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빈 토플러의 '한국 보고서' 뭘 담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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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허만 칸 이래 최고의 미래학자로 꼽히는 앨빈 토플러가 다시 한국에 왔다. 이번 방문은 대전환기에 서있는 한국에 조언을 해달라는 우리측의 요청으로 만든 '한국 보고서' (위기를 넘어서 : 21세기 한국의 비전)를 전하기 위해서다.

복잡한 과학기술의 볼트 너트를 이해한 뒤 그 흐름을 꿰채 미래사회를 예측하고 비전을 제시하는 그의 통찰력이 보고서 곳곳에 녹아 있다.

이 보고서는 한국분석에만 머물지않고 포스트 제3의 물결을 세계적인 관점에서 전망하고 있다는 점에서 특히 주목된다. 다음은 보고서 요약.

□ 신경제 위기론에 대한 인식

현재 제기되고 있는 신경제 위기론은 오류다. 잘못된 수익모델을 선택한 기업들의 도산과 위기는 역사적으로 볼 때 시스템 변화 초기에 나타나는 일시적인 현상이다.

신경제는 생산의 핵심 요소가 지식인 경제며 전자화폐 사용의 활성화로 금융 및 투자의 흐름이 가속화된 경제이자, 다양성을 용인하고 촉진하는 사회다. 현재 세계 경제는 이 방향으로 가고 있다.

□ 한국경제의 선택

지식기반경제 또는 신경제로의 전환이 한국경제의 미래를 결정할 것이며, 현 시점이 가장 중요하다. 한국이 저임금을 무기로 삼으면서 가까운 장래에 공업국가로 전환될 중국과 아프리카 국가들과의 경쟁을 피하기 위해서도 필수적이다.

하지만 신경제에서 한국이 따를 만한 검증된 모델은 없다. 한국은 자신에 맞는 전략을 수립하고 추진해야 한다.

□ 한국경제의 지향모델

◇ 일반론적 측면=한국은 이미 세계적 수준의 정보통신 인프라를 구축했다. 이제 한국은 물리적 정보기술(IT)인프라를 전체 한국경제 발전에 기여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일본은 수출주도형 제조업에 과도하게 집중하고 IT기술을 경제 전반으로 확산시키는데 실패함으로써 신경제로의 전환에 실패했다.

한국은 물리적 인프라뿐만 아니라 통신서비스 같은 사이버인프라를 구축하고 확산하는데 정부가 앞장서야 한다.

◇ 기술적 측면=건강관련 기술.서비스에서 시장의 폭발적 성장과 직업 창출이 기대된다. 한국은 BT(생명공학)의 가장 중요한 수요자이자 수출 주도자가 될 잠재력이 있다.

한국은 이를 위해 민간기업.대학과 손잡고 '바이오벤처기금' 을 조성해 미국.유럽.중국의 1백개 중소 BT선도기업에 투자하기를 권한다.

신경제는 IT주도의 1단계에서 IT와 BT의 융합이라는 2단계로 진입중이다.

◇ 경제적 측면

▶수출전략의 개편=한국은 고부가가치 무형재수출에 중점을 둬야 한다. 정보통신 서비스뿐만 아니라 고기술인력을 육성하고 수출할 수 있어야 한다.

시장경쟁의 심화, 경제위기의 전세계적 전파는 수출 의존도가 높은 경제를 어렵게 한다.

▶연구개발의 활성화=한국은 선진 기술을 빠르게 채택해야 한다. 지적재산권과 관련된 국제협상에 적극 참여하고, 연구개발을 위한 기업간 국제협력 강화와 해외 우수기술 유치를 위해 법적.경제적 규제완화를 해야 한다.

해외자본과 경영노하우 유치에도 노력해야 한다.

▶중소기업 정보화촉진과 정보격차 해소〓정부는 중소기업의 정보화를 보조하는 한편 세금을 활용한 인센티브를 통해 중소기업을 육성해야 한다. 또 주부.군인.농어민 등에 대한 IT교육을 강화해 신경제의 수혜가 모두에게 돌아가도록 해야 한다.

◇ 시스템 개혁 측면

▶경제적 구조개혁=기업들이 분산.수평조직으로 변하고 덜 관료화되기 위해 기업 내부의 조직 유연화 작업과 개혁이 필요하다.

정부조직도 마찬가지다.

▶고용시장의 유연화=신경제에서는 육체 노동의 중요성이 감소하고 정신노동에 대한 수요가 증가한다. 이 과정에서 급속한 직업교체 때문에 사회적 혼란이 일어날 수 있다.

따라서 노동인력의 신기술 수준을 향상시킬 수 있는 직업훈련이 필요하다. 이밖에 ▶시민사회의 강화▶교육개혁▶정부개혁도 필요하다.

하지윤 기자 hjyun@joongang.co.kr>

▶1928년 미국 뉴욕 출생

▶1949년 뉴욕대 졸업

▶1957~58년 포천지 백악관 특파원.부편집장

▶1959~61년 미국 러셀문화재단 객원교수

▶1969년 미 코넬대 교수

▶1970년 '미래의 충격' 출간

▶1980년 '제3의 물결' 출간

▶1991년 '권력이동' 출간

*** 한국과의 인연

앨빈 토플러(73)는 『제3의 물결』 『권력이동』 『미래의 충격』 『새로운 문명의 창조』등의 세계적 베스트셀러로 잘 알려진 20세기 대표급 미래학자다. 그의 저서들은 세계 기업의 최고경영자(CEO)들과 국가지도자들에게 필독서로 자리잡고 있다.

뉴욕대 재학시절 만난 아내 하이디 퍼렐은 미래학 연구의 동반자. 아내와 함께 1970년에 쓴 『미래의 충격』에서 이미 컴퓨터와 통신수단의 혁명을 예고한 바 있다. 이 책은 50여개 언어로 출판될 정도로 주목받았다.

그는 김대중 대통령 당선 초기 정보통신분야의 대통령 자문역을 맡기도 하는 등 한국과의 인연이 깊다.

김대통령과의 98년 면담 때는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정보화를 활용할 것과, 실업문제 해결책으로 중소기업 육성이 필요하다고 조언하는등 김대통령의 IT.벤처기업 육성 정책에 적지않은 영향을 준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7일 발표된 한국 보고서는 토플러가 회장을 맡고있는 토플러 어소시에이츠가 지난해 12월부터 6개월간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과 SK텔레콤의 지원으로 실행한 연구결과를 정리한 것이다.

최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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