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우석의 책과 세상] '고려 무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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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의 매력이란 목덜미에 있다. 성적 매력을 느끼게 하는 목덜미는 가늘어서는 곤란하다. 살이 뒤룩뒤룩 쪄서도 안되며, 따라서 적당한 굵기와 늠름함이 필요하다. 남자의 목덜미란 벗겨보지 않아도 속을 알 수 있는데, 이를테면 고대 그리스나 로마의 조각을 보라.

나는 마키아벨리 『군주론』의 모델이었던 체사레 보르자(1475~1507) 의 조각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그 목덜미에 입술을 갖다대고 싶었다. "

분위기가 좀 이상하다 싶을까봐 퍼뜩 밝히지만, 이 글은 시오노 나나미의 것이다.

"『로마인 이야기』시리즈를 쓴 천하의 여장부가 이런 글도?" 하시겠지만, 남성 매력에 대한 탐구서 『남자들에게』(한길사, 1995) 에서 고백한 말이다.

이 책에서 시오노는 "진정한 자기 스타일 만이 멋진 남자를 만든다" 는 말과 함께 이 시대 잔뜩 움츠러든 남자들에게 애교 섞인 충고를 하고 있는데, 정작 놀라운 것은 『로마인 이야기』의 주요 등장인물들의 경우에도 그들의 스타일에 대한 생생한 묘사를 한다는 점이다.

시오노가 그토록 좋아한다고 밝힌 케사르의 경우를 보자. 기원전 2천년 전 인물인 케사르의 옷매무새 스타일에 대한 미주알고주알 묘사가 놀랍다.

이를테면 케사르가 걸쳤던 망토(토가) 의 보라색 컬러는 디자인이 어떻고, 가공과정이 어떠하며, 그래서 평민들이 입는 두텁기만 하고 값싼 흰색 옷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등 너무도 치밀한 묘사에 '졌다' 는 말이 나올 지경이다.

눈앞에 있는 듯한 느낌도 그 때문이다. 당장 비교되는 것이 우리 역사서의 빈곤이요, 우중충함이다.

『고려 무인 이야기』 <33면 리뷰 기사> 의 저자는 시오노를 모델로 작업했다고 고백하고 있다. 따라서 비교는 피할 수 없는데, 등장 인물과 시대상황에 대한 생생한 묘사는 유감스럽게도 시오노의 것과는 적지않은 차이가 있다.

케사르보다 무려 1천2백년 뒤의 인물이고, 우리 역사 속의 인물들인데도 리얼리티가 상대적으로 떨어진다.

이를테면 리뷰에서 채 언급을 못했지만 이 책 속의 등장인물 중 가장 강력한 캐릭터로는 정중부.경대승에 이어 등장하는 이의민( ~1196) 을 꼽아야 한다.

제5장 '황룡사의 꿈을 품고 산 천민 장군' 편을 보면, 그는 폐위된 채 경주에 연금생활을 하는 의종을 자기 손으로 시해한 장본인이다. 소금장수 아버지를 둔 미천한 출신인 그는 무신난을 만나 '물고기가 물을 만난' 형국이었다고 설명되며, 『고려사』의 기록대로 잔인하면서도 강력한 인물로 그려진다.

의종 시해 때 칼 대신 맨손으로 전왕(前王) 의 등뼈를 부러뜨려 시해했고, 뼈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그가 마치 미친 사람처럼 웃어제꼈다는 섬뜩한 묘사가 나온다. 문제는 딱 거기까지가 한계라는 점이다.

중세 시기 이 천민(賤民) 장군이 가지고 있던 정치적 시야와 프로그래밍 작업에 대한 서술도 흡족하지 않다.

"정중부, 이의민 등은 권력의 정상에 오르는데 성공했으나 누구도 귀족사회의 틀을 바꾸는 데는 실패했다.

사상이나 통치력이 너무 조야했다. 통치자라기보다는 그저 실력자에 가까웠다. " 그런 단언으로 끝내기에는 우리 중세사가, 또는 중세사를 다루는 시야가 너무 좁고 허전하지 않은가?

썩 괜찮은 역사서 『고려 무인 이야기』에 대한 이런 지적은 약으로 작용해야 할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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