는 또 이렇게 말했다.

 “이명박 정부 5년이 시대를 과거로 돌려놓았다. 민주주의와 인권도 후퇴했다. 국민은 불안 속에서 절망하고, 좌절하고 있다.” 야당을 비롯한 반대 세력은 5년 동안 대통령과 공권력을 공격하고 조롱했다. 촛불사태 때 시위대는 청와대로 쳐들어가겠다고 밀어붙였다. 경찰관들 옷을 벗기고 린치를 가했다. 대통령은 쫓기듯 청와대 뒷산에 올라갔다. 요즘 어떤 시민은 굴착기로 경찰차를 부숴버린다. 어떤 이는 자동차를 몰고 파출소로 돌진하고 경찰을 팬다. 그래도 경찰은 총 한번 못 쏜다. ‘혀의 자유’는 하늘을 찔렀다. 거리집회에서 야당 최고위원은 “정권을 확 죽여버려야 한다”고 했다. 야당의원은 “대통령 마누라도 돈 훔쳐먹으려고 별짓 다 한다”고 했다. 후퇴한 건 민주주의와 인권이 아니다. 권위와 공권력이다.

 문 후보는 ‘성장만을 외치며 달려오는 동안 특권과 부패, 독선과 아집, 갈등과 반목만이 만연됐다’고 주장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이 이렇게 형편없는 나라인가. 세계에서 유일한 ‘3대 신용 상승’, 세계 5대 공업국과 7대 수출국, 올림픽 5위, 일제 35년과 한국전쟁을 이겨내고 이룩한 건국과 경제발전, 완벽한 수준의 민주주의, 일본·그리스·스페인이 부러워하는 튼튼한 재정,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건강보험··· 이런 나라가 그렇게 어두운 나라인가.

 문재인은 남한의 선(善)은 매도하고 북한의 악(惡)은 감싼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민주정부 10년이 공들여 쌓아온 남북 간 신뢰가 모두 무너졌다. 평화는 실패했고 안보는 무능했다.” 평화를 위협한 건 북한의 핵개발과 천안함·연평도 도발이다. 그런 북한에 시간과 달러를 준 것이 김대중·노무현 햇볕정책이다. 대통령 되겠다는 사람이 북한 책임은 한마디도 거론하지 않는다.

 김대중 정권은 5·16 쿠데타 세력의 2인자 김종필과 연합해 탄생했다. 그 정권이 없었으면 노무현 정권도, 문재인 후보도 없다. ‘문재인 탄생’의 뿌리가 5·16인 셈이다. 그런데도 그는 참배에서 박정희 묘역을 빼놓았다. 이는 조상의 묘를 골라 참배한 것과 같다. 자신과 대한민국의 역사를 부정하는 문재인··· 그는 힐링인가 아니면 킬링(killing)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