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괄수가제 시행 두 달 후, 의사들의 고백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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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생제와 마취제 모두 싼 것으로 바꿨습니다. 어쩔 수 없었습니다.” (경기 소재 P산부인과)
“무통주사 이제는 못 놔줍니다. 정부에서 말하는 무통주사는 척추주사가 아니라 상처에 놔주는 것이라 효과가 없습니다. 결국 정부가 거짓말을 한 것이죠.” (서울 K산부인과)
“환자에게 CT검사가 필요해도 안 찍고 퇴원시킵니다. 불안하기는 해도 모두 병원이 부담해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습니다.” (경기 H외과)

지난 13일 서울역 광장에서 열린 ‘국민건강 위협하는 의료악법 규탄대회’에서 공개된 ‘포괄수가제 시행 두 달 후 의사들의 고백’이다. 이번 대회를 주최한 대한의사협회(회장 노환규)는 포괄수가제를 비롯한 각종 의료법 시행의 부작용을 플래카드에 적어 공개했다. 의료계가 여러 의료제도를 왜 반대하고 나섰는지, 의료법에 따른 폐단은 무엇인지 시민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실제 사례를 적어놓은 것이다. ‘포괄수가제 시행 두 달 후 의사들의 고백’뿐만 아니라 ‘환자들의 아우성’도 공개됐다. “맹장수술을 하고 열이 안떨어졌는데도 퇴원하라고 하더군요. 결국 농양이 생겨서 다시 입원했어요.” (53세 남. 경기 H외과 환자)“자궁유착방지제를 안씁니다. 내가 돈을 낸다고 해도 안된다고 하네요.” (33세 여. 서울 P산부인과 환자)“임신성 당뇨가 있는데 동네병원에서 안받아줬어요. 무조건 대학병원으로 가라고 합니다.” (31세 여. 경기 M산부인과 환자) 전공의의 열악한 수련환경도 의료악법의 피해사례 중 하나로 제시됐다. “2006년 이모씨는 허리디스크가 발병해 신경외과 전문의에게 척추디스크 수술을 받았다. 그런데 다음 날, 이모씨는 사망했다. 수술 도중 대정맥이 다쳤는데 제대로 봉합하지 못해 과다출혈로 숨진 것이다. 알고보니 수술 한 신경외과 전문의는 4년 간의 전공의 과정 중 단 한 차례도 척추디스크 수술을 해 본 경험이 없는 초심자였다.” 의협은 원가에도 못 미치는 진료수가 때문에 병원이 많은 진료와 수술을 하느라고 전공의 교육에 신경 쓸 시간이 없다고 설명했다. 병원이 전공의 교육은 뒷전이고 많은 환자를 받는 것에 몰두해 있다 보니, 제대로 교육받지 못한 의사가 전문의를 따고 환자는 억울하게 희생되고 있다는 것이다. 또 피로에 지친 전공의가 정맥주사제와 항암주사제를 잘못 주입해 환자가 숨진 사례를 제시했다. 휴식도 없이 주 100시간 이상 혹사당하는 전공의의 근무환경을 지적한 것이다. 이날 규탄대회를 지켜보며 ‘의료악법 피해사례’를 접한 한 시민(38세·남·직장인)은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포괄수가제가 시행되면 진료비가 저렴해진다고만 생각했지, 이렇게 의료의 질이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은 몰랐다”며 “의사들이 문제로 삼는 법들을 어떻게 시정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문제가 있는 건 분명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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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경아 기자 okafm@joongang.co.kr <저작권자 ⓒ 중앙일보헬스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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