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1월 미국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재정절벽(Fiscal cliff)’ 우려가 크다. 급격한 재정긴축이 경제에 충격을 주고 마이너스 성장을 초래할지 모른다는 걱정이다. 지난해 8월 미국의 국가부채 한도 상향과 관련한 협상 과정에서 미 정치권은 막판까지 극단적인 대립을 이어갔다. 이 과정에서 글로벌 금융시장은 큰 충격을 받았다. 이번 대선 과정에서도 정치권의 재정정책 관련 대결이 금융 불안 요인으로 작용할 거란 우려를 낳는다.
영화로 보는 투자의 세계
미국발 금융위기가 한창인 2008년 미국에서 제작된 영화 ‘스윙 보트(Swing Vote)’는 미 대선에서 벌어지는 민주·공화 양당의 정책 혼선을 풍자적으로 그렸다. 스윙 보트란 선거 때 지지자를 결정하지 못한 부동표를 뜻한다. 영화는 계란 공장에서 해고당한 백수건달의 한 표가 미 대선의 승부를 결정하게 된다는 이야기다.
민주·공화당은 그들의 운명을 결정할 단 한 명의 유권자의 마음을 잡으려고 온갖 노력을 기울인다. 공화당은 동성혼인과 친환경 등 전통적으로 민주당이 옹호해온 입장을 수용하고, 민주당은 이주 노동자 규제, 낙태 금지 같은 공화당 정책들을 받아들인다. 표를 얻기 위해서라면 소중히 지켜온 이념 노선까지 바꾸는 정치인들의 모습을 꼬집는다.
이번 미 대선에서도 정책 대결이 뜨겁다. 영화와 다른 점은 민주·공화당이 경제정책의 소신과 원칙론을 강하게 고수하는 것이다. 영화 스윙 보트와 같은 상황이 실제 일어난다면 양 당이 대결을 멈추고 재정절벽이라는 극단적 결과를 피할 수 있지 않을까. 민주당의 경제정책은 케인지언(Keynesian) 시각이고, 공화당은 통화주의(Monetarism) 입장이다.
케인지언은 영국의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의 철학, 즉 정부 개입을 옹호하는 입장이다. 시장이 불안정하기 때문에, 정부가 경제에 적극 개입해 시장의 빈틈을 메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기본적으로 ‘큰 정부’를 선호한다고 볼 수 있다. 통화주의자는 밀턴 프리드먼으로 대표되는 미 시카고 학파의 철학, 즉 시장에 맡겨두는 것이 경제의 효율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당연히 규제 완화와 감세를 주장한다. 또 역할이 작으면 작을수록 더 좋은 정부라고 주장한다.
주식투자로 거부를 쌓은 워런 버핏이 얼마 전 “미국 부자들에게 세금을 더 물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후 소위 ‘버핏세’ 논쟁이 벌어졌다. 그는 공공연한 민주당 지지자다. 증세는 케인지언의 입장과 맥이 닿는다. 공화당은 버핏의 주장에 대해 당연히 냉소적이었다.
양당의 간극이 크지만 금융시장은 미 정치권이 어떻게든 재정 문제에 대해 적절한 타협점을 찾길 바란다. 그렇지 않으면 지난해 8월과 같은 금융시장 혼란이 되풀이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에는 오히려 강경론이 힘을 얻고 있다. 특히 공화당이 완고하다. 부통령 후보로 강경 통화주의자인 폴 라이언이 지명된 것이 한 예다. 라이언은 ‘작은 정부’를 극단적으로 신봉하는 인물로, 정부 지출을 확 줄여서 재정 건전화를 이뤄야 한다고 본다. 공화당 대통령 후보 밋 롬니가 과거 금본위제로 되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의미심장하다. 이들은 중앙은행의 인위적 저금리 정책이 자원 배분을 왜곡하고 있다고 본다. 금본위제 주장은 현행 중앙은행 체제의 무용론과 마찬가지다.
영화 스윙 보트에서는 스윙 보트, 즉 부동표를 좇아 정당 강령이 줏대 없이 왔다갔다한 것이 문제였다. 하지만 이번 대선은 반대로 금융시장의 안정을 희구하는 부동표의 눈치를 좀 봤으면 좋겠다. 그래야 글로벌 금융시장과 실물경제가 필요 이상으로 흔들리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