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지원자가 "면접관님, 왜 반말하세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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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서울 양평동 롯데인재개발원에서 계열사별로 뽑힌 신입사원 채용 면접관 후보들이 모의 면접을 하는 모습. 실제 면접관을 뽑는 실기시험이다. [사진 롯데그룹]

대기업 입사 면접관. 좀 보태 구직자들에게는 저승사자 비슷한 존재다. 이런 면접관은 아무나 되는 게 아니다. 기업들은 입사 시험에 버금갈 만큼 까다로운 과정을 거쳐 면접관을 선정한다. 특히나 요즘은 구직자들이 입사시험을 통과하기 위해 온갖 정보를 파악해서는 튼튼히 무장을 하고 시험에 임하는 시대. 구직자들 가운데 더 나은 인재를 골라내는 임무를 맡기 위해 기업들은 면접관들에게 강도 높은 훈련까지 시키고 있다.

 지난 13일 오전 서울 양평동 롯데인재개발원 강의실. 테이블 두 개를 ‘ㄱ’자 모양으로 맞대어 놓았다. 테이블 하나에는 ‘면접관 후보’들이 4명씩 앉아 있다. 진짜 면접관을 뽑는 시험을 치르는 중이다.

 한 테이블에 앉은 4명 후보들이 모의 지원자 역할을 맡은 대학생을 앞에 놓고 “자신의 책임 하에 큰 행사나 이벤트를 진행한 경험이 있느냐”는 등의 질문을 쉴 새 없이 쏟아냈다. 다른 테이블의 4명은 질문은 하지 않고 뭔가를 부지런히 메모했다.

 40분간의 모의 면접이 끝나자 메모만 하던 이들이 입을 열었다. 주로 면접관 후보들에 대한 비판이었다. 롯데호텔 주승환(31) 책임은 “사전에 자기소개서를 꼼꼼히 읽지 않은 것 같다. 중간중간 턱을 괴는 모습은 보기 좋지 않았다”는 등의 지적을 쏟아냈다. 한 차례 비판하는 시간이 지나자 이번엔 역할이 바뀌었다. 비판자들이 모의 면접관으로 나서고, 먼저 모의 면접을 했던 후보들이 비평과 지적을 한 것.

 롯데그룹이 운영하는 ‘면접관 학교’의 모습이다. 하반기 채용 시즌을 맞아 대기업들에서 실무면접관 교육이 한창이다. 서류전형을 거친 뒤 1차 면접 과정에서 실무 능력을 판가름할 이들을 뽑아 양성하는 것이다.

 실무면접관 선발·교육 과정은 신입사원을 뽑는 것만큼 까다롭다. 삼성그룹은 인사 고과를 잘 받은 과장급 이상 직원 중에서 고른다. 주축은 경력 15~20년 안팎의 차장·부장급이다. 주로 부서나 파트를 이끌고 있는 리더 자리에 있는 차장·부장과 실무에 있는 과장들도 포함된다.

 사원 채용 일정이 잡히면 면접관 교육이 시작된다. 집중적인 심화학습보다는 오리엔테이션 형식으로 진행한다. 여기에선 주로 면접관이 자칫 선입견을 가질 수 있는 점들을 상기시킨다. ‘발음이 유창하다고 외국어를 잘한다고 단정 짓지 말 것’ 같은 것이다. 면접관이 개별적으로 질문을 만들어 하는 것은 물론 가능하지만 지원자 간, 질문 간의 균질성을 위해 질문 가이드 라인에 들어 있는 질문을 하는 경우도 많다.

 그룹 차원에서는 면접관으로서 지켜야 할 예절과 바람직한 태도를 심는 데 주력한다. 입사 지원자는 잠재적 고객이면서 동시에 회사에 대한 이미지를 갖고 돌아가기 때문이다. “성차별적 발언을 하지 말라”거나 “특정 계층을 비하하는 발언을 하지 말라” “반말을 하지 말라”는 것 등이 대표적이다.

 계열사와 해당 직무별로 다른 내용이 면접관 교육에 추가된다. 예컨대 연구개발(R&D) 부서라면 전공 분야에 관한 질문을, 마케팅 부서에서는 트렌드를 읽어내는 능력이 있는지를 집중 관찰하도록 하는 식이다.

 현대자동차그룹은 계열사별로 실무 면접관으로 활용할 인재풀을 만들어 놓는다. 인사 평가를 잘 받은 부장·차장급이 대상이다. “실무 면접관 후보군에 들지 못했다면 조직에서 크게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라는 게 그룹 내부의 귀띔이다.

 현대차그룹이 면접관 교육에서 가장 강조하는 부분은 일관된 기준으로 면접이 이뤄지는지다. 피면접자 중에 유독 말이 많은 사람과 말을 잘 못하는 사람이 있으면 면접관들이 역할 분담을 해서 반드시 모든 사람이 대답할 수 있도록 골고루 질문을 던져야 한다. 또 화려한 언변에 너무 휘둘리지 말라는 주의사항도 있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학생들이 면접 공부도 많이 하고 말도 잘 하니까 면접에서 옥석을 가리기가 꽤 어렵다”며 “질문에 대한 이해도, 말과 내용, 태도를 고루 살펴서 평가할 것을 면접관들에게 요구한다”고 말했다.

 LG그룹의 면접관 교육은 취업 희망자들의 ‘진짜 얼굴’을 발견하는 능력을 키우는 데 주력한다. 이 그룹 관계자는 “요즘 취업 희망자들이 사전 준비를 철저히 하다 보니 대체로 면접 대응이 비슷하다”며 어투나 내용·행동·표정이 다 똑같아지는 현상이 뚜렷한 만큼 이들 중 옥석을 가리기 위해 많은 고민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계열사인 LG유플러스의 경우 팀장급 면접관 100명이 언제든 면접과정에 투입될 수 있도록 사전에 수시로 교육을 받고 있다.

 SK그룹은 신규 채용 인원이 많은 부서의 실무자들 가운데 면접관을 뽑는다. 면접관이 본인의 팀원을 선발하는 마음가짐으로 면접에 참여해야 좋은 인재를 선발할 수 있다는 취지다. SK그룹에서 ‘인재를 알아보는 눈’은 관리자의 필수능력으로 꼽힌다. 어떤 인재를 필요로 하는지 ‘현장의 관점’을 존중한다는 의미도 있다.

 이 때문에 본격적인 면접 투입에 앞서 2박3일간 면접관 합숙 훈련을 한다. 여기서는 면접관으로서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 등이 가이드라인으로 제시된다. 평가에 있어 편견을 최대한 줄이기 위한 장치다. 예를 들어 본격적인 면접에 앞서 피면접자의 긴장을 풀어주기 위한 질문이 권장되며 이를 위한 질문 풀도 있다. ‘날씨 때문에 오는 데 고생이 많았겠다’ ‘날씨가 좋아서 다행이다’ 등이다. SK그룹 관계자는 “단순한 질의 응답식의 면접으로는 개인차를 변별해 낼 수 없기 때문에 행동관찰이 강화된 면접이 필요해졌고, 이를 평가하기 위해 면접관의 역량 강화도 필요하게 됐다”고 말했다.

 롯데그룹의 경우 차장·과장급 중 인사고과 상위 30% 이내에 있는 이들이 면접관 후보다. 이들은 모의면접 평가는 물론 필기시험까지 통과해야 면접관 자격을 갖게 된다. 지난 13일 교육에 면접관 후보로 참여한 롯데쇼핑 이진영(31) 과장은 “면접관이 아니라 입사지원자로 교육을 받는 것 같았다”며 “면접이 장시간 이뤄지다 보니 나도 모르게 몇 번 몸을 뒤척였는데, 몇 번이나 그랬는지를 일일이 세어서는 지적하는 이들이 있더라”고 전했다.

◆ 대기업 채용 면접관의 자격

▶직급 : 과장~부장급

▶근무성적 : 상위 30~50%

▶ 훈련 : 인사과 등 HR부서의 인재풀에 포함돼 있다가 면접 전 2박3일가량의 훈련·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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