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카고 북엑스포 르포] e-북·종이책 "함께 살자"

중앙일보

입력

''미국 출판업계의 슈퍼볼'' 로도 불리는 북 엑스포 아메리카(BEA) 는 미국 최대의 국제 도서견본 시장이다. 지난해 이곳에선 전자책(e-북) 열풍이 불었다. e-북의 거센 파고는 국내에도 몰아쳐 ''e-북이 종이책을 대체할 것인가'' 라는 논쟁을 일으키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 1일부터 3일까지 시카고 맥코믹 플레이스 컨벤션 센터에서 열린 올해 BEA는 ''종이 책 대 e-북'' 의 성급한 대립구도가 아닌 병행과 공생을 모색하는 신중한 모습이었다.

전시회 개막 하루 앞서 열린 전자출판의 진로에 대한 회의 주제는 한마디로 ''오프라인과 온라인의 병행 전략(bricks & clicks strategy) '' 이었다.

전자출판과 소매서점 유통에 초점을 맞춘 이 세미나는 ''인쇄매체와 디지털매체가 결합할 21세기 출판업계에서 수익을 얻는 방법'' ''소매 서점들은 종이책을 더 많이 팔기 위해 전자매체를 어떻게 이용할까'' 등의 작은 테마로 진행됐다.

이 회의를 주관한 마크 드레슬러는 "순수 닷컴 회사들이 잇따라 몰락하고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 새롭게 떠오르는 현상은 소매 서점들의 마케팅 채널로 안착한 웹 툴처럼 온라인과 오프라인이 근본적으로 병행하는 전략이다. 그래서 종이책 시장을 활성화시키기 위해 어떻게 웹 툴을 지렛대로 사용할 것인가 하는 현실적인 관심이 부상하는 것" 이라고 말했다.

그는 "현재 최대의 관심사는 e-북 솔루션 분야의 다양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표준화하는 문제" 라고 밝혔다.

실제 이런 분위기는 행사장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랜덤 하우스, 하퍼 콜린스 등 미국의 10대 메이저 출판사들의 부스가 설치된 행사장 앞쪽은 장소배치의 이점도 있지만 어쨌든 걸어다니기 힘들 정도로 붐볐다.

반면 행사장 오른편 뒤쪽에 전체의 5분의 1 정도의 부스를 차지한 e-북 관련 업체들 앞은 상대적으로 한산했다.

지난해 e-북 돌풍의 주역이었던 마이크로소프트사의 마케팅 담당 매니저 애이미 케롤은 올해 새로운 기술의 신상품은 없다면서도 e-북코너가 지난해 보다 상대적으로 위축된 점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e-북 관련 또 하나의 주역인 어도비사의 매니저 톰 프렌에게선 비교적 솔직한 답변을 들을 수 있었다.

그는 "우리도 신상품은 없고 또 다른 업체들의 행사 참가도 지난해보다 줄었다" 고 밝혔다.

그에게 e-북 위축의 이유가 닷컴 기업의 몰락 등 경기침체 탓이냐고 묻자 그는 "메이비(maybe) "

"프로버블리(probably) " 를 연발하며 거론하고 싶지 않음을 간접적으로 나타냈다.

그는 "e-북은 현재로선 매우 이른 단계이고 그것이 활성화될 미래도 확실히 점칠 수 없지만 2~3년 안에 학교의 교재시장엔 e-북이 자리잡을 수 있을 것" 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미국의 대표적 출판 저널인 ''퍼블리셔 위클리'' 의 편집총책임자 로빈 렌즈는 이와 관련,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e-북은 여전히 관심의 초점" 이라며 "굳이 달라진 것이 있다면 지난해는 낯설었던 e-북이 올핸 더 친숙해진 점" 이라고 말했다.

그녀의 말을 입증하듯 BEA가 열린 1일 미국 출판업계에서 가장 저명한 문학상 중의 하나인 ''내셔널 북 어워드(National Book Award) '' 의 책임자 닐 볼드윈은 올해부터 e-북에 대해서도 시상을 하겠다고 밝혔다.

지식산업과 문화의 주춧돌 역할을 해온 종이책에 대한 e-북의 거센 도전이 현재로선 다소 소강상태 속에 공생을 모색하는 모습을 확인한 올해의 BEA 였다.

그러나 코네티컷주에서 서점을 경영한다는 한 참가자의 말처럼 "디지털 기술의 발달과 함께 컴퓨터에 익숙한 현재의 10대들이 사회의 주역이 될 미래에는 어떤 형태로든 e-북이 활성화될 것" 이라는 점에서 e-북과 종이책의 미래에 대한 진지한 고민은 이제부터일 것이다.

시카고 북 엑스포=배영대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