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문 때 잠적한 덩샤오핑 한 달 뒤 나타나 무력 진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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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부주석이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것이 12일째(13일 현재)다. 하지만 사실 중국 지도자들의 잠적은 그리 드문 일이 아니다. 그래서 과거 지도자들의 사례를 보면 시 부주석의 잠적에 대한 몇 가지 추정이 가능하다.

 최고지도자였던 덩샤오핑(鄧小平)은 1986년 4월 말부터 7월 말까지 3개월여 동안 모습을 감췄다. 전국적으로 덩의 개혁·개방 이론 공부 열기가 대단하던 때였다. 그 때문에 개혁·개방 반대세력에 의한 덩의 실각설이 돌았다. 그러나 8월 초 덩은 톈진(天津)시를 시찰하면서 광둥(廣東)에서 시작한 개혁·개방의 북진(北進)을 지시했다. 89년 6월 천안문(天安門) 사태 이후에도 그는 한 달간 사라졌다.

이 사건을 계기로 실각했던 자오쯔양(趙紫陽) 전 총리는 2009년 펴낸 회고록 『개혁역정(改革歷程)』에서 “덩이 집에서 대책회의를 주재하며 천안문 사태 무력진압을 구상했다”고 밝혔다. 국가 주요 사안에 대한 결단이 필요할 때 잠적할 수 있다는 얘기다. 시 부주석 역시 지도부 교체가 이뤄지는 올가을 18차 당 대회를 앞두고 대회 준비와 계파 간 권력 안배 등 복잡한 현안이 많아 공개활동이 어려울 것이라는 추정이 가능하다.

 황쥐(黃菊) 전 부총리는 2006년 하반기 5개월 동안 모습을 감췄다. 장쩌민(江澤民) 전 국가주석의 측근인 그가 사라지자 후진타오(胡錦濤) 주석 계열의 공청단(共靑團)과의 권력투쟁에서 실각한 게 아니냐는 소문이 확산됐다. 그는 장 전 주석이 이끄는 상하이(上海)방의 핵심 인물이었다.

그러나 그는 2007년 초 잠깐 공개활동을 하고 그해 6월 암으로 사망했다. 잠적 기간 동안 암 치료를 받았다는 사실도 이후 확인됐다. 시 부주석의 와병설이 그런 맥락에서 나온다. 실제로 그는 심장이 좋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홍콩의 빈과일보(<860B>果日報)는 13일 시 부주석이 유전으로 인한 심장병을 앓고 있다고 전했다. 이 신문은 “이 때문에 중국 당국이 당 대회에 참석하는 대표들이 묵을 예정이었던 베이징의 여러 호텔에 대회 연기 가능성을 통지했다”고 덧붙였다.

 리펑 전 총리는 1993년 봄 2개월 가까이 잠적한 적이 있다. 공개 활동이 가장 많은 총리가 사라지면서 온갖 추측이 난무했지만 그해 여름 공개활동을 재개하면서 모든 소문은 사라졌다. 그의 잠적 이유는 아직도 확인되지 않고 있다.

  중국 지도자들의 잠적 원인은 정책 구상, 위기 해결책 모색, 신병, 실각 등 대략 네 가지다. 하지만 시 부주석의 정확한 잠적 이유가 무엇인지는 그가 모습을 다시 나타내더라도 한참 후에나 알게 될 공산이 크다. 어쨌든 그가 곧 활동을 재개할 것이라는 신호들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광시좡족자치구 공산당 기관지인 광서일보(廣西日報)는 시 부주석이 6일 별세한 홍군 원로 황룽(黃榮)에게 애도의 뜻을 표했다고 전했다. 홍콩 주간지 양광시무(陽光時務)는 최근호에서 시 부주석이 친척 휴대전화에 “모두 좋습니다, 안심하세요”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냈다고 소개했다.

시 부주석과 함께 오랫동안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던 허궈창(賀國强) 중국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 겸 중앙기율검사위 서기도 공개석상에 나타나 건재를 과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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