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LB] 이라부 · 밀튼 '인생유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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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초 당시 일본프로야구 퍼시픽리그의 최고 투수였던 이라부 히데키는 돌연 메이저리그행을 선언했다. 소속팀 롯데 지바 마린스는 고심 끝에 그의 미국행을 승인했고, 자신들과 우선협상권을 갖고 있었던 샌디에이고 파드리스로의 이적을 물색했다.

그러나 한술 더 뜬 이라부는 "샌디에이고 같은 촌구석은 싫다. 난 오로지 뉴욕 양키스만을 원한다"라는 망언을 터뜨렸고, 여기에 일본선수의 상품가치를 잘 알고 있던 양키스의 조지 스타인브레너 구단주가 공식적으로 영입의사를 밝히면서 사건은 일파만파로 확대됐다.

결국 사무국의 중재 끝에 파드리스는 당시 양키스 최고의 유망주였던 루벤 리베라(현 신시내티 레즈) 등을 받는 조건으로 우선협상권을 포기했고, 이라부는 양키스의 핀스트라이프 유니폼을 입었다.

그러나 양키스에서의 이라부는 행복하지 못했다. 매사에 불성실한 태도로 일관, 스타인브레너로부터 '두꺼비 같은 놈'이란 모욕적인 말을 들었으며, 3년동안 양키스의 막강타선을 등에 업고 얻은 성적은 29승20패 방어율 4.79에 불과했다.

결국 이라부는 99시즌이 끝나고 몬트리올 엑스포스로 트레이드됐다. 국경을 건너서도 마찬가지였다. 지난해는 무릎 부상으로 11경기 등판 후 자취를 감췄으며, 올해도 6월부터 겨우 팀에 합류했다.

14일(한국시간) 이라부는 양키스와의 인터리그 경기에 등판, 5와 2/3이닝동안 7안타 5실점으로 패전투수가 됐다. 6회말 브래드 암스트롱 투수코치에게 공을 넘겨주고 양키스타디움의 마운드를 걸어내려온 이라부의 심정은 필경 착잡했을 것.

미네소타 트윈스의 좌완투수 에릭 밀튼의 왼쪽 어깨에는 양키스의 로고가 그려져 있다. 96년 드래프트 1라운드에서 뉴욕 양키스가 자신을 지명했을 때, 그가 가장 먼저 한 일이 문신이었기 때문이다.

98시즌 중반, 밀튼은 척 노블락에 대한 맞상대로 트윈스로 넘겨졌다. 프로세계에서의 트레이드야 당연한 일이겠지만, 양키스에 대한 사랑이 남달랐던 밀튼의 충격은 엄청났다.

그러나 밀튼은 좌절하지 않았다. 1999년 9월12일 애너하임 에인절스에서 깜짝 노히트노런을 거둔 밀튼은 지난해 10승 투수로 올라섰고, 이제는 브래드 래드키와 함께 팀 허드슨 · 배리 지토(이상 오클랜드 어슬레틱스)에 버금가는 '싱싱한' 원투펀치로 인정받고 있다.

지난 5월 9일 양키스타디움에서 완봉승을 거두며 자신의 진가를 확실히 보여줬다. 밀튼은 14일 휴스턴 애스트로스와의 홈경기에서 시즌 2호 완봉승을 노렸으나, 9회초의 1실점으로 완투승에 만족해야만 했다. 7승2패 방어율 3.63.

양키스에서만 야구를 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했던 이라부와 양키스를 벗어나서도 야구를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밀튼. 둘의 야구인생은 정반대의 방향으로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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